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인 타고르 쫓아 한 평생, 일생으로 인도를 쓰다
인도 시인 타고르 쫓아 한 평생, 일생으로 인도를 쓰다
  • 정희
  • 승인 2018.04.23 18: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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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박물관 건립한 시인 김양식 관장

 

 

 

인도는 사색과 명상의 나라다. 국토의 대부분이 황무지와 같은 인도에서 시인 류시화가 찾은 것 역시 시정(詩情)이다. 어쩌면 그곳이 영성의 시를 쓴 타고르의 나라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래서 인도를 찾는 모든 사람들은 결국 타고르를 쫓는 것과 같다. 어린 시절 타고르의 동시집 ‘초승달’을 보고 시를 쓰기 시작한 한 소녀는 40대가 되어서야 인도로 향했다. 늦은 나이에 세상과 삶을 배웠다. 돌아와서는 다시 학생이 되었다. 동국대 석사과정으로 인도철학을 공부했다. 범아일여(梵我一如)의 세계, 모든 것이 자신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세상을 더 넓게 보게 됐다. 인도박물관장 김양식 시인의 이야기다.

 

40여 년간 수집한 2500여점의 소장품으로 인도박물관 건립해

김양식 관장이 인도박물관을 개관한 것은 지난 2011년 7월이다. 타고르의 시에서 시작해 인도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 인도를 왕래한 것이 계기다. 인도박물관에는 40여 년간 김 관장이 수집한 약 2500여 점의 인도 민속품과 유물들이 보관돼 있다. 인도의 물건들을 수집하게 된 이유는 열악한 인도 문화 보존 시스템에 방치된 유물들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김 관장은 “인도 사찰을 방문하면 유물들의 조각이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어요. 왜 이렇게 다 방치됐을까 안타까웠죠”라며 박물관 건립의 계기를 설명했다.

 

각종 미술품, 공예품, 조각상 등 인도를 방물할 때마다 하나하나 물건을 모아오던 김 관장의 습관은 여행지의 자연물을 가져오는 뭇사람들의 단순한 수집벽은 아니었다. 인도 대사들도 김 관장의 유물들의 가치를 인정했다. 김 관장은 “한국에 부임한 인도 대사들이 인도 박물관을 둘러보고는 ‘이걸 대체 어떻게 구했느냐’고 놀라워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인도박물관 소장품 중 1483점은 보존 가치가 높아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표준관리시스템에 등록돼 관리되고 있다. 결국 현재의 인도박물관은 인도에 대한 김 관장의 오랜 관심으로 인한 심미안 덕택에 만들어진 것이다.

 

 

 

최근 인도박물관은 김해시와 업무협약(MOU)를 맺어 내년 말 김해로 이전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번 이전은 김 관장이 오랫동안 바랐던 일이다. 김해는 허황후릉이 있는 곳이다. 허황후는 가야의 초대왕 김수로왕과 결혼한 인도 아유타국 출신의 공주로 인도와 우리나라의 만남과 인연을 상징한다. 김 관장은 인도박물관을 세울 장소로 김해가 가장 의미 있는 곳이라고 줄곧 생각해왔다. 그간 김해시와 의사소통의 혼선 때문에 진행되지 않다가 현 김해시장이 직접 나서 이전이 성사됐다. 김해시는 부지를 제공하고 건물을 지어주기로 했고 김 관장은 소장품을 모두 김해시에 기증하기로 했다. 40년 간 모은 소장품이 아깝지 않느냐는 질문에 김 관장은 “오히려 고맙죠. 김해에 만들어질 박물관은 설계에서부터 인도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김해에는 지금과 달리 완전한 인도식 박물관이 들어설 겁니다.”라며 들뜬 표정을 지었다.

