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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감독 드니 빌뇌브의 전작을 살펴보자
블레이드 러너 2049의 감독 드니 빌뇌브의 전작을 살펴보자
  • 송지선
  • 승인 2017.10.20 16:4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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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주받은 명작이라 불리며 독창적인 디스토피아의 세계관을 시각적으로 구현했던 '블레이드 러너 2019'의 후속작 '블레이드러너 2049'가 개봉했다. 전작의 세계관은 리들리 스콧에 대한 존중으로 2019년의 상상도를 바탕으로 30년 후의 세계로 재탄생했다. 감독을 맡은 드니 빌뇌브는 전작 '컨택트'에서 보여준 시각적 상상력과 인공적이고 신비로운 이미지를 진일보한 미장센으로 그려낸다. '블레이드 러너 2019' 특유의 철학적 분위기는 드니 빌뇌브의 스타일과 잘 맞아떨어져 또다른 명작을 탄생하게 했다.  

 

의도적으로 정보를 감추거나 지연시키는 드니 빌뇌브의 구성 방식은 관객에게 사유의 공간을 남겨놓으며 이미지와 상황을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또한 영화 곳곳에는 드니 빌뇌브의 독특한 이미지 감각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어떤 장면들은 완벽한 미장센을 만들어내며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블레이드 러너의 속편 감독으로는 최적의 선택이라고 할 만하다.  

 

캐나다 출신의 드니 빌뇌브는 1998년 '지구에서의 8월 32일'이라는 영화로 감독생활을 시작했다. 첫 작품이 칸 영화제에 추천받는 등 일찌감치 주목을 받았다. 2000년 '마엘스트롬'을 찍고 9년이나 공백기를 보낸 그는 이후 인상적인 작품들을 줄줄이 내 놓으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것은 동명의 희곡 원작을 영화화 한 '그을린 사랑'부터다. 이 작품은 토론토국제영화제 최우수캐나다영화상과 작품상 등 여러 영화제에서 각종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후 '블레이드러너 2049'까지 그의 작품들은 개봉 때마다 관심을 받았다. 철학적 세계관과 진지한 태도로 삶을 바라보는 드니 빌뇌브의 작품들을 훑어보자.  

 

 

 

 

'그을린 사랑'은 레바논 내전을 배경으로 정부와 반군 사이의 끊임없는 복수의 전쟁에 휘말려든 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이다. 와즈디 무아와드의 희곡 원작 '화염'(Incendies)은 2012년에 국내에 소개됐고 15년과 16년에 명동예술극장과 아르코예술극장에서 공연된 바 있다.  

 

영화는 잔느와 시몽이 어머니 나왈의 유언을 듣고 형제와 아버지를 찾아나서면서 시작된다. 남매는 존재조차 몰랐던 형제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그동안 몰랐던 어머니의 끔찍한 과거를 알게 된다. 어린 시절 나왈은 난민 출신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아이를 낳았고 니하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하지만 나왈의 오빠들은 남자를 명예살인하고 아이는 고아원에 보낸다. 이후 나왈이 아이를 찾던 중에 내전이 일어나고 그녀는 전쟁터로 들어가지만 아이를 찾지 못한다. 전쟁에 휘말려 난민을 위해 싸우다 교도소에 수감된 나왈은 그곳에서 교도관에게 수차례의 강간과 폭행을 당하며 살아남는다.  

 

마침내 시몽이 자신의 형을 찾게 됐을 때 관객들은 모두 충격에 빠질 수밖에 없다. 단 하나의 반전이 전쟁의 참상에 대한 이야기를 역사에 대한 이해와 해석으로 이끈다. 또한 인물의 행동을 통해 용서와 인간애 그리고 진정한 용기에 대한 이야기로 거듭난다.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이야기다.  

 

드니 빌뇌브는 배면에 강렬한 감정이 흐르는 원작을 영화화 하면서 과도한 표현의 함정에 빠지지 않고 절제된 연출을 선보였다. 감정선을 위해 원작의 형식을 피하고 서사적으로 각색했더라면 관객들은 쉽게 불편함을 느끼고 영화의 이야기에서 벗어났을 것이다. 이야기의 힘을 알고 연출과 조율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하다.  

 

또한 레바논 출신인 원작자 와즈디 무아와드의 작품이 주목을 받아 서구권에 알려지고 다시 서구권의 감독이 영화를 제작하기 위해 중동을 찾는 또다른 현실의 모험이 마치 작품의 순환구조를 닮은 것 같아 신기하다.  

 

 

 

 

'프리즈너스'는 평화로운 마을에서 두 가정의 아이가 납치되자 아이들을 찾아나서는 부모와 형사의 이야기다. 부모 중 한 명인 캘러 도버는 자신의 아이를 납치해 간 용의자를 확신하지만 그와 달리 형사 로키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수사를 진행한다. 캘러는 확신하는 용의자를 데려와 고문까지 시킨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부에서는 충격적인 범인의 정체가 밝혀진다. 

