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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을 짓는 사람 담연(潭蓮) 이혜순 대표
한복을 짓는 사람 담연(潭蓮) 이혜순 대표
  • 정희
  • 승인 2016.12.01 12: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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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한복 디자이너하면 꼼꼼하고 현란한 바느질 솜씨를 기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바느질을 따로 배워본 적이 없다. 전공도 하지 않았다. 이 대표의 한복은 그녀가 수십 년 을 촉감해온 원단과 색상, 그리고 한복을 안목하는 그녀의 학구성과 디렉팅 능력에서 나온다.

 

 

 

 

 

한복은 형태를 바꾸지 않고 비율과 색만으로도 세계화 시킬 수 있는 의복

“일상에서 입는 모습을 자주 보는 경험치를 늘려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과문일지 모르나 한복만큼 자부심을 주는 대상이면서 또 그 만큼의 일상에서 사라져가는 한국의 전통이 있을까.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한복은 평상시는 물론이고 경사스런 날에는 더욱 화려하게 차려입으며 생활 가까이에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의식주의 모든 취향이 서양문화에 점령당하면서 한복 역시 다른 전통들처럼 뒤안길에 있거나 담론 주제로만 대상화 되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열악성 속에서도 한편으로는 소수의 자각자들에 의해 한복은 본연이 지켜져 오면서 또 한층 현대화된 세련미를 얻으며 발전하고 있다. ‘담연’의 한복은 전통의 충실한 이행과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두 개의 가치를 조화롭게 구현하며, 연못에 정좌한 연꽃 자태처럼 한복의 심미성을 고요히 전파하고 있다. 

 

 

 

 

옷과의 혼연일체

옷을 만든다고 해서 만들어진 옷과 만든 이의 신체가 항상 부합하진 않을 것이다. 그런데담연 이혜순 대표의 한복은 항상 그녀와 합이 잘 맞는다. 이혜순과 마주하는 누구라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한불수교 130주년 기념으로 파리 루브르박물관에서의 전시회를 준비할 때의 일화다. 담연을 방문해 전시에 관한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박물관 아트디렉터, 통역 등 여러 사람과 함께였다. 열심히 대화가 오가던 중 이혜순의 앞에 앉아있던 프랑스인 아트디렉터가 갑자기 옆의 사람과 자리를 바꿔 앉자며 일어섰다. 뜬금없어 다들 의아했다.

 

“제가 입은 한복의 치마부터 시작해 저고리의 깃, 목선, 이마까지 흐르는 선들이 자기한테 너무 강한 기(氣)를 주어서 마주보고 있지 못하겠다고 하더군요. 그것은 제 자신이 특별하다기보다 20년 동안 줄곧 입어온 한복과 저의 몸이 어떤 일치를 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한복의 아름다움은 생활의 시간과 합해지는 경험치를 통해 발휘됩니다. 한복에서 멀어지고 있는 우리들보다 오히려 이방인이 그것의 비밀을 알아낸 거지요.”

 

담연 이혜순 대표는 한복이야말로 진정한 ‘오뜨 꾸뛰르(HAUTE COUTURE. 고급 재봉)’, ‘특별하게 주문 생산된 나만’이라고 단정한다. 입는 사람의 체형과 분위기에 맞게 비율을 재단하고 색을 골라 완성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비율과 색만으로도 무궁무진 아름다움을 창조해내는 의복이다. 그래서 이혜순은 자신의 한복 무대에서 항상 그것의 탁월함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한복은 속옷부터 다르게 입어야 해요. 옛 문인들의 글에 보면 한복이 부딪히는 소리를 사각사각 이라고 표현해요. 그런데 지금은 서양의 패티코트를 넣어 텅텅거리게 만들어요. 결과 정서가 다른 거지요. 겉은 화려한 한복이지만 사실은 한복의 디자인적 아름다움을 없애는 일과 같아요.” 

 

 

 

 

바느질 하지 않는 수석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이혜순

보통 한복 디자이너하면 꼼꼼하고 현란한 바느질 솜씨를 기본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바느질을 따로 배워본 적이 없다. 전공도 하지 않았다. 이 대표의 한복은 그녀가 수십 년 을 촉감해온 원단과 색상, 그리고 한복을 안목하는 그녀의 학구성과 디렉팅 능력에서 나온다.