 

 

박완서와 함께한 어린 시절, 타고르를 만나다

김 관장이 처음 인도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시 때문이다. 초등학교 때 타고르의 동시집 ‘초승달’을 읽고 시에 매료됐다. 소설가 박완서와 매동소학교 6년 간 같은 반이었던 김 관장은 그와 함께 습작을 나눴다. 김 관장은 “완서는 수필, 소설을 썼고 저는 시를 썼어요. 문학소녀였죠”라고 그 시절을 회상한다. 타고르의 시에 매료돼 시인이 되었지만 정작 인도철학을 공부하게 된 것은 40대 중반이 되어서였다. 1975년 여름 인도에서 열린 아시아 시인 대회 참석으로 인도를 처음 방문했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 김 관장은 인도철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의무처럼 다가왔다고 한다. 곧바로 동국대 대학원에 지원을 했다. 본격적으로 타고르의 시를 공부하게 되면서 김 관장은 순전한 기쁨을 느꼈다. 김 관장은 논문을 쓰면서는 두 번을 울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면서 논문을 쓰는 게 버거워 한 번 울고 너무 기뻐서 한 번을 울었다는 것. 낯선 시인의 동시에 매료되었던 어린 소녀 시절처럼 김 관장은 다시 한 번 행복감을 느꼈다. 이미 40대 중반을 넘어 세상을 안다고 생각했지만 자신이 정말로 따르고 싶고 추구하고 싶은 것이 인도 사상에 모두 다 들어 있다는 것을 그제야 알게 된 것이다.

 

타고르에 대한 관심과 애정 덕분에 대학원을 수석으로 졸업한 그는 지도교수에게 인도철학회를 만들어 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하지만 아직 철학을 완전히 깨우치기엔 어렵다는 판단으로 타고르 문학회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인도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많지 않았을 때였다. 또한 관심이 있다고 해도 관련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았다. 김 관장은 문학회를 만들면서 인도의 음악, 인도의 미술, 인도의 문화예술 등 다양한 인도 문화에 관심 있는 학자들을 모아 특강을 열었다. 광화문에 마련한 작은 연구실이 사람들로 북적이기 시작했다. 80명에서 100여 명에 가까운 수강생들이 인도 문화에 대한 강의를 듣기 위해 연구실로 찾아왔다. 그때의 동료들은 여전히 인도에 정통한 분들로 교수들이 많다. 인도학과와 외국어대학, 동국대 등 관련 학과에서 여전히 인도 문화를 알리는데 애쓰고 있다.

 

 

 

인도대사들의 자문관 역할 도맡아

인도 문화와 관련된 폭넓은 관심과 활동으로 김 관장은 자연스럽게 인도 전문가가 됐다. 문학회 활동 당시부터 지금까지 인도 대사들이 한국에 부임하면 가장 먼저 찾는 사람이 김 관장이었다. 그들이 먼저 전화가 와서 여러 현안에 대해 자문을 구했다. 김 관장은 이런 활동들이 우리나라와 인도와 교류로 이어질 수 있는 가교 활동으로 생각해 마다 않고 도맡았다. 도움을 받은 인도 대사들은 인도에 대한 여러 정보를 김 관장에게 알려주었다. 그렇게 만나 인연을 나눈 대사가 열 명이 넘는다. 인도와의 왕래도 잦아졌다. 자연스레 김 관장의 인도 관련 연구도 깊이를 더해갔다.

 

최근 김 관장은 인도 고대사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고 있다. 고대사에서 우리나라와 인도의 관계를 재확인해보려는 시도에서다. 하지만 인도에 방문해서 수소문해도 과거 우리나라와 교류하던 시기의 인도 고대사는 정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특히 모두 입을 맞춘 것처럼 가야사에 대한 기록은 전무하다고 말했다. 포기하고 싶지 않아 방법을 찾아봤다. 알음알음 당시 인도고대사를 기록한 책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김 관장은 이를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가야‧인도 고대사 자료들과 비교해 김수로왕과 허황후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낼 생각이다. 김 관장은 “대사 분들을 만나는 것도, 글을 쓰는 일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그래도 끝까지 할 생각입니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타고르를 쫓아 평생을 살아온 김 관장에게서 언뜻 시성이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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