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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인종차별에 대한 발랄한 우화
[프리뷰] 인종차별에 대한 발랄한 우화
  • 전인수
  • 승인 2018.06.04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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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들의 섬 Isle of Dogs, 2018

감독 웨스 앤더슨 출연 틸다 스윈튼, 빌 머레이, 에드워드 노튼, 그레타 거윅, 코유 랜킨 등

 

웨스 앤더슨 감독의 4년 만의 신작 ‘개들의 섬’이 6월 21일 국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이번 영화는 웨스 앤더슨이 지난 2009년 ‘판타스틱 Mr. 폭스’ 통해 선보인 바 있는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북미에서는 지난 3월 23일 개봉해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현재 로튼 토마토에서 ‘개들의 섬’은 신선도 89%를 기록 중이다. 베를린 영화제에서는 개막작으로 선정되고 은곰상을 수상했으며 제19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는 폐막작으로 선정돼 3천석의 객석을 매진시켰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특유의 미장센과 연출 스타일로 매니아 층이 두터운 감독이다. 전작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영화의 공간을 파스텔 톤으로 독특하고 아름답게 연출해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관객들에게 호평을 받았다. ‘개들의 섬’에서도 그의 스타일은 여전히 빛난다. 풍부한 채도와 높은 명도를 통해 동화 같은 색감을 만들어 내는 것도 여전하다. 또한 그의 필모그래피 전반에서 나타나는 수평, 수직의 카메라 워크와 파노라마 씬들을 통한 재기 넘치는 연출이 또 한 번 발휘된다. 스탑 모션 애니메이션 전작인 ‘판타스틱 Mr. 폭스’에서처럼 기존의 그의 스타일이 애니메이션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만나 매 장면 유머와 재치가 극대화됐다. 다만 ‘판타스틱 Mr. 폭스’에 비해 클레이의 질감을 강조해 보다 거칠고 역동적인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개들의 섬’은 개 혐오가 퍼진 근미래의 일본을 배경으로 한다. 대대로 고양이를 신봉한 가문 출신인 메가사키 시의 악덕 시장 코바야시는 사적 취향을 이유로 개 전염병을 이용해 개 혐오 여론을 만든다. 손수 자신의 집을 지키는 보디가드 개 ‘스폿츠’를 쓰레기 섬으로 추방시키면서 잇따라 시 전역의 모든 개들이 격리된다. 그리고 ‘스폿츠’의 진짜 주인인 코바야시 시장의 입양된 조카 아타리 코바야시가 자신의 개를 찾아 섬으로 떠나고 그곳에서 다섯 마리의 개를 만나 여정을 시작하게 된다.

 

‘개들의 섬’의 가장 큰 매력은 극강의 귀여움이다. 일곱 마리의 주인공 ‘치프’와 ‘스폿츠’, ‘오라클’, ‘보스’, ‘킹’, ‘듀크’, ‘렉스’ 등은 각각 다른 종으로 등장해 귀여움을 유발한다. 목소리 연기를 맡은 배우진의 면면도 화려하다. 브라이언 크랜스톤, 리브 슈라이버, 에드워드 노튼, 빌 머레이, 틸다 스윈튼, 스칼렛 조한슨, 프란시스 맥도맨드, 그레타 거윅, 오노 요코까지 개성 있는 배우들이 총출동했다. 개들의 지능지수가 반영된 듯 다소 엉뚱한 이들의 모습은 배우들의 코믹 연기로 한층 재미를 더한다. 특히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소년 아타리와 교감하는 개들의 모습은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캐릭터의 매력뿐만 아니라 독특한 배경도 영화의 관람 포인트다. 매번 특정 공간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보여준 웨스 앤더슨은 ‘개들의 섬’에서 쓰레기 섬을 새롭게 꾸몄다. 한 인터뷰에서 웨스 앤더슨은 “이 영화의 쓰레기 섬은 매우 깔끔하게 정리된 쓰레기장이다. 그냥 쓰레기가 반복된다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래서 각종 쓰레기마다 정체성을 만들어줘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것은 웨스 앤더슨 감독이 액션을 다루는 방식이다. 관람 대상층을 고려해 폭력성을 완화하기 위한 의도로 액션 씬을 과장된 모습으로 처리하고 캐릭터가 현실의 물리 법칙을 뛰어넘는 것은 애니메이션에서는 흔한 방식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의 연출이 놀라운 것은 이러한 장면들을 연출할 때 고안해내는 방법의 창의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개들의 섬’에서는 개들이 엉겨 붙어 싸움을 벌일 때 애니메이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먼지 덩어리가 생겨나 만화적 상상을 극대화한다. 폭발도 동일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데 자세히 보면 먼지 덩어리가 솜털로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인공 개들이 케이블카를 타고 쓰레기 처리장의 처리기들을 스크린 옆으로 가로지르면서 간발의 차로 위기를 모면하는 장면에서도 상상력이 발휘된다. 입체적 현실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정측면의 화각을 통해 관객들에게 납득시키는 것이다. 주인공 아타리의 보디가드 개 ‘스폿츠’가 절단된 교량을 점프해 뛰어넘는 장면은 기지가 넘친다. 애니메이션이 비물리적 상황을 허용함에도 ‘스폿츠’가 점프하는 순간만큼은 악당들이 파견한 화상 TV로 보여주는 식이다. 어색함을 줄이고 상황을 더 역동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의도일 것이다. 웨스 앤더슨의 기발한 연출들은 만화적 재미 추구를 넘어 마치 상상력의 극단을 탐험하는 것만 같다.

