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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귀환 회장 - 재경금산향우회
김귀환 회장 - 재경금산향우회
  • 정희
  • 승인 2016.01.01 11: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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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금산향우회 김귀환 회장


 

 


 

끈끈한 고향의 정 나누는 향우회 이끌어

 

 

 

상부상조하며 상생하는 삶 살아가야

 

 

 

 

경영철학으로 펼치는 제2의 정치인생 소망

 

고향을 추억하며 고향이라는 동질적 공간과 정서적 기반 위에 끈끈한 유대감으로 모인 향우회는 각 시군 단위로 왕성한 조직력을 갖추고 활발히 활동을 하고 있다.

재경금산향우회도 어느새 15년이 넘는 긴 세월동안 응집력을 발휘하며 고향 금산을 사랑하는 향우들의 굳건한 터전이 되어 마음의 고향을 품게 해주는 모체가 되어왔다. 그 중심에는 전 서울시의회 의장을 역임한 김귀환 회장의 헌신적이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고향의 정을 나누는 화합의 시간 마련

재경금산향우회의 제16차 정기총회 및 송년의 밤이 열린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금산재경향우회원들이 모여 돈독한 정을 나누며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재경금산향우회는 지난 10여 년간 크고 작은 행사마다 이곳에서 서로의 정을 나누며 결집력을 다져왔다.

김귀환 회장은 초대회장을 지낸 인물로 재경금산군민회를 재경금산향우회로 새롭게 정립하며 10년 넘게 금산향우회의 든든한 역할을 감당해왔다.

“모두가 고향 금산의 발전을 희망하고 있을 것입니다.”

김귀환 회장은 송년의 밤에 참석한 향우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향우회원들이 바로 금산의 자랑임을 기억하자고 말했다.

이인제 새누리당 국회의원과 박동철 금산 군수도 재경금산향우회의 송년의 밤에 참석해 축사 했다. 이인제 국회의원은 축사를 통해 “나라의 위기도 국민의 저력으로 잘 헤쳐 나가야 합니다. 새해에는 경기 침체의 악순환을 끊어내고 하루하루 선순환을 만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축사에 나선 박동철 군수는 향우회원들이 궁금해 할 고향 소식을 전했다.

“국가에서 전통적인 농업을 보존하고 육성하기 위해 국가농업유산제도를 도입해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금산인삼이 국가문화유산 제 5호로 등록을 마치고 2017년도에는 세계농업유산에 등재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

2017년도에는 제3회 금산세계엑스포를 준비하고 있는 금산군은 2016년 국제행사승인을 받기 위한 준비도 하고 있다. 박동철 군수는 금산인삼이 세계농업유산으로 등재되고 지난 경험을 토대로 인삼세계엑스포를 성공적으로 개최한다면 금산의 자존심과 위상도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인삼의 대표 도시 금산

인삼의 대표 도시인 금산은 금강의 상류라고 할 수 있는 맑은 물이 흐르는 청정지역이다. 김귀환 회장은 인삼의 유래는 고려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며 유래를 들려주었다.“남이면 비실이라는 마을에 몸이 아픈 노모를 모시고 살던 아들이 있었다. 산 속 바위에서 피어난 꽃을 따다가 드리면 어머니의 병이 나을 것이라는 꿈을 꾸었는데 그 꽃이 인삼꽃이다. 그 꽃을 따다가 어머니께 드시게 해서 오랫동안 건강하게 사시다가 돌아가셨다는 데서 인삼의 유래가 전해진다”

김귀환 회장은 대한민국을 가리켜 금수강산이라고 하는데 그것을 줄여서 금산이라고 한다며 금산은 산세가 아름답고 금강의 상류가 금산에서 시작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소개했다.

