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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든 배워야 하는 관계 포비아 청년들
무엇이든 배워야 하는 관계 포비아 청년들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24.01.1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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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비아(phobia)’라는 말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강력한 전쟁의 신 ‘포보스’에서 유래한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두려움을 말한다. 현대인의 심리를 설명할 때 ‘○○포비아’라고 사용하면서 무엇인가에 대한 두려움을 설명하는 심리적, 의학적 용어가 되었다. 수많은 포비아가 있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은 ‘관계 포비아’를 겪고 있다. 이는 극심한 경쟁사회에서 살아가는 덕에 친구관계를 맺을 기회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코로나19의 시대를 거치면서 비대면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나마 겨우 대학에 가서 책이나 강의를 통해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은 어떤 것일까?

전화에 대한 거부감, 문자로 …

기성세대들에게 관계란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집안 내에서는 형이나 동생, 언니나 누나의 관계에서 서서히 관계를 배워나간다. 그리고 어린 시절부터 동네에서 만난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기 시작해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가고 학교가 끝난 뒤에는 또다시 운동이나 놀이를 통해서 친교를 이어나갔다. 대다수에게 이런 일들은 너무 일상적이어서 딱히 부모님이 알려줄 이유도 없었고 학교에서 배워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는 완전히 다른 입장에 처해있다. 일단 거의 대부분 외동 자녀이기 때문에 일단 가정에서부터 또래의 인간관계를 배울 기회가 거의 없다. 거기다가 부모가 먼저 알아서 많은 것들을 해결해주기 때문에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거나 문제나 갈등이 생겼을 때 그것을 풀어나가는 방법을 알기 힘들다. 그냥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학교에 가서도 상황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모두들 학원으로 달려가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집으로 돌아올 뿐이다. 물론 이 시기에도 친구를 사귀기는 하지만, 매우 피상적일 뿐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공감하거나, 혹은 자신의 문제를 누군가에게 드러내기도 쉽지 않은 일이다. 시간이 허락하지 않고, 또 그것을 실제 해보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연스러운 ‘사회화 과정’ 자체를 겪어보지 않았다.

여기다가 IT기술의 발전도 한몫했다. 카카오톡, 문자, 이메일 등으로 사람들과 소통을 해왔을 뿐이다. 직접 얼굴을 보면서 상대의 표정을 감안하고, 손짓과 몸짓으로 상태의 정서 상태를 파악하는 기회가 극히 취약했다. 그러니 실제 사람들을 만나서도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에 더욱 큰 타격으로 다가온 것은 바로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의 시대였다. 하루 종일 많은 말을 하지 않고, 누군가를 직접 대면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었다. 그러니 인간관계는 더욱 부재했다. 당연히 관계에서의 시행착오를 거치지도 않았고 자신의 잘못을 수정할 기회도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또 하나 더 염두에 두어야할 것은 바로 어휘력과 문해력이다. 늘 문자로 대화하다보니 짧은 대화에만 익숙할 뿐, 논리적이고 긴 문장에는 능숙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사람의 목소리를 통해 통화하는 ‘콜 포비아’ 증상도 매우 큰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한 구인구직 포털이 MZ세대 약 1,500여 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화를 두려워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40%에 육박할 정도가 됐다. 이들은 모르는 전화를 받지 않고, 전화 통화를 최소화한다. 심지어 전화가 걸려오면 ‘문자로 말해 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

청년들은 이제 연애도 학교에서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전남대학교에서는 2023년 2학기에 ‘연애의 첫 단추’라는 이색 강의를 개설했다. 이 강의는 학교에서 일방적으로 개설한 것이 아니라 학생 공모전 당선작이었다. 총 11개 강의 신설에 대해 44개의 강의안이 쏟아졌다. 이후 심사와 학생의 수요를 감안해 선택했다. 수업은 혼전 동거와 데이트 폭력 등을 주제로 하면 실제로 연애를 하는 것과 비슷한 ‘데이트 과제’로 수행해야 한다. 이렇게 연애를 대학 강의의 주제로 했던 것에는 이성의 전화번호를 물어본다든지, 혹은 밥을 함께 먹자고 제안하는 것조차 두려워하는 학생들이 적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이 수업이 끝난 뒤에는 데이트 과제를 실시했던 커플들끼리 실제 연인이 된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의도적인 접촉 기회 늘려야

물론 이는 비단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추세가 생기고 있다. 영어로 스몰토크(Small Talk)는 가볍고 일상적인 대화를 의미한다. 사람을 만나거나 지나칠 때 가벼운 주제로 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미국 청년들도 여기에 익숙하지 못하다보니 대학에서 이런 기본적인 스킬을 가르치기도 한다.

그나마 대학에서 이를 충분히 배우면 되겠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보통 대학에서의 인간관계는 동아리를 통해서 훈련되고 확장되는 경우가 많다. 선배, 후배들과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문제는 대학 시절에는 취업이 인간관계를 가로막는다. 스펙을 쌓으려다보니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그래서 최근 대학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동아리 폐부이다. 고려대에서는 봉사 동아리가 사라질 예정이고, 서울대에서는 1971년에 만들어진 전통적인 동아리도 사라졌다. 물론 코로나19로 인해 학부생들이 모일 기회가 없어서이기는 하지만, 펜데믹 시대가 끝난 이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반대로 취업 동아리는 급격하게 인원이 급증하고 있는 상태다. 심지어 동아리에 면접을 보고 들어가는 경우까지 생기고 있다. 문제는 현재의 대학생들이 ‘선후배 관계가 별로 중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한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회사에 입사하면 이런 상황이 달라질까? 그나마 대학 시절보다는 나을 수 있겠지만 역시 재택근무나 해외근무 등을 통해서 비대면 근무의 길이 열려 있다. 따라서 과거처럼 아주 많은 사람을 만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얼마든지 근무가 가능하다.

더구나 이런 상황은 미래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그 이유는 인공지능 때문이다. 이제 AI는 인간과 대화하는 수준으로 발전했으며, 학교의 과제도, 기업의 프리젠테이션도, 연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따라서 이제 실제 인간과의 교류는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고, 향후 사람들은 인간을 대면해야할 기회가 더욱 줄어들 수밖에 없다. 조금 더 어두운 미래를 상상해본다면, 이러한 인간관계의 단절이 결국 한 사람의 죽음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이다. 관계가 최소화되고 교류하는 사람들이 없다보니 극단적으로는 고독사를 예상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결국에는 ‘실전 대인관계’를 많이 가져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강의를 통해서, 혹은 책을 통해서 여러 가지 원칙을 배운다고 해도 실제의 사람과 교류하면서 하나씩 배워나가고 수정해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향후 대학이나 기업에서도 이에 대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이는 ‘의도적’으로 진행되어야만 비로소 극복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학교에서도 이제는 인간관계에 대한 교육을 하고 그에 걸맞는 기회를 주어야할 필요가 있다. 학생들 간에 접촉의 기회를 좀 더 늘리고, 낯선 사람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존재하지 않는 이상, 다른 방법을 통해서 인간관계를 강화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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