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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무대 위의 도덕, 연극 <피와 씨앗>
[Column]무대 위의 도덕, 연극 <피와 씨앗>
  • 이혜인
  • 승인 2018.06.01 09: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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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피와 씨앗> 두산아트센터 Space111 2018.05.08-06.02

연출 전인철 출연 강명주 우미화 박지아 안병식 이기현 최성은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퇴근이 머지 않은 시간에 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연극 하나 같이 보지 않겠느냐는 연락이었다. 별 일이 없어 흔쾌히 수락했다. 우리는 연극 <피와 씨앗>을 선택했다. 이 연극은 두산아트센터가 기획한 [두산인문극장 2018: 이타주의자]의 일환이다. 인문극장은 올해까지 6년째 이어져 오고 있는 기획인지라 우리는 별 고민 없이 극을 골랐다.

 

얼핏 보면 간단하다. 아이작은 죄수이며 소피아는 농장의 주인이자 수의사이다. 손녀 어텀은 낫기 힘든 병을 앓고 있고 어떤 이유에선지 소피아는 아이작이 농장에 방문해주기를 원한다. 하지만 연극은 결코 친절하지 않다. 연극의 첫 장면은 아이작이 농장에 방문하길 바라는 소피아가 보호감찰관인 버트에게 애원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관객은 그리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없다. 꽤 많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관객은 알게 된다. 소피아는 아이작의 아들이며, 아이작은 어텀의 아버지이고, 또한 어텀의 어머니 섬머를 죽인 살인자이기도 하다. 어텀의 병은 아이작의 신장이식으로만 나을 수 있고, 소피아와 어텀의 이모 바이올렛은 어텀의 호전을 위해서는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다. 보호감찰관 버트는 이 복잡하게 얽힌 관계 속에 방관도 개입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로 어정쩡하게 서있다.

 

 

 

이처럼 관객이 알아야하는 정보는 대체적으로 극 내내 흩뿌려지며 모이는 일은 거의 없다. 배경이 농장의 외딴 집이며 농장의 주인인 소피아와 바이올렛이 가축의 피를 보는데 그리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이라는 사실, 그리고 극 전체를 관장하고 있는 ‘밀알의 여신’ 테마는 관객이 극의 본질을 읽는 것을 자주 흐린다. 그마저도 농장의 의도된 어둡고 축축하고 폐쇄적인 분위기는 주로 오브제로 표현되며 연출에 빚지지는 않는다. 극의 진행은 무대 위에서 재현되기 보다 무대에 빔으로 쏘아지는 영상에 더 많은 것을 기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박할 정도로 관객에게 직설적으로 던지는 질문들은 한번쯤 생각해볼 만하다. 연극은 수 년 전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를 통해 우리 사회에 촉발시킨 트롤리 딜레마의 윤리를 관객의 눈 앞에 들이댄다. 이는 일종의 윤리학 분야의 사고실험으로 다섯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는 철로와 한 사람이 건너고 있는 철로 중 어떤 철로로 트롤리 전차를 보낼 것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는 실험이다. 여기서 윤리가 작용하는데 그들이 몇 명인지, 평소에 어떤 사람이었는지가 개입할 수 있는가? 전차가 어느 철로로 갈지에 우리의 선택이 개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 실험의 방관자일 수 있는가? 이타주의란 도대체 누구에게 이타적인 것이며 누군가에게는 결코 이타적이지 못한 선택은 어디까지 그 범위를 인정받는가?

 

 

마지막 아이작의 선택을 모든 관객이 이해하지는 못할 수 있다. 인간은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든 존재임에도 사는 내내 수없이 많은 관계를 종용당하며 그 안에서 그때그때 자신의 윤리를 고수하고 살아야 한다. 연극은 극단적인 상황을 다루지만, 사실은 우리가 그 안에서 경험하는 모든 순간의 선택이 그 상황과 완전히 다를 수는 없음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위선을 선이라 믿고 행하는 사람을 우리는 선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인가? 선택의 의도와 그 선택이 불러온 결과의 불일치 사이에서 결국 우리 삶이 피어나는 것임을 연극은 역설한다.


광기가 번뜩이는 극 후반을 이끌어가는 것은 온전히 소피아 역의 우미화 배우 덕분이다. 바이올렛 역의 박지아 배우 또한 어지러운 극의 무게를 잡아주는 데 큰 공을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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