 

“결혼할 때 시어머니께서 한복을 많이 장만해주셨어요. 그것이 한복을 시작한 작은 계기가 될까요. 결혼하고 나서는 광장시장에서 원단을 취급하는 가게를 열었어요. 그런데 제가 선택하는 원단이나 색들은 다른 점이 있었나 봐요. 유난히 잘됐지요.”

 

그렇게 해서 얻은 은근한 명성이 영화 ‘스캐들- 남녀상열지사’의 의상을 만들게 했다. 영화를 본 이라면 이혜순 대표의 한복이 무엇을 추구하는지 직감할 것이다. 입는 이의 개성을 확연하게 부각하며 안착감을 주는 옷들이다. ‘쌍화점’이나 ‘명성황후’ 역시다.

 

그녀의 한복은 또한 ‘공부’에서 나온다. 한복을 지으면서 선과 색과 문양에 궁금했던 것들, 그래서 이혜순 대표 자신이 스스로 연구를 감행해서 완성해 온 옷들이 나중에 보니 옛 문헌에 나와 있던 방법들과 일치한 것을 확인했다. 다음부터 이혜순은 문헌과 기록, 자료에서 꾸준히 그녀 한복의 영감을 얻는다.

 

“자료를 읽다보면 이 옷의 이 부분은 왜 이렇게 만들었을까 의문이 가요. 그럼 바느질을 하면서 그 길을 가보는 거죠. 그 다음에는 우아함 또 다음에는 디자인, 그렇게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오늘의 담연 한복이 완성된 겁니다. 바느질을 어렵게 해서 하나의 해결을 얻으면 그 다음에는 그것을 바탕으로 또 다른 한복 디자인이 생기는 거지요”

 

악학궤범을 출처로 한 옷은 그렇게 해서 디자인됐다. 담연만의 특색을 지니려면 보다 철저해야 한다. 담연의 옷들은 원단을 직접 만들고 색상, 패턴 역시 이혜순 대표가 직접 선택하고 디자인한다. 담연의 자연회귀를 가치로 하는 안동포, 삼베, 모시, 명주, 누비 원단은 그렇게 탄생한다. 

 

 

 

 

한복의 보존은 일상에서의 경험치가 중요

한복의 제대로 된 아름다움을 아는 길은 일상에서 체득해보는 것만이 해답이라고 한다. 이혜순 대표는 그것을 ‘경험치’라고 표현하다. 이제는 결혼식장에서조차 한복이 사라지고 있으니 젊은 세대가 한복을 입어볼 기회는 점점 사라지고 ‘선이 아름답지만 불편한 옷’이라는 이미지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한복은 우리조상이 5천년을 입어온 옷이예요. 불편하면 그럴 수 없었지요. 입지 않으니 적응이 안 되는 거지요.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문화에 충분히 적응하면서 편해질 수 있는 옷이 한복입니다”

담연에서 한복을 지은 고객들은 꼭 이혜순 대표의 눈앞에서 옷을 입어보고 확인을 받아야 한다. 이 대표는 고객에게 옷 입는 법을 충분히 설명하고 또 당사자의 옷 자태가 왜 그렇게 나오는지를 꼭 설명한다.

 

이 대표는 무대에 자신의 한복을 내세울 일이 많다. 그렇게 경복궁이나 한옥마을 등을 갈 때면 외면하지 못하고 길에 한참 서서 하는 일이 있다.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이 지나가는데 하나같이 옷을 제대로 된 방법으로 입고 있지 않아요. 그래서 일일이 하나씩 세워놓고 옷고름 매는 법을 알려줬어요. 그러다 보면 항상 한복을 위해 할 일이 무엇인가가 생각나요. 한복을 많이 입는다고 그냥 좋은 게 아니라 올바른 방법으로 입어야지요.”

음식이나 음악은 어떤 것을 먹고 들을 지를 따지면서 왜 한복은 어떻게 입을 것인가는 생각하지 않느냐는 것이 이 대표의 반문이다. 

 

 

 

 한복을 무대에 올릴 때 타협하지 않는다

무대는 흥행이다. 그래야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기획자의 목적이 달성된다. 그래서 많은 쇼 무대에는 소위 ‘탑 연예인’과 ‘셀러브리티(celebrity)들의 명성을 일정 이용하기도 한다. 이 대표는 오직 한복만을 가지고 승부한다.