 

‘개들의 섬’은 스토리의 얼개와 연출 면에서 너무나 발랄한 영화이지만 진지한 주제의식도 갖고 있다. 개들의 원관념을 소수자로 설정할 경우 영화는 다양한 소수자를 폭력적으로 탄압하는 현실을 문제 삼는 사회 비판 영화가 된다. 비평가들이 이 영화를 인종차별에 대한 우화로 평가한 이유다.

 

영화 속에서 코바야시 시장은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모든 개들을 추방한다. 심지어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개 혐오 여론을 조성하기도 한다. 소수자와 그들이 끼치는 영향을 과장해 자신들의 목적에 이용하는 현실의 정치 생태계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 점에서 영화가 일본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속에서 편의상 사람들은 자신들의 모국어를 사용하고 개들은 영어를 사용한다. 배경이 일본임을 감안하면 현실의 상황이 전복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영어를 사용하는 현실의 패권국이 영화 속에서는 쫓겨난 이민지로 묘사되는 것이다. 뒤바뀐 언어는 상황의 아이러니를 극대화하고 관객들을 이방인으로 느끼도록 한다. 웨스 앤더슨이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하면 백인들이 그들의 영토에서 추방당한 상황을 시뮬레이션 하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차별적 지위를 체험하는 픽션이다.

 

 

 

하지만 감독이 우화적 요소를 정밀하게 설계한 것 같지는 않다. 우화를 선택한 감독의 의도가 현실 비판보다는 상황 설정과 유희적 상상에 가깝기 때문이다. 영화 내내 강조되는 일본의 이미지는 서양 감독의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치장된 느낌이 강하다. 일본 문화는 곧잘 과잉 전시되며 일방적인 편견에 종사한다. 일본 인물들을 묘사하는 방식이 특히 그렇다. 또한 주인공 개들은 집개와 들개로 정확히 구분된다. 그들은 이따금 자신들의 처지를 자학적 유머로 비하하곤 하는데 우리나라의 유머 감각과는 다소 엇나간다는 느낌을 준다. 인종 차별 극복의 의도가 인종 편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생각도 하게 된다.

 

그럼에도 ‘개들의 섬’은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다. 영화를 보고 나면 집 없이 떠도는 개들의 이름과 사연이 궁금해진다. 그 많은 개들의 주인들도 모두 따뜻한 사람들로 보인다. 문득 우리 주변 사람들의 사연도 궁금해지게 된다. 그래서 ‘개들의 섬’은 웨스 앤더슨 감독의 미장센과 스타일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도 누구에게나 볼만한 영화이다. 현실을 다르게 보게 만들었다면 그 영화는 충분히 성공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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