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2 18:37 (월)
불붙는 문화계 미투(me too) 운동,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은 누구?
불붙는 문화계 미투(me too) 운동, 연극 연출가 이윤택·오태석은 누구?
  • 전인수
  • 승인 2018.03.01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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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다. 지난 1월 29일 서지현 검사(46, 사법연수원 33기)의 고발로 들불처럼 번진 운동이 문화계로 이어졌다. 시작은 작품을 통해 고은 시인의 성추행 사실을 고발한 바 있는 최영미 시인의 폭로였다. 매번 노벨상 수상에 거론되는 거장 시인이었기에 충격이 컸다. 곧이어 들불이 연극계로 번졌다. 차례로 이윤택·오태석 연출가의 성추행 이력이 드러났다. 둘 모두 권력형 성범죄로 극단 신인 배우나 수업을 수강하는 학생이 대상이었다.

 

이어지는 폭로와 증언... 연극계 두 거장의 추락

최초의 폭로는 극단 미인의 김수희 대표가 했다. 지난 2월 14일 김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me too’라는 해시태그를 달고 10년 전 이윤택 연출가와 지방 공연 중에 일어난 일을 폭로했다. 이 글에는 이윤택 연출가의 성추행 과정이 자세히 묘사돼 있다. 김 대표는 ‘그는 연습 중이던 휴식 중이던 꼭 여자단원에게 안마를 시켰다. 그게 본인의 기를 푸는 방법이라고 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작업을 이어나갈 수가 없다고 했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예상대로 안마를 시켰다. 얼마쯤 지났을까 그가 갑자기 바지를 내렸다. 그리고 자기 성기 가까이 내 손을 가져가더니 성기 주변을 주무르라고 했다’며 자신이 피해자가 되었던 상황을 상세히 전했다. 또한 그는 ‘이제라도 이 이야기를 해서 용기를 낸 분들께 힘을 보태는 것이 이제 대학로 중간선배쯤 인 거 같은 내가 작업을 해나갈 많은 후배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선배가 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동기를 밝혔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발이 이어졌고 피해자가 한둘이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2월 17일 김보리(가명) 씨는 디시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그는 ‘극단에 있었던 2001년 19살, 극단을 나온 2002년 20살 때 두 번의 성폭행을 당했다’고 밝혔다. 이어 2월 19일 이승비 배우 겸 극단 나비꿈 대표와 김지현 배우의 고백이 이어졌다. 특히 김지현 배우는 임신과 낙태 사실을 밝혀 충격을 주었다. 이후에도 고발이 이어졌고 연희단거리패 출신 오동식 배우는 이윤택 연출가가 기자회견을 대비해 내부리허설을 한 사실을 공개해 대중을 경악하게 했다.

 

2월 17일 한국극작가협회의 이윤택 연출가 제명을 시작으로 서울연극협회, 한국연극연출가협회, 테지(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한국본부가 잇따라 이윤택과 연희단거리패에 대한 제명 및 회원자격 박탈 조치를 취했다. 사건 직후 이윤택 연출가는 연희단거리패, 밀양연극촌, 30스튜디오 예술감독직에서 물러났고 얼마 후 김소희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극단과 밀양연극촌 해체를 선언했다. 또한 이윤택 연출가는 폭로 5일 만인 19일 기자회견을 통해 공개 사과를 하고 법적 절차를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성관계는 인정하지만 강제는 아니었다고 주장해 원성을 샀다. 피해자들은 현재 법적 조치를 진행 중이고 국회는 미투 운동의 제도적 뒷받침을 위해 관련법을 논의했다. 지난 26일 바른미래당은 ‘#미투응원법’(일명 이윤택처벌법)을 발의했다. 이는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 개정안에서 성폭력 범죄 피해에 대한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권의 소멸시효를 연장(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5년(기존 3년), 피해발생일로부터 20년(기존 10년))하고,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추행죄의 경우 고용관계가 유지되는 동안 소멸시효가 정지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오태석 연출가에 대한 성폭력 증언이 나온 것은 지난 2월 15일이다.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첫 폭로가 나온 지 단 1일 만이다. 여배우 출신 박영희 씨는 페이스북을 통해 ‘대학로의 그 갈비집 상 위에서는 핑크빛 삼겹살이 불판 위에 춤을 추고 상 아래에서는 나와 당신의 허벅지, 사타구니를 움켜잡고, 꼬집고 주무르던 축축한 선생의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소리를 지를 수도, 뿌리칠 수도 없었다’며 한 연출가의 성추행 사실을 폭로했다. 글 속의 ‘선생’은 초성 ‘ㅇㅌㅅ’으로 표현돼 자연스레 오태석 연출가가 지목됐다.