 

 

 

 

 

스스로 개척하고 도전하는 진취적인 삶

“자취를 하던 집에서 양계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는 가난하던 시절이라 마음껏 먹고 싶은 것을 먹을 수 없었다. 하루는 닭이 알을 낳은 바구니를 가득 담아 오는 주인을 보면서 대학에 가는 일이 의미 없게 느껴졌다”

일찍부터 돈을 벌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던 김귀환 회장은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3, 2학기 때 진로를 바꿔 비진학반으로 들어갔다. 그는 충남 보령의 한 목장에서 병아리 100수를 사서 직접 사육을 했지만 병아리들이 질병으로 폐사하는 실패를 겪게 된다. “돈 2만원을 가지고 제주도로 갔다. 책에 나온 농장에서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기술을 안 가르쳐주고 일만 시켜서 실망하고 나왔다”뚝심과 거침없는 배포를 지녔던 김귀환 회장은 마음씨 좋은 이웃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배 삯을 얻어 목포로 올 수 있었다고 한다.

“배 안에서 사람들과 바둑과 장기를 두면서 딴 돈으로 대전까지 왔다”

학창시절 무전여행 경험이 있던 그에게는 새로운 모험은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었다. 하지만 마음 한 켠에 부모님에 대한 미안함이 있었던 김귀환 회장은 해병대에 지원 입대했고 1969년에 월남파병을 가게 된다.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의 김귀환 회장은 미래를 향해 누구보다 자신감 있는 선택과 용기를 발휘했던 당당한 청춘이었다. 서울로 올라 온 이후 그의 삶도 시대의 변화와 맞물리며 파고의 순간들도 겪어냈다.“아버지가 인삼 100근을 주셔서 마련한 28만 원으로 탁구장을 인수했다. 그 당시 이애리사 붐으로 탁구장이 잘 되었다”이후 김귀환 회장은 디자이너인 아내와 만나 결혼했고 마드모아젤 여성브랜드를 창업해 25년간 패션사업도 t성공했다.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자존심을 앞세우는 경우들이 많다. 생각의 전환점이 틀린 사람은 살아가는 방식이 틀리기 때문에 섣불리 간섭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30-40년 전 나의 삶의 방식으로 살아냈기 때문에 지금의 나의 성공을 만든 것이다.”

자신의 신념과 소신을 지키는 그의 강직함은 그를 더 단단하게 빚어내며 유연하면서도 시시비비에 타협하지 않는 리더십을 갖추게 했다.

 

 

 

 

 

한나라당 대표의원으로 서울시의회 이끌어

김귀환 회장은 제 6대에 이어 제 7대 서울의회에서도 다수당인 한나라당 대표의원을 맡아 생산적 의회운영으로 서울시의회를 주도했던 전 서울시 의회 의장이기도하다.

김귀환 회장의 정치적 카리스마는 서울시와 당정협의 차원의 정책간담회, 정책세미나 등을 개최하여 현안정책 47건이 이행될 수 있도록 하는 등 남다른 추진력을 통해 역량 있는 정치력을 발휘했다. 또한 박근례 대통령과 만나 중앙당 차원의 지역발전 지원을 약속받기도 했다.

2007년 서울시의 행정사무감사를 앞두었을 무렵, 의원들에게 감사대상의 현장 확인 등 철저한 감사를 당부하여 불합리한 행정 1,860건을 시정 조치시켜 다수당이 당시 서울시장이었던 오세훈 시장과 같은 한나라당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가진 공무원을 긴장시키기도 했다.

지역구의 현안에 대한 냉철한 판단력으로 균형 있는 시정 개혁을 추진했던 김귀환 의원은 2008년 서울시 예산에 ‘어린이대공원 고도지구 관리방안 학술 연구용역비’를 책정하여 새로운 개선방안 마련에 들어갔다. 광진구 능동 어린이대공원 주변의 고도제한이 이중규제이며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점을 지적했다.

김귀환 회장은 모든 행정에 있어서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기초를 튼튼히 다질 수 있도록 올곧은 직언을 아끼지 않았던 정치인이었다.

“나와 생각이 다르다고 미워하지 않는다”선거법 위반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한 김귀환 회장은 당시 한나라당이었지만 민주연합이 틀린 말을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다며“정치는 여당과 야당이 함께 존재해야 더 현명한 의견과 정책이 나올 수 있다”는 깨달음을 터득했다고 소회했다.