 

드니 빌뇌브의 연출 장점이 빛을 발한 영화다. 특유의 스토리텔링 방식은 추리, 스릴러 장르 영화에 계속해서 궁금증을 유발하고 이 과정에서 윤리적 고민과 사유를 이끌어 낸다. 그의 영화는 관객들의 생각을 논리적 접점으로 이끈다. 더 이상 논리의 싸움이 가능하지 않은 지점과 딜레마의 지점에 다다랐을 때 관객들은 어느 때보다 깊이 있는 고민을 하게 된다. 과도하게 정보를 숨기는 습관은 여전하지만 장르적 특성 마저 이용해 사유로 이끄는 작가적 역량이 돋보인다. 드니 빌뇌브는 '프리즈너스'를 통해 기존에 존재하는 이야기를 가공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만들어내는 능력도 증명해냈다.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 원작을 영화화 한 '에너미'는 평단의 반응이 극단적으로 갈린 영화다. 영화는 한 남자에게 똑같이 생긴 남자가 나타나면서 일어나는 일을 다룬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상대방은 남자의 생활에 침범하기 시작하고 남자의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결국 같은 선택을 하게 된다. 각각 상대의 여자를 만나게 된 것. 하지만 영화는 모든 것이 허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 둔다. 의도가 불분명해 보이는 영화는 철학적 사유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을 넘어 애매모호해진다. 성패를 떠나 드니 빌뇌브의 작품 중 가장 힘이 많이 들어간 영화다. 

 

 

 

 

'시카리오 : 암살자의 도시'는 멕시코의 갱스터와 그들을 진압하려는 미국의 세력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스릴러이다. FBI 요원 케이트는 멕시코의 마약 조직을 소탕하기 위해 CIA에 소속돼 함께 일하게 된다. 정의를 위해 일하는 케이트는 CIA의 진행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또한 CIA 책임자 멧은 콜롬비아 출신의 전직 검사 알레한드로라는 정체 불명의 남자와 함께 활동을 한다. 알레한드로는 작전이 진행될수록 점차 거리낌없이 비윤리적인 방법을 사용해가며 조직 소탕에 나선다. 하지만 실제 그가 원한 것은 개인적인 원한을 푸는 것이고 공적 정의에는 관심이 없다. CIA는 그가 필요하기 때문에 오히려 방식을 문제 삼는 케이트는 그들에게 방해요소가 될 뿐이다.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는 독특한 영화다. 주인공이 목적하는 바는 분명하며 결말까지 다름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달성되지 못하고 무너지고 만다. 정의를 지키지 못하고 무너지는 주인공들은 여러 영화에서 흔하게 등장한다. 다만 주인공의 신념이 꺾이는 장면은 그것이 희소하거나 특별해서라기보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필연적이어서 충격적이다. 기존의 정의가 완전히 힘을 잃고 상실된 자리에 마치 주인공이 교체되듯이 힘을 가진 자의 남겨진 서사가 진행 된다. 영화는 애초에 관객의 기대와 무관하다는 듯이 현실을 이야기한다. 마치 관객을 속이고 놀리고 마침내 진실을 폭로해 무너뜨리는 것 같다. '시카리오'에서는 드니 빌뇌브가 복잡한 이야기를 원하는 방식으로 직조하면서 의도한 바를 명확히 성취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으로서는 일종의 경지에 가까워진 것이다.  

 

 


 

 

테드 챙의 SF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각색한 '컨택트'는 외계 생물체와의 조우를 통해 반대로 인간을 조명하는 영화다. 일종의 반영이다. 영화는 남편을 잃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주인공 루이스가 어떻게 운명을 감당하는 용기를 갖게 되는지 그 과정을 그린다.  

 

이 영화의 장점은 시나리오적 기교와 잘 조율된 연출에 있다. 작품의 주제의식에 절묘하게 일치하도록 시나리오는 관객이 과거와 미래의 순차적 시간관을 혼동하도록 만든다. 극중에서 우리가 과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은 미래로 그리고 미래라고 믿었던 것은 과거로 판명난다. 이 관계를 뒤집어 놓음으로써 우리가 다른 결정을 할 수 있음을 작품은 말하고 있다.  

 

영화는 '우리가 미래를 알고 있다면 그것을 바꿀 것이냐'는 질문을 던진다. 고통스러운 미래라 할 지라도 그 속에는 정확히 똑같이 살아가지 않는다면 불가능한 유일한 것들이 넘쳐난다. 고통을 피하기 위해 세상에 단 하나뿐인 소중한 것들을 버려야 할지 그렇지 않으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하고 같은 선택을 해야 할지 영화는 묻고 있다. 드니 빌뇌브의 연출은 시나리오의 기교를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주제를 자연스럽고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무리없이 작품이 제시하는 주제의식을 받아들일 수 있게 하며 그 분위기 연출 역시 탁월하다.  

 

 드니 빌뇌브는 장단점이 명확한 감독이다. 철학적 사유가 만들어내는 공백의 지점은 종종 빈틈이 된다. 반면 미장센과 영상미 그리고 어우러지는 이야기 구조와 깊이 있는 사유의 조화가 장점으로 도드라진다. 하지만 영상은 점차 완벽해지고 있고 이야기는 그 영상 속으로 자연스럽게 섞여들고 있다. 확실히 드니 빌뇌브는 진보하고 있다. '블레이드 러너 2049'에서는 한 단계 더 앞으로 나아간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어떤 작품일까. 이처럼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만드는 감독은 흔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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