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영덕 작가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함영덕 작가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함영덕
  • 승인 2016.12.01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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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르칸트에서 4시간 달려 타슈켄트로 돌아왔다. 사마르칸트는 차를 빌려 1일 코스로 투어했다. 부하라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저녁 7시 1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여 저녁 기차로 돌아옴으로써 숙박문제를 해결하려고 계획을 짰다. 카자흐스탄에서 본 초생달이 어느새 반달이 되어 초원에 높이 솟아 있다. 새벽 6시에 잠이 깼다. 10시간 이상을 달려도 끝없는 지평선과 초원이 펼쳐졌다. 마음은 어느새 푸른 풀잎들로 가득하다. 부하라가 가까워지자 마을이 더 자주 나타나고 초원의 이름 모를 들꽃들이 눈부신 햇살에 가슴을 열고 있다. 부하라역에 내려 저녁 6시행 타슈겐트로 돌아갈 차표부터 예매했다.


실크로드 남북로가 교차하는 부하라(Bukhara)와 아크로바 성체

사마르칸트에서 4시간 달려 타슈켄트로 돌아왔다. 사마르칸트는 차를 빌려 1일 코스로 투어했다. 부하라는 시간을 단축하기 위해 저녁 7시 10분에 출발하는 기차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도착하여 저녁 기차로 돌아옴으로써 숙박문제를 해결하려고 계획을 짰다. 카자흐스탄에서 본 초생달이 어느새 반달이 되어 초원에 높이 솟아 있다. 새벽 6시에 잠이 깼다. 10시간 이상을 달려도 끝없는 지평선과 초원이 펼쳐졌다. 마음은 어느새 푸른 풀잎들로 가득하다. 부하라가 가까워지자 마을이 더 자주 나타나고 초원의 이름 모를 들꽃들이 눈부신 햇살에 가슴을 열고 있다. 부하라역에 내려 저녁 6시행 타슈겐트로 돌아갈 차표부터 예매했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아크로바로 출발했다. 버스로 20여 분 거리다. 성의 윗부분이 다 허물어지고 골격만 남은 성곽 맞은편에, 거의 완전한 모습으로 잘 보존된 성벽이 나타났다. 정사각형 벽돌을 촘촘하게 쌓아올린 성벽 군데군데에 나무를 박아 놓은 것이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매표소를 지나 언덕 정상을 오르면 벽면 좌우와 홀 가운데 꾸란을 유리 속에 넣어 진열한 사원이 나타난다. 좌측 벽을 돌아 들어가면 왕과 신하들이 만나던 장소가 나오고 계단을 오르면 왕이 외국사신을 만나던 접견실이 나타난다. 마구간 옆에는 부하라 한국汗國의 역사를 비롯하여 우즈베키스탄의 옛 지도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고고학 박물관에는 도자기의 색깔과 색채 등에 대한 다양한 문양과 생활 도자기들을 볼 수 있다.

   

1220년 칭키스칸의 공격을 받아 시가지의 대부분이 파괴 되었으나 이 성벽 앞에 와서 징기스칸이 미나레트의 높이를 묻다가 모자가 떨어지게 되자 자기가 처음으로 머리를 숙이게 되었다고 해서 이 성을 파괴하지 않고 그대로 남기고 떠났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0여분 걸어 차슈아 아유프묘가 나타나는데 넓은 뜰에 도착하니 무덤 앞엔 벽돌로 쌓아 만든 샘물터가 나타나는데 3,000년 전에 욥이 와서 부하라에 물이 없어 지팡이로 찍었는데 샘물이 솟았다고 전해진다.

   

9세기 사만조를 건국한 이스마일 사마니 황제의 묘로 향했다. 공원 가로수길 건너 편에 돔형식의 문과 벽면을 얇은 벽돌로 가로세로 세워 쌓아놓아 조형적인 미가 특이하고 빼어나다. 숲과 꽃으로 둘러싸인 정원에 사람의 키 높이보다 높게 쌓은 벽돌 묘다. 