 

 

 

 

 

농사 지으며 일상의 행복 누려

“농사를 지으며 얻는 보람과 즐거움이 크다”

김귀환 회장은 정치 인생을 잠시 내려놓은 채 농사꾼으로서의 일상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자비 30억을 투자해‘마당놀이농장'을 직접 경영하고 있는 것.

“ 24시간을 무엇을 하면서 보낼까 고민을 하면서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나 역시 시골 농사꾼의 자식이다보니 그때를 회상하며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농사짓는 것이 참 재미있다. 상추씨는 3일이면 씨앗이 올라온다. 어린 새싹이 올라와서 밥에 비벼먹으면 고소하고 맛있다. 내가 직접 농사지어서 먹는 것이 보람된다”

그는 현재 과천시 농협회원으로도 등록이 되어 있다. 김귀환 회장이 직접 농사 지은 신선한 야채들은 인근에 위치한 ‘마당놀이 고깃집’에 식재료로도 공급된다. 마당놀이 고깃집은 현재 딸과 사위가 운영하고 있다.

김귀환 회장은 도시와 농촌 간 평준화를 위한 정책에 대해서도 고견(高見)을 던졌다.

“도시민들이 시골에 가서 살고 싶은 마음이 들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필요하다. 군 나름의 정책도 필요하고 도시화되는 형태를 막기 위해서도 시골에 사는 농민을 위한 특별복지정책이 있어야 한다. 시골에서 살면 청정한 공기를 마시면서 복지도 잘 되어 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김귀환 회장은 시골의 노지를 빌려서 농사를 지으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도 귀향해서 정착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주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언론에서도 정부 정책들로 귀농 시 혜택이 있다는 것에 대해 홍보를 해줘야한다고 말했다.

 

 

 

 

 

 

“회장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향우회가 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고향의 소중함 간직하게 해주는 가교 역할

한 때 주변인과 벽을 쌓고 만남을 피했다는 김귀환 회장은 자신이 만든 재경금산향우회가 와해의 위기를 맞자 임원진의 간곡한 요청을 받아들여 회장으로 다시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밝혔다.“지난 송년회는 예전에 비해 300명이 모일 정도로 향우회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끼치는 리더십을 가진 사람이 분명 있다고 본다. 고향 발전을 위해 금산을 떠난 출향민들이 선후배 간에 덕담을 주고받는 자리인데 누가 알아주지 않지만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보면서 상당히 보람을 느꼈다”

김귀환 회장은 향우회원들의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모습들을 보면서 이정도면 임원들에게도 만족을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재경금산향우회 회원이 2천명이 넘는다. 서울 한복판에 금산이라는 이름 석자를 심어놓으려면 회장은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라 미래지향적인 향우회가 될 수 있도록 사명감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김귀환 회장은 향우회가 훈훈한 덕담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마련해주는 것이 목적인데 어떻게 성장하느냐는 회장의 사고방식에 달렸다고 말했다.

“바람이라면 금산에 고향을 둔 출향민들이 자주 참석해서 상호협조하에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금산향우회가 되었으면 한다”

지금도 기회가 주어지면 정치를 하고 싶다는 김귀환 회장.

그는 이제 다시 정치를 시작한다면 경영철학을 가지고 정치를 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남에게 얻기 위해서는 먼저 베풀라’는 가훈을 늘 새기며 살아간다. 이 뜻을 망각하고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실수도 많이 하게 된다”

김귀환 회장은 금산인 모두 내 고향 발전을 기원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 것이라며 고향 금산이 또 하나의 작은 국가라는 생각을 가지고 앞으로도 향우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달라고 부탁했다.

정직한 농사꾼의 심성으로 허례허식을 멀리하고 올곧은 심지를 지키며 침체위기의 향우회를 부흥시킨 김귀환 회장의 리더십은 더욱 흡입력과 함께 원숙함을 발휘하고 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 사회에 꿈을 심어주는 희망의 정치를 펼쳐 낼 김귀환 회장의 제 2의 정치인생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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