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8:09 (금)
영화 '남한산성', 생사에는 좌우가 없다
영화 '남한산성', 생사에는 좌우가 없다
  • 전인수
  • 승인 2017.10.11 19:4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623년 3월 능양군이 군사를 동원해 반란을 일으킨다. 강계부사에 올랐으나 실각한 김류와 함경도 병마 절도사로 부임해 배치 직전이었던 이괄, 평산부사로 재직중이던 이귀 등이 군사를 모아 한성으로 진격했다. 조정은 중도에 반란 계획을 눈치 챘음에도 진압군의 패배와 능양군의 내응으로 정권을 내주고 말았다. 광해군은 폐위되고 능양군이 왕좌에 앉게 된다. 인조반정이 성공한 것이다.  

 

광해군과 반목했던 인목대비는 능양군의 양위교서를 내리면서 광해군 폐위 이유를 세가지로 꼽았다. 첫째는 왕위를 위해 혈육을 살해하고 자신을 유폐 시킨 것이며 둘째는 과도한 토목 공사로 인해 나라를 위태롭게 했다는 것 세번째는 명나라에 대한 예를 지키지 않고 오랑캐에게 굴복했다는 점이다. 

 

실리를 중시하며 명과 후금 사이에서 중립 외교를 이어나가던 광해와 달리 인조는 대명 사대주의를 따랐다. 국력이 쇠하고 후금과의 전쟁에서 연이어 패하던 명을 따른 것은 국제 정세를 잘못 판단한 탓이다. 하지만 대명 사상은 반정의 명분이었다. 한 나라의 정부를 전복시키는 일은 명분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반정을 일으킬 당시 반란군이 보유한 병사 수가 겨우 700여 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은 명분과 이념의 중요성을 말해 준다.   

 

 

 

인조 등극 후 나라는 위태로웠다. 1년 만에 반정의 공신인 이괄의 난이 있었고 4년 뒤에는 후금이 침략해 정묘호란이 일어났다. 1636년에는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청으로 국호를 바꾼 후금이 지속적으로 요구했던 것은 명을 치기 위한 군사 원조였다. 조선은 이에 두 번이나 불복했다.  

 

군사 원조를 넘어 군신관계를 요구하며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이괄의 난으로 비어 있던 북방을 뚫고 청나라 군사들이 들이닥쳤다. 강화도로 피신하려던 인조는 청에 길목이 막혀 불가피하게 남한산성에 주둔했다. 전투에 단련된 12만 병사와 혼란의 정세 속에서 피아의 혼란을 겪은 1만 3천의 병사의 승패는 불 보듯 뻔 한 일이었다. 한 겨울 엄동설한의 추위 속에서 병사들은 전의를 상실해 갔다. 남한산성의 식량창고는 성의 바깥에 있어 보급 역시 완전히 차단된 상태였다. 진퇴양난의 상황에서 눈앞에는 적들이 등 뒤에는 명분이 가로막았다. 인조와 백성들은 남한산성에서 47일 간을 버티다가 결국 청에 굴복하고 만다. '남한산성'은 도망칠 수도 맞부딪칠 수도 없었던 그곳에서의 일을 다룬다.  

 

 

 

압도적인 우세의 병사들이 성을 에워싸고 있는 상황에서 신하들은 주화와 척화로 나뉘어 대립하기 시작한다. 주화를 대표하는 인물은 반정에도 참여 했던 이조 판서 최명길로 정묘호란 때 청나라와 외교를 통해 병사를 물리게 했던 공이 있다. 척화 쪽의 인물은 예조 판서 김상헌이다. 둘은 한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하게 다툰다. 산성 밖에서 정세 변화의 조짐이 보이면 대립의 각은 더욱 날카로워진다.  

 

나라의 향방을 결정하는 것은 왕에게 달려있으므로 신하들은 왕의 결정을 유도해야 한다. 하지만 인조는 내내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실상 남한산성이라는 상황 속에서 인조가 우유부단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딜레마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칼끝이 목을 향하고 있음에도 자신이 반정을 도모했던 명분이었던 대명 사상을 쉽게 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인조가 대사 중 '살길'을 찾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다. 왕위를 찬탈한 장본인이 자신이 내세운 명분을 지워버렸을 때 그것은 죽음을 허용하는 것과 다름없다. 그래서 인조는 쉽게 결정을 하지 못한다. 청에 항복해 목숨이 살아 있다고 해서 온전히 산 것은 아니다. 그래서 인조는 실낱같은 승리의 희망을 엿보려 한다.  

