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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과 화합으로 일궈낸 의료기기 분야 압도적 시장 점유” ㈜대광메디텍 신만우 대표
“정직과 화합으로 일궈낸 의료기기 분야 압도적 시장 점유” ㈜대광메디텍 신만우 대표
  • 김원규
  • 승인 2018.07.11 1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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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립 30주년, 임상병리 장비 및 시약 전문 업체

 

 

 

 

질병으로 인한 고통을 덜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학. 오늘날 이 의학의 눈부신 발전 뒤에는 의료기기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하다못해 CT를 찍거나 간단한 혈액 분석을 위해서도 의료기기의 활용은 필수적이다. 의사들이 올바른 진단과 처방을 내리기 전에 반드시 이와 같은 의료기기의 도움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대광메디텍은 임상병리 장비 및 관련 시약을 수입, 판매하는 회사로서 현재 높은 국내 시장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무엇보다 올해는 창립 30주년이 되는 해이다. ‘정직과 화합’을 통해서 오늘날 건실하게 회사를 이끌어온 ㈜대광메디텍 신만우 대표를 만나 경영철학과 사회공헌, 회사 운영 이야기를 들어봤다.

 

허름한 창고에 책상 2개 놓고 시작한 사업

일반적으로 ‘수입업체’라고 하면 국내에서 팔릴 만한 외국 물품을 우리나라에 들여온 후 그것을 되파는 일을 하는 회사로 알고 있다. 따라서 자체적으로 기술을 보유하거나 혹은 새로운 신제품을 개발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의료기기 수입업체들도 대체적으로 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이러한 업체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경쟁력을 가지고 있는 회사가 있으니 바로 ㈜대광메디텍(이하 ‘대광’)이다. 대광은 단순히 의료기기만 들여와서 되파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기술력을 갖춘 엔지니어를 상당수 보유하고 있다. 이는 곧 정교하게 만들어진 의료기기가 고장이 났을 때 즉시 직원이 출동해 제품을 수리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엔지니어가 없는 회사와는 그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대광이 현재 관련 분야에서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현재 대광이 판매하고 있는 제품들은 의료용 분리방식 임상화학 자동분석기, 혈구분석기, 혈액응고 인자분석기, 생화학시약, 자동헤모글로빈 측정기, 각종 소모품 등이다. 이런 기기들은 병의원 등에는 필수적인 의료 기기이다. 현재 대광은 대전, 대구, 부산, 광주 등 전국에 4개의 지사에 엔지니어들이 상주하고 있으며 제품에 대한 즉각적인 A/S를 실시하고 있다. 만약 당일에 A/S가 끝나지 못할 경우에는 일단 새로운 제품으로 대체한 뒤 다시 A/S를 하고 기계를 바꿔줄 정도로 친절하고 신속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타 업체에서는 결코 따라올 수 없는 기술력, 기동력, 서비스 마인드를 가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현재 주요 고객은 대학병원, 종합병원, 일반의원, 동물병원, 보건소, 진료소, 정부조달청, 대학, 연구소 등이다. 올해 30주년이라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신만우 대표는 창립 초기를 이렇게 떠올린다. 

“1988년 처음 창업할 때에는 사무실 얻을 돈 조차 없었습니다. 15년간 직장생활을 했다고는 하지만, 자녀 교육비에 생활비를 쓰다보니 돈을 모을 틈이 없었죠. 한 지인이 자신의 창고를 보증금이나 월세를 내지 않고 쓸 수 있도록 해서 겨우 책상 2개를 놓고 처남과 동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돈도 별로 없으면서도 과감하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그가 가진 광범위한 인맥 때문이었다. 그는 대학시절 인연을 맺은 한 의료기기 회사에서 15년간 일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었다. 특히 그가 엔지니어 출신이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매우 좋았다. 고장이 나서 멈춰서 버린 의료기기라고 하더라도 그의 손만 닿으면 신기하게도 다시 정상적으로 작동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의료기기를 구입했던 업체들로서는 그를 반기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의료기기가 멈추면 진료 자체가 멈추게 되고 병원 업무가 마비되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구세주처럼 나타난 그는 다시 병원 업무가 이뤄질 수 있도록 만들곤 했다. 이렇게 15년이라는 시간 동안 쌓아온 신뢰와 믿음은 그의 창업 초기에 큰 힘이 되어 주었다. 

“당시만 해도 아직 업계에서는 ‘내가 이 기기를 사면 속는게 아닌가?’, ‘혹시 뭔가 부품이 가짜가 아닐까?’를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지금이야 TV나 스마트폰등의 전자기기를 사면서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지만 당시는 업계 전반이 열악하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죠. 그러다보니 결국 아는 사람을 통해서 물건을 구입하려는 성향이 강했습니다. 15년간 맺어온 믿음과 신뢰에 많은 업체들이 물건을 사주었고 그 결과 안정적으로 사업을 일굴 수 있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이미 TV만들 정도

그가 의료기기 시장에 뛰어들게 된 것에는 크게 2가지 계기가 있었다. 하나는 어렸을 때부터 워낙 전자기기를 좋아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도 전자과, 대학교는 전자공학과로 입학했다. 당시만 해도 ‘전자과’라는 것이 미래 전망이 좋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전자과를 선택하는 일은 별로 없었다. 대부분 지인의 소개나 부모님의 권유로 전자과를 선택할 뿐이었다. 하지만 신만우 대표는 중학생 때부터 전자기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 고등학생 때에는 이미 라디오는 물론 TV까지 혼자서 만들 수 있는 실력을 갖추게 됐다. 특히 이 모든 것을 혼자서 독학으로 해냈다는 점에서 가히 놀라운 실력이 아닐 수 없다. 