 

연달아 증언이 이어졌다. 극단 ‘공상집단 뚱딴지’의 연출가 황이선 씨는 18일 페이스북을 통해 ‘스물 셋이라는 비교적 늦은 나이에 연극판을 기웃거리게 된 나는, 백마강 달밤에 라는 연극에 적잖은 충격을 받았고 극단의 뒷풀이에 참석했다. 그 연출가는 술잔을 들이키는 행위와 내 허벅지와 사타구니 부근을 주무르고 쓰다듬는 행위를 번갈아 했다’고 썼다. ‘백마강 달밤에’는 1993년 초연돼 다수의 상을 수상한 오태석 연출가의 대표작 중 하나다. 특히 황이선 씨가 겪은 일은 교육 현장에서 일어난 일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이후 서울예술대학교 졸업생, 강사들의 추가 증언이 이어졌고 서울예대 총학생회는 오태석 연출가 퇴출을 요구하고 나섰다. 이에 서울예대 측은 입장문을 발표하고 이번 학기부터 오태석 연출가의 수업을 전면 배제하기로 했다. 또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는 페루 리마 페스티벌 개막작으로 선정된 연극 ‘템페스트’에 대한 지원을 일부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페루로 출국하는 오태석 연출가의 항공비를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오태석 연출가는 도피성 출국이 불가능하게 됐다. 다만 ‘센터스테이지 코리아’ 사업의 극단 목화 지원은 철회하지 않기로 했다.

 

오태석 연출가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지난 16일 오후 피해자 박영희 씨와 한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또한 지난 20일에 기자회견이 예정돼 있었으나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이후 파문이 계속되자 모든 일정을 중단하고 잠적했다. 오태석 연출가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서는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비난의 목소리가 나온다.

 

실험과 도전, 한국 전통 문화 살리기의 두 주역

연극계에서 두 연출가의 업적은 독보적이다. 1979년 『현대시』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한 이윤택은 일련의 해체주의 시를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었다. 이후 연희단거리패와 가마골소극장을 창단하면서 극작과 연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시로 시작된 그의 문학 이력은 연극 무대에서 시적 정서의 시각화로 나타났다. 무엇보다 연극계에서 이윤택이 유명 인물이 된 것은 1989년 공연한 ‘오구-죽음의 형식’을 통해서다. 극락왕생을 비는 전통 굿인 산오구굿을 무대 위에 올린 작품은 엄숙주의로 일관하던 우리나라 제의 연극에 신명과 유희성을 불어 넣었다고 평가받는다. 이후 작품은 연희단거리패의 주요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해 현재에 이르기까지 지속적으로 공연됐다. 제의를 가볍게 다룬다는 점 때문에 선배 연극인들과 갈등을 빚은 일과 새벽 사이 신들린 듯 대본을 완성한 일화는 유명하다.

 

연세대 철학과에 재학 중이던 1962년 상금이 탐나 지원한 연극 대본 공모에 ‘영광’이 당선되면서 연출을 시작한 오태석 역시 한국전통의 재해석으로 유명하다. 오태석의 대표작은 1973년 공연된 ‘태’로 세조와 단종의 일화를 다룬 공연이다. 번역극 일색이었던 당시 우리나라 연극계에 충격을 준 작품으로 독창적 연극 언어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동시대 창작극 희곡 양식의 한계를 뛰어 넘어 해외 사조를 수입하고 재창조해 우리나라 전통 소재를 새롭게 발굴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군부 독재의 시의적 사회상을 반영한 점도 화제의 이유가 됐다.