 ∎평와의 종교 마니교

 

마니는 216년 무렵 티크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중간 지역에서 태어났다. 절름발이로 내성적이고 예민한 성격의 마니는 20대 중반 우연히 하늘의 계시를 받게되었다. 기독교와 조로아스타교를 융합한 새로운 종교로 전쟁과 살육을 부정하고 평화를 추구하는 마니교를 창시했다. 마니교는 서쪽으로는 로마제국을 거쳐 에스파니아, 동쪽으로는 중국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급속히 퍼져갔다.

   

그러나 마니는 조로아스타교 신봉자인 페르시아의 왕 바흐랍 1세에게 26일 간의 악형을 받고 순교했다.그의 시신은 찢겨져 거리에 버려졌고 잘린 목은 성문에 결렸다. 교조 사후 신도들의 적극적인 포교로 그 당시 세계 4대 종교의 반열에 오를 만큼 성장했다.

   

마니교는 영적인 지식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는 이원론적인 종교에 속한다. 마니교는 힘들고 혼탁스러운 이 세상에서 지혜와 영을 통해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마니교는 5세기 경 기독교로부터 이단 판정을 받아 박해를 받았고 로마제국 또한 모든 힘을 통해 탄압한 결과 마니교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종교 또한 신념이나 교리 못지않게 포교할 수 있는 시대적 상황이나 세력이 있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카리얀미나레트와 울루그벡메드라사

 

꾸란의 낭낭한 기도소리가 칼리얀사원의 경내를 잔잔하게 울려 퍼졌다.꾸란은 ‘읽다, 칭송하다’의 뜻을 가진 아랍어 동사 까라이에서 파생된 단어다. 꾸란은 하느님 말씀만을 의미하며 무함마드가 언급한 것은 꾸란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무함마드의 말씀은 하디스라고 하여 이슬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경전이지만 꾸란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칼리얀은‘크다’미나레트는‘첨탑’이라는 뜻으로 1127년 건축된 47m 높이의 첨탑이다. 매표소로 갔지만 적막했다. 넓은 광장으로 숨을 죽이며 걸어갔다. 아름드리나무가 넓은 그늘을 만들고 있는 곳에 조용히 앉았다. 꾸란의 낭송소리가 바닥에 튕겨져 울려 퍼지며 첨탑 속으로 스며 올라가고 있다. 꾸란은 ‘읽다, 칭송하다’의 뜻을 가진 아랍어 동사 까라이에서 파생된 단어다. 꾸란은 하느님 말씀만을 의미하며 무함마드가 언급한 것은 꾸란으로 간주하지 않는다. 무함마드의 말씀은 하디스라고 하여 이슬람을 이해하는 중요한 경전이지만 꾸란과는 명백히 구별된다.

 

오후 1시 35분 기도가 끝나고 첨탑이 열려 105계단을 안내 받았다. 첨탑 안의 둥근 원형계단을 따라 올라가는데 14살난 안내인 샴 시딘은 다람쥐처럼 어두운 망루를 제집처럼 오르내렸다. 첨탑 꼭대기 전망대에 서면 아크로바성과 칼베르시장, 작은 모스크들이 시가지에 산재해 있고 시장터엔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47m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부하라의 전경은 시가지 구조와 건축예술을 한눈에 감상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칼리얀미나레트 정면에 있는 미르압메드라사로 향했다. 구러시아 시절에 모든 메드라사가 닫혔는데도 이곳만은 계속 운영되었다. 미르압메드라사를 따라 정면으로 걸어가면 메드라사 바로 뒤편에 카라반들의 숙소가 나타난다. 커다란 문 입구에는 털모자를 비롯한 장신구와 서적, 양탄자를 파는 가계가 늘어서 있다. 이 현관을 지나면 꽃문양과 꾸란의 구절들로 장식된 헐벗고 퇴색한 낡은 메드라사가 나타난다. 사원에 들어가 보면 과거엔 매우 화려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벽장식들만 남아 있다.

 

부하라는 사원과 메드라사의 도시인 것 같다. 1220년 칭기스칸의 공격을 받은 부하라 시가지는 대부분 파괴되었으나 이슬람 관련 건물만은 몽골인들의 보호를 받았다. 뭉케 칸과 쿠빌라이 모친의 후원을 받아 이슬람 교육을 위한 메드라사가 건립되어 많은 이슬람 신학자들이 배출되었다. 그 후 1520년 신흥 우즈베크족 국가인 샤이바니 왕국의 수도가 되면서 시와 음악, 예술 등이 한층 활기를 띠어 16-17세기에는 중앙아시아의 정치와 경제, 문화의 중추적 역할을 담당했다.