 

“제가 쇼를 할 때는 타협하지 않아요. 쇼 의뢰인의 콘셉트와 무대 시간이 정해지면 그 다음에는 오로지 제 자신과만 일해요. 연예인이나 대사급 부인들 등을 요구하면 저는 쇼를 안한다고 해요. 제 한복은 그냥 모델에게 입혀요. 모델은 몸으로 옷을 습득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저의 의도를 제대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래서 모델도 제가 직접 면접하고 모델 개인의 몸에 맞게 피팅도 합니다. 자연히 모델에 따라 옷의 여밈, 깃, 동정 등 모든 게 달라지지요. 인기보다는 저의 사명감을 넣는 겁니다.”

 

서양 의복은 몸이 드러나도록 재단되지만 우리나라의 한복은 몸을 움직일 때 어떤 소재를 쓰고 어떤 움직임을 보이느냐에 따라 옷의 모양새가 비로소 드러난다는 설명이다.

 

작년에는 아일랜드의 해를 맞아 주 아일랜드 한국대사관에서 한복무대를 기획했다. 담연에 쇼 의뢰가 왔는데, 대사관에서 한국인이나 동양인 모델을 찾을 수 없어 난감해 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이혜순은 걱정하지 말고 외국모델을 세우라고 했다. 한복은 형태를 바꾸지 않고도 입는 사람의 비율을 다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만들어지는 옷이기 때문이었다. 또 한국의 전통 옷을 서양인도 충분히 소화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 했다. 쇼가 끝나고 리셉션에서는 이태리 대사가 이 대표에게 와서 한복의‘소재’와 ‘패턴’을 물었다. 그녀의 의도가 적중한 것이다.

 

16살 된 네덜란드 대사의 딸이 부모와 함께 쇼를 관람하고는 ‘본 것 중 제일 아름답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결혼할 때 한복을 입고 싶다고. 대사인 부모 덕에 한국에서도 자란 적이 있는데 이렇게 이국 소녀의 기억 저변에도 한복의 아름다움이 침윤되어 있을 만큼 세계적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옷이기도 한 것이다.

 

 

 

 

한복을 입는 전통혼례 부활시키고 싶어

담연 이혜순 대표가 사람들에게 한복을 입으라고 독려할 때 가장 난감한 것이 ‘한복을 입고 갈 데가 없다’는 것이었다. 요즘은 결혼식장에서도 혼주 가족을 제외하면 하객들은 입지 않는다.

 

“제가 아무리 한복을 많이 만들어도 옷만 혼자 독불장군일 수는 없구나, 하는 회의감이 들더군요. 그래서 한복을 입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래서 담연 이 대표가 적극성을 띠고 기획하고 있는 것이 전통혼례이다. 전통혼례는 혼주뿐만 아니라 하객들도 한복을 입는 것이 자연스럽다. 배우 송일국의 전통혼례를 그래서 기획하게 되었고, 그런 후로는 이 대표에게 혼례 기획 의뢰가 적잖이 들어온다.

 

이것을 확장시켜서 무대에 올리고 싶은 것이 있다.

 

“논문자료를 읽는데 한 가지 명칭이 계속 나오는 겁니다. 근데 한문이 많아 완역하기가 어려웠어요. 한문을 전공하는 지인에게 물어보니 조선시대 희곡집이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 내용 전반이 혼례에 관한 것인데 반가의 혼례문화가 총망라돼 있어요. 이것을 극화시켜서 저의 한복과 전통혼례 기획으로 무대에 올리는 게 가까운 소원입니다.”

 

그러나 역시 비용이 문제다. 담연은 한복디자이너로는 유일하게 백화점에 입점해 있다. 하지만 고객층이 많이 없어서 유지에 힘이 든다. 그래도 그녀는 자비를 들여 일 년에 걸친 기획으로 순수 한복 화보집을 냈다. 한복의 아름다움을 한 명이라도 더 알게 하고 입게 하기 위함이다.

 

“아, 한복이 저렇게 편하구나, 저렇게 섹시할 수 있구나, 느끼면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입게 되겠지요.”

 

한복의 일상화가 이루어져 담연을 후배들이 대대로 잇는 업이 되는 것이 이혜순 대표의 최종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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