 

 

 

이리도 저리도 치우칠 수 있는 임금을 눈 앞에 둔 신하들은 전쟁을 시작한다. 왕의 귀를 여는 자가 승리하는 전쟁이다. 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적절히 말할 줄 아는 자가 신념을 지킬 수 있다. 김상헌은 전세가 유리해 지도록 병사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서날쇠가 조총의 상태가 좋지 않다고 알렸을 때 곧바로 왕에게 보고해 조치를 취한다. 또한 병사들에게 가마니를 주어 추위를 피하게 한 것 역시 최명길의 적극적 의지 덕이다. 하지만 상황을 바꾸는 것은 말이다. 병사들을 불리한 전투로 내모는 것도 병사를 살리는 것도 말이다. 임금의 결정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말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 말에 집착한다. 한편으로 이 언어는 동명소설의 원작자 김훈의 언어이기도 하다. 원작의 대사를 그대로 살리면서 동시에 언어의 싸움을 보다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빈번한 클로즈업을 사용했다. 각각의 인물들을 화면에 가득 채워넣음으로써 영화는 스케일이나 장경의 부진을 만회한다. 오히려 인물들의 말에 집중하게 해 영화에 몰입감을 더한다. 최명길과 김상헌의 의상 역시 흑백으로 대립해 이념의 싸움을 극대화 하고 있다.  

 

 

 

신하들의 다툼은 한 나라의 정치적 상황 앞에서 언제나 벌어지는 좌우의 대립을 떠올리게 한다. 대명 사상이라는 기존의 사고를 지지하는 김상헌이 보수적이라면 새로운 방식을 인정하는 최명길은 진보적이다. 다만 이들에게는 사익추구가 없다. 그래서 더 치열하다. 또한 이들의 싸움은 대의명분과 삶의 싸움이다. 명예롭게 죽느냐 혹은 비겁하게 살아남느냐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들의 말싸움이 치열하고 간절하게 보일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점 때문이다. 이 질문은 역사를 관통하며 개인사를 관통한다. 삶의 목적에 대한 문제는 비단 국가의 고관대작들만의 고민이 아니다. 다만 남한산성의 백성들은 후자에 속한다. 의동생처럼 따르던 칠복을 잃은 날쇠는 상관이 군기강을 생각할 때 추위에 동상으로 쓰러지는 군사들의 몸을 생각한다. 또한 할아버지가 죽어 산성을 찾아온 소녀 나루는 전쟁의 승패가 아니라 봄에 필 민들레를 생각한다.  

 

 

 

이들은 '살아 있어야 대의도 명분도 있다는' 최명길의 주장에 명백히 따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들이 갖고 있는 것은 말이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기억한다. 겨울이 가면 봄이 오고 민들레가 꽃을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알고 있으니 기다릴 뿐이다. 살아있으니 살고 살기 위해 기다린다. 생의 맹목성을 긍정한다. 죽음은 무에 불과하니 결국 죽음에 대한 선택 역시 아무것도 아닐 뿐이다.  

 

내내 건조한 영화 '남한산성'이 말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아마 이것 뿐일 것이다. 생의 맹목성과 그 안에서 발견되는 불가피한 아름다움이다. 그래서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끝내 인조가 청 태종에게 삼배구 고두례(三拜九 叩頭禮)를 올리는 장면이 아니라 영화가 끝날 때 울려 퍼지는 날쇠의 모루질 소리다. 비장함도 거기에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여의도파라곤 1125)
  • 대표전화 : 02-780-0990
  • 팩스 : 02-783-25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운정
  • 법인명 : 데일리뉴스
  • 제호 : 종합시사매거진
  • 등록번호 : 영등포, 라000618
  • 등록일 : 2010-11-19
  • 발행일 : 2011-03-02
  • 발행인 : 최지우
  • 편집인 : 정하연
  • 종합시사매거진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종합시사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isanewszine@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