 

기념품가게가 늘어선 광장을 지나 울루그벡메드라사의 기숙사에 들렸다. 1417년에 건축된 중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메드라사로 티무르의 손자인 울루그벡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기숙사에 들어서면 2평 남짓한 돔식의 작은방 한가운데 불을 지필 수 있는 네모반듯한 화덕이 있어 눈길을 끌었다. 벽면의 장식과 문양은 거의 퇴락한 상태다.

 

부하라는 비교적 작은 도시여서 지도 한 장만 있으면 걸어서 하루 동안 충분히 구경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바로 옆에 나리라 디완배기메드라사가 있는데 이 건물의 특징은 입구 정면 문에는 꾸란의 글씨 문양과 후버새를 장식하였다. 화려하고 넓은 날개와 긴 꼬리를 가진 공작새의 형상을 한 후머새와 가운데 태양신을 사람의 얼굴로 형상화한 형식이 매우 특이했다. 공작처럼 보이는 새는 조로아스터교의 신들 중에 하나인 후머새다. 땅에 내려올 때 사람들이 보면 너무 아름다워 놀랄까봐 눈에 뜨이지 않게 그림자처럼 지나가게 되는데 그 밑을 지나가는 사람은 부와 행운을 얻는다고 한다. 이 지역도 전통종교였던 조로아스타교의 영향을 받았던 지역임을 알 수 있다. 예수님이 태어 날 때 동방박사가 찾아왔다고 하는데 그 동방박사가 페르시아에서 활동하던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이라는 학설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불을 숭배하는 조로아스터교가 기독교와 이슬람교에 많은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주는 증표들이다.

 

오후 3시 30분 쯤 아라비아상인들이 교역을 위해 화폐를 교환했던 옛날 환전소로 출발했다. 순례자의 숙소 좌측 길로 조금 지나면 16세기에 만들어진 환전 장소인 시라폰(환전) 타기(시장)가 나타난다. 현재도 은행이 바로 옆에 붙어있다. 아담하고 작은 이 건물은 우리의 전당포를 연상시킨다.

 

저녁 6시 20분 타슈겐트 행 기차에 올랐다. 새 떼들이 날아오르는 초원 위로 알 수 없는 노래 가락이 흐르고 있다. 기차는 끝을 알 수 없는 지평선 너머로 서서히 빨려 들어가고, 달빛 흐릿한 들판 너머로 마을의 불빛들이 하나 둘씩 어둠을 밝히기 시작한다. 달빛이 철길 위를 달린다. 목화밭은 고개 숙인 채 깊은 잠에 빠져 있다. 사막과 초원이 이어지는 차장 가에서 잠을 청하기에는 너무나 아쉬운 밤이다. 새벽 2시 별빛이 부서지는 밤하늘의 유성들이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6년간의 극심한 고행 끝에 고행이 더 이상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깨닫은 싯다르타는 나란자라강가에서 몸을 씻고 수잣타의 죽을 공양 받은 후 보리수 아래서 선정에 들었다. 그날 밤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을 보며 위없는 깨달음에 이르렀다. 붓다는 모든 고통의 근원인 무명에서 벗어나 생사윤회의 강을 건너 다시는 태어나는 일이 없는 영원한 열반의 세계를 얻었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무수한 별빛과 유성들이 그리움을 몰고 온다. 초원의 밤하늘이 가슴을 적시고 있다.

 

새벽에 눈을 뜨니 기차는 아무다리아강을 지나고 있다. 강가엔 노를 젓는 배사공이 새벽공기를 가르고 있다. 희뿌옇게 밝아오는 빛나는 아침마저 간밤에 스며들었던 초원의 어둠을 걷어내기에는 아쉬운 시간이다. 가사도 알 수 없는 음악소리지만 악기를 두드리는 연주자의 모습이 나타나고 노래 부르는 가수의 몸동작까지 떠오르는 이 기이한 현상은 초원의 신기루가 아직도 혈관 속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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