[Serial]‘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그리스신화가 숨 쉬는 신들의 요람과 유일신문화, 함영덕 작가
[Serial]‘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그리스신화가 숨 쉬는 신들의 요람과 유일신문화, 함영덕 작가
  • 함영덕
  • 승인 2017.11.0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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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문명의 모태이며 신화의 중심지인 성벽 언덕 위 파르테논신전을 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올림픽스타디움에서 나와 올림피에온에 도착했다. 이곳은 아드리아스문 바로 뒤에 있는 제우스신의 성역에 있는 신전 터를 말한다. 매표소에서 6개 코스의 입장권을 모두 구입했다. 넓은 광장에 거대한 돌기둥들이 대리석 잔해를 받치고 있다.  

 

제우스는 고대 그리스 신 중에 가장 강력하고 전지전능한 신으로 알려져 있으나 신과 인간을 사랑하고 신성과 인성을 함께 가진 신이다. 그리스인들은 고대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의 다신교의 영향을 받아 그들과 비슷한 개념의 신들을 창조했다.

 

그리스 로마신들이 신화와 예술작품으로 살아남아 사랑을 받고 있는 것도 절대신성을 생명으로 삼는 유일신에 비해 신성과 더불어 인간처럼 희. 노. 애. 락을 느끼는 인간미를 가진 인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상숭배를 배척한다는 명목으로 인류의 소중한 문화유적들을 파괴하고 종교적 신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헤아릴 수 없는 귀중한 생명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종교전쟁으로 인한 파괴와 죽음이 2차 세계대전으로 죽은 사람보다 더 많다는 사실도 외면할 수 없는 역사의 상흔이다.

 

다양한 문화는 모두가 자신들의 기후풍토에 가장 적합한 풍습에서 성장발전해 왔다. 가장 아쉬운 점은 쿠란의 우상숭배 배척 때문에 인간이 문화예술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거다. 수천 년 전의 시대상황에 맞게 탄생한 교리의 내용을 초문명의 시대인 21세기인 오늘날 단 한 자도 고칠 수 없이, 맹목적으로 신봉할 때 그 부작용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당시의 과학기술문명 수준으로는 한정된 영역을 벗어나 다른 세계와 소통이 불가능했고 따라서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생각이나 문명을 알 수 없었다. 그러므로 한정된 지역에서 자신들의 생활에 맞는 풍습과 문화적 신념체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21세기는 인간이 생명복제와 같은 신의 영역에 버금가는 과학기술 문명을 갖게 되었다. 이제 우리의 종교문화도 새롭게 조명하고 검증하여 인류의 보편적 가치의 증진과 함께 공존공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아크로폴리스와 파르테논신전

 

아크로폴리스광장이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그리스 지식인들과 젊은이들을 상대로 토론과 사색을 했던 공간이라 생각하니 감회가 새로웠다. 지중해를 제패한 아테네가 국력을 기울여 지은 그리스문명 최고의 유적 아크로폴리스가 거대한 암벽 산위에 미케네식 성채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는 파르테논신전을 비롯하여 많은 신전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네 개의 성채만 남아 있다. 아크로폴리스는‘높은 언덕 위의 도시’라는 뜻이다. 아크로폴리스는 고대 그리스에서 도시마다 제일 높은 곳에 지은 신전으로 아테나여신을 위한 파르테논신전이 제일 유명해서, 아크로폴리스 하면 이곳을 일컫는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고대에는 신전이 세워진 성역이었으며 도시국가 방위의 요새로서 역할을 했던 곳이다.  

 

그리스가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한 후 아테네는 델로스동맹의 지도국으로서 페리클래스(?-BC 429)의 지도 아래 문화예술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된다. 기원전 480년 페르시아인에 의해 파괴된 후 다시 복원된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가 바로 대표적인 예이다. 성벽 위 파르테논신전이 늠름하게 햇살을 받고 있다. 아크로폴리스광장 앞은 야트막한 언덕 산으로 둘러 싸여 있다. 언덕을 오르다 보면 오른쪽에 아레오파고스언덕이라 부르는 십자가가 서 있는 작은 바위산을 만나게 된다. 사도 바울이 아고라에 온 시민들에게 설교를 했던 장소로 기념동판이 새겨져 있다.