 

이윤택은 이후 ‘문제적 인간 연산’(1995), ‘햄릿’(1996), ‘시골선비 조남명’(2001), ‘억척어멈과 그의 자식들’(2007) 등을 연출해 대산문학상, 서울연극제 연출상, 백상예술대상, 서울국제공연예술제,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했다. 화려한 수상 이력뿐만 아니라 이윤택은 관객들에게 친숙한 웰 메이드 연극을 만들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연극의 영상화(혜경궁 홍씨)와 밀양연극제 기획 등 새로운 도전으로 우리나라 연극 환경 조성에도 기여했다.

 

오태석은 전통 문화의 재해석과 무대화에 몰두했다. 서양식의 응접실 연극이 아닌 익숙한 우리나라 정서와 문화를 수집하고 계발해 독자적 세계를 인정받았다. 이후 공연한 ‘물보라’(1978), ‘자전거’(1983), ‘부자유친’(1987), ‘백마강 달밤에’(1994), ‘천년의 수인’(2000) 등은 서울연극제 대상, 동아연극상 대상, 한국평론가협회상 등을 수상했다. 최근 페루의 리마 공연예술축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 원작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으로 2011년 영국 에든버러 국제 페스티벌에서 호평 받은 바 있다.

 

교과서에서 삭제 예정, 업적도 사라질까?

이윤택·오태석 연출가 모두 연극 경력만 50여 년이다. 화려한 수상 경력은 이들 작품이 그대로 우리나라 연극 역사에 기록되어 있음을 말해준다. 두 연출가의 행보는 한국 현대 연극사 중 반세기를 함께 한 셈이다. 이들의 화려한 업력 탓에 연극계에 기여한 공로까지 지워져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행적과 별개로 작품의 가치는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 역시 피해자라고 고백하며 미투 운동에 동참한 박가인 씨는 오태석 연출가에 대해 사과를 요구하면서 ‘그의 행동에 오류가 있기에 그의 모든 이력과 업적이 없었던 일이 되는 것도 아니며, 연극계의 거장이며 원로연출이기에 이런 행동들이 지극히 아무렇지 않은 일로 여겨질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라고 페이스북을 통해 의견을 밝혔다. 일부에서 양가적인 입장을 갖는 것은 이들 연출가가 부정할 수 없는 한국 연극의 거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국민 정서는 이들의 역사를 허락하지 않는 듯 보인다. 리얼미터가 23일 전국 19세 이상 성인 50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71.1%가 성폭력 인물 작품을 교과서에서 삭제해야 한다고 답했다. ‘교과서에 계속 실려야 한다’는 의견은 22.5%에 불과했다. 실제로 이윤택과 오태석의 작품은 현행 교과서에서 삭제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교과서 수정은 심의 절차가 필요해 내년에야 삭제가 가능하다. ‘연극’분야 교과서 집필진(김대현·김선애·백인식·오세곤·오은진·유덕권·이연심·이정환·이혜경·장선연 10명)들은 22일 공동 성명을 통해 ‘예술은 폭력을 용인하지 않는다. 예술의 아름다움은 작품 창작의 결과만이 아닌 과정까지 포함한다. 따라서 부당한 권력과 폭력이 결부된 창작은 결코 예술로 인정할 수 없다’라는 의견을 발표했다. 이어 집필진들은 ‘올해 당장 수정은 어렵지만 내년 사용할 교과서는 문제의 작가들과 작품들을 삭제한 개정판으로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개인의 윤리와 작품의 예술적 가치 중 어느 것을 우위에 둘 것인지는 평론가들 사이에서도 논쟁이 이어지는 첨예한 문제다. 하지만 작품의 권위가 곧 현장과 현실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돌변하는 우리나라 문화계의 특성을 고려하면 작품의 가치를 온전히 인정하긴 힘들다. 사회 구조의 불합리를 해결하기 전까지 창작자를 문화적 가치로만 바라볼 수는 없는 것이다. 서정주 등 친일작가의 작품을 여전히 교육하고 있는 것은 시대적 거리가 한몫을 한다.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수의 모든 피해자들이 교육적 가치를 앞세운 그들의 권위를 인정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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