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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정답은 무엇인가? - 최태호 중부대 교수
[Column]정답은 무엇인가? - 최태호 중부대 교수
  • 편집부
  • 승인 2017.09.01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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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의 제자 두 명이 군수가 되었다. 공자는 기쁜 마음으로 제자들을 찾아가 만나보았다. 제자들에게 공자 는 무엇이 어떻게 바뀌었느냐고 물었다. 우선 자천(子 賤)이라는 제자는 이렇게 답을 했다. “유학을 펼쳐 날로 밝아졌으니 얻은 것(一得)이요, 돈을 벌어 친척들에게 베풀고 가까워졌으니 또 하나 얻은 것(二得)이 요, 친구들에게 베풀 수 있어 붕우가 많아졌으니 세 번 째 얻은 것(三得)입니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공멸(孔 蔑)이라는 제자는 “시간이 없어 공부를 못했으니 첫 번째 잃음(一亡)이요, 정사에 바빠 친척과 날로 멀어졌으니 또 하나 잃은 것(二亡)이요, 같은 이유로 친구들을 만나지 못했으니 세 번째 잃은 것(三亡)입니다.”라고 하였다.  

 

같은 일을 맡아서 행함에 이와 같이 정반대의 의견이 나올 수 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자는 얻은 것이 많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자는 잃은 것이 많다고 한다. 동일한 일을 두고 각자의 생각에 따라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 공자의 개인주의 교수법은 이런 면에서 의미가 있다. 보통 사람은 인에 대한 정의를 내리라고 하면 하나로 마무리하겠지만 공자의 경우는 다르다. 그 러나 그 답이 틀린 것이 아니라 각자의 개성에 맞게 정의한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같은 것이다. 예를 들면 성질이 급하고 단순한 제자에게는 “仁은 사랑하는 것( 愛也).”이라고 하였고, 철학적인 제자에게는 “극기복례(克己復禮)가 인(仁)이니라.”라고 가르쳤으며, 어리고 성질이 급한 제자에게는 “충성하고 용서하는 것(忠 恕而已矣)이다.”라고 하는 등 사람에 따라 인의 정의를 달리하였다.  

 

공자에게 인은 최고의 덕목으로 확고 부동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나 가르치는 대상에 따라 적절히 정의를 달리한 것이다. 공자는 인이 최고의 덕목이라고 보았지만, 그가 말한 인(仁)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착한 사람’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지위가 높아서 정치를 잘하여 백성들을 편하게 하고 국가를 튼튼히 한 사람이나, 학문과 덕행이 높아 후세에 이름을 날릴 만한 사람’을 어진 사람이라고 하였다. 전자는 관중(管仲)과 같은 인물이고, 후자는 안연 같은 사람이다. 덕행으로 따진다면 관중보다는 포숙아가 훨씬 더 자애로운 사람이다.  

 

그(포숙아)는 관중이 비 열한 짓을 해도 항상 이해하고 배려했던 관중의 친구 였다. 훗날 관중이 “나를 낳아주신 분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주는 사람은 포숙아다.”라고 할 정도로 포숙의 인간성을 인정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자는 포숙을 ‘어진 사람’이라고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비열하게 포숙아를 속이고 재물을 편취했던 관중을 어진 사람 이라고 했다. 이유는 관중이 큰일을 해서 후세에 이름을 날리는 재상이 됐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판단으 로 한다면 어진 사람의 대표는 포숙아가 되어야 할 것이나 공자는 관중을 어진 사람이라고 하였다. 우리가 생각하는 어진 사람의 개념과 공자가 생각하는 개념이 다르다. 세상 일에는 정답이 없다. 과거의 관행이 오늘의 범죄가 되듯이, 과거에 진실이라고 여겼던 학문이 오늘날 거짓이 되는 것을 많이 보았다. 그 대표적인 예가 콜럼버스의 미국 발견이다. 콜럼버스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에 토착민(원주민)들이 살고 있었다. 그 들(원주민)이 미국을 발견하고 살던 주인이다. 유럽인의 시각으로 보았을 때만 콜럼버스가 발견자일 뿐이다. 다윈의 진화론이 과학적이라고 하지만 지구가 생성 된 지 60 억년이 지난 지금도 원숭이는 원숭이일 뿐이고 인간은 인간이다. 율곡은 강릉 사람이 아니다. 태어 난 곳이 그곳일 뿐이지 경기도 파주가 그의 고향이고 삶의 터전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학생들은 대부분이 강릉 사람인 줄 알고 있다. 시각을 어디에 두고 가르치느냐 에 따라 지식은 바뀔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창의적이지 못한 단순한 지식의 암기는 한계가 있다. 작금의 교육이 이러한 결과를 가지고 왔다. 무조건 정답은 하나여야 하는가? 한 사람이 집을 짓는데 두 달이 걸렸다면 60명이 집을 지으면 하루 만에 지을 수 있는가? 단순한 논리를 벗어나 사색하고 논쟁할 줄 아는 지혜를 가르쳐야 한다. 정신분열증 환자를 치료한다고 전두엽을 떼어냈던 과거를 기억 하자. 그것이 노벨상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사실도 잊지 말자. 진리만이 영원하다!

   

 

 최태호(중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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