 

문명의 역사를 구동시키는 사상가들이 동서양에서 동시에 출현했다.“너 자신을 알라”는 소크라테스의 일갈一喝이 아크로폴리스 광장을 천둥처럼 울리는 것 같다. 개체의식이 뚜렷해지기 시작한 문명사적 전환의 시기인 2천5백 년 전 그리스에서는 소크라테스, 인도에서는 고타마 붓다. 마하비라, 중국에서는 노자, 장자, 공자가 있었다. 여섯 명의 각자覺者가 동시대에 출현한 것은 세계사의 엄청난 우연이자 매우 희귀한 일이다. 이때부터 인류사에는 문명의 기축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그들의 언어는 달랐지만 영원한 진리와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는 똑 같다. 깨달음은 시공을 초월한다. 그러므로 모든 각자들은 동시대인이다.

 

“악법도 법이다”는 그의 항변은 시대를 초월하여 우리들의 마음에 메아리쳐 온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의 학식 있는 사람들의 어리석음과 위선을 깨우쳐주려 노력했으나 오히려 그들의 분노와 모함으로 독살을 당하고 만다. 어쩌면 그의 유일한 죄는 진리와 진리를 찾는 방법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려고 한 것뿐이다.  

 

“소크라테스는 젊은 날에 자신이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고 나이가 들어가면서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더 성숙해지자 의식이 깨이면서 갑자기 자신이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최후의 날에 말했다.

 

예수 이전에 붓다에게도 똑 같은 일이 일어났다. 붓다는 우파니사드에서 말한 것을 현실로 구체화 시킨 힌두교의 정수이자 가장 위대한 힌두교인이었다. 당시 인도의 브라마니즘을 배격하고 만민평등 사상에 입각한 혁신적인 붓다의 생각은 수많은 신들과 고행을 존중하는 인도사회에서 사회성을 잃고 쇠퇴의 길을 걸었다. 모든 신들을 넘어선 궁극적인 상태가 깨달음이다. 붓다는 신들 위에 있다. 이것이 힌두교들이 붓다를 용서할 수 없었던 이유 중에 하나였다. 그들은 붓다가 신보다 위에 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신들은 자면서 아름다운 꿈을 꾼다. 그러나 붓다는 깨어있다. 그는 더 이상 꿈꾸지 않는다. 불교경전에 의하면 싯타르타가 깨달은 날 하늘에서 신들이 내려와 그를 경배하고 발을 씻겼다고 한다. 힌두교들은 이런 사상을 용서할 수 없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의 신들은 지고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이다. 불교는 인간을 최고의 정상으로 끌어올렸다. 불교에 의해 인간은 존재계의 중심이 되었다. 붓다에 의하면 존재계의 중심은 신이 아니라 깨달은 인간이다. 붓다의 죽음과 더불어 인도의 전통적인 마음들은 붓다가 뿌린 생각과 깨달음의 세계를 뿌리 채 뽑기 시작했다. 인도의 가장 위대한 정신은 이곳에 머무를 집이 없었다. 반면에 붓다를 인도를 대표하는 비슈누신의 아홉 번째 화신으로 옷을 갈아입혀 불교는 인도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었다. 인도인들은 붓다를 잊었지만 붓다의 사상과 가르침을 접한 아시아 전 지역에서 많은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인도인들은 너무 아는 것이 많아 가슴보다는 머리에 치우쳐서 깨달은 스승들은 제자들을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일이 흔히 일어났다. 중국에 선禪사상을 전한 보리 달마도 인도에서 마땅한 토양을 찾지 못해 씨 뿌릴 알맞은 토양을 찾아 동쪽으로 떠나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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