“그 당시 제가 살던 경기도 안성은 전기불도 들어오지 않는 깡촌이었죠. 그러니 전자에 대해서 공부를 한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울에 있는 전자와 관련된 강의업체로부터 강의록과 실습자료를 받았고, 그것으로 혼자 공부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내용을 다시 서울에 있는 회사에 보내면 그곳에서 채점을 해주곤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고등학교 때 전자과에서 수업을 받다보면 지루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미 제가 중학교 때에 다 배운 내용이었기 때문이죠.”

이렇게 해서 뛰어난 실력을 가지게 된 그는 대학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다. 등록금 낼 돈 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1년간 휴학을 한 뒤 들어간 곳이 한 의료기기 수입 업체였다. 그는 당시 그 회사가 무엇을 하는 회사인지 정확히 몰랐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회사에서 일을 하다보니 하나의 큰 깨달음을 얻게 됐다고 한다. 그것은 바로 향후 전자의료기기가 가진 큰 미래 비전이었다. 그는 속으로 “그래, 바로 이게 내가 가야할 길이다!”라고 생각하며 주저없이 의료기기와 함께 하는 삶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가 얼마나 일을 잘했는지는 그가 다시 복학을 해야해서 회사를 그만둘 때에 알 수 있다. 신 대표가 당시 회사 사장에게 “이제 복학을 해야하니 회사를 그만두어야 하겠다”고 말하자 당시 사장은 주저없이 “학교를 야간으로 옮기고 회사를 다니며 학교를 다니라”고 하면서 등록금을 보조하여 주었다. 그렇게 해서 그는 그때부터 본격적인 엔지니어의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 더욱 행운이었던 것은 그가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았다는 점이다. 일단 국내의 업체가 해외 기기를 수입하게 되면 물건을 파는 해외 업체에서는 직원의 파견을 요구했다. 제품에 대한 자세한 교육을 위해서였다. 만약 직원이 파견이 되지 않으면 아예 물건을 판매하지 않았으니 국내 업체들로서는 이에 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신 대표는 젊은 시절부터 영어학원에 다니면서 열심히 영어를 공부했고, 영국, 싱가폴, 미국, 일본 등 해외를 다니면서 견문을 넓히기 시작했다. 당시만 해도 해외에 나가는 것이 매우 힘들었던 만큼, 그에게는 황금같은 기회가 아닐 수 없었다. 

“그때 외국에 나가보니 정말로 ‘딴 세상’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저 흑백TV를 보는 시대였으니 해외의 문물들이 놀랍게 다가왔습니다. 그때는 정말로 열심히 일하면서 전 세계의 기술들을 관심있게 지켜보았습니다. 그것도 회사 돈으로 그 모든 경험을 할 수 있었으니 정말로 큰 행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 신뢰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

현재 대광의 직원은 총 35명. 그리 많지 않은 인원의 중소기업이지만, 의료기기 분야에서는 그래도 꽤 큰 규모에 속한다. 그런데 이제껏 대광이 일궈낸 그 모든 성공의 배경에는 이 직원에 대한 나름의 경영철학이 존재한다. 신 대표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은 바로 ‘화합’이다. 아무리 일을 잘하는 직원이 있다고 하더라도 만약 그가 화합을 해치는 행위를 하는 것은 절대로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을 잘하고 못하고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10명이 일을 해도 화합이 되지 않고 내분이 있는 팀은 5명이 일하는 것보다 못한 결과를 냅니다. 반면 화합이 잘되면 20명, 30명이 일하는 것과 같은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늘 가족같은 분위기를 형성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이를 위해 5년마다 가족까지 포함하는 전 직원 해외연수를 떠납니다. 올해에도 3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베트남 하노이, 하롱베이에 다녀왔습니다.”

사실 중소기업의 입장에서는 가족까지 포함하는 전 직원 해외연수가 쉽지 만은 않다. 그만큼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화합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신만우 대표에게는 기꺼이 해야만 하는 투자이기도 하다. 

 

 

더불어 그는 ‘정직’을 가장 중요한 회사의 철학으로 삼고 있다. 그것이 바로 30년의 대광을 지탱해온 힘이기 때문이다.“정직하면 신뢰를 쌓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아무 것도 없던 제가 사업을 시작했던 것도 15년간 저의 정직한 모습을 보여주고 신뢰를 쌓았기 때문입니다. 거래처를 속이는 것은 절대 있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직원들에게도 늘 거래처와 솔직하게 대화하라고 말합니다. ‘무신불립(無信不立])’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믿음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제대로 설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이라는 것은 바로 정직에서부터 시작됩니다.”

현재 그는 동작구 상공회 회장으로도 봉사를 하고 있다. 2,400여개 지역 중소기업들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껏 4년 동안 이런 방식의 사회공헌을 해왔다. 물론 신 대표가 이를 통해 받는 돈은 단 한푼도 없다. 말 그대로 자신이 사회로부터 받은 것을 이제는 되돌려 주어야할 때가 되었다는 판단 때문이다. 

대광의 30년을 이끌어온 그에게는 마지막 꿈이 있다. 바로 의료기기를 국내 기술로 개발하는 일이다. 대광 역시 그 정도의 기술력은 충분히 있다. 하지만 문제는 국내의 좁은 시장으로 인해서 수입하는 것이 직접 만드는 것보다 비용이 훨씬 절감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이제껏 몇 번 시도했다가고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고 한다. 사명감도 좋지만 손해를 보면서 회사를 운영하는 것은 직원들을 위해서라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언젠가는’ 반드시 그것을 해내고 싶다고 했다. 30년 간 의료기기 엔지니어로 살아온 신 대표의 장인정신이 느껴지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그의 꿈이 꼭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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