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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쓰리 빌보드’와 마틴 맥도나
죄 없는 자 돌을 던져라, ‘쓰리 빌보드’와 마틴 맥도나
  • 전인수
  • 승인 2018.04.09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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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리 빌보드 (Three Billboards Outside Ebbing, Missouri, 2017) 
감독 마틴 맥도나 
출연 프란시스 맥도맨드, 우디 해럴슨, 샘 록웰 등

 

 

‘파고’(1997)를 통해 69회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프란시스 맥도맨드가 마틴 맥도나 감독을 알게 된 것은 1998년이다. 뉴욕에서 공연 중이던 마틴 맥도나의 ‘뷰티퀸’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이 계기다. 공연을 보고 강한 인상을 받은 맥도맨드는 그를 찾아가서 자신을 위해 대본을 써달라고 말한다. 몇 년 후 세 개의 대형 광고판에 대한 이야기를 구상 중이던 감독의 머릿속에 프란시스 맥도맨드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때부터 마틴 맥도나는 맥도맨드가 맡을 ‘밀드레드’란 인물을 중심으로 대본을 쓰게  된다. ‘쓰리 빌보드’의 탄생 비화다.

 

분노에 찬 연기로 작품을 지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지난 3월 5일 열린 90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다혈질의 인종차별적 형사로 등장한 샘 록웰은 남우조연상을 차지했다. 배우들의 호연만큼 작품에 대한 관심도 높다. 영국 아카데미에서는 작품상 등 5관왕을 거머쥐었다. 다수의 평론가들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도 작품상과 감독상을 ‘쓰리 빌보드’가 가져갈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셰이프 오브 워터’가 두 부문을 휩쓸면서 예상은 빗나갔지만 호평은 이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현대판 셰익스피어’로 유명한 마틴 맥도나 감독의 대본과 연출력이 화제다.

 

발표하는 작품마다 관심을 모았던 마틴 맥도나는 이야기꾼으로 유명하다. 기존의 서사 패턴을 따르지 않고 예측불허의 예외적 상황들을 만들어내는 기발한 발상과 불온한 감각은 강렬한 정서적 효과와 서사를 치밀하게 직조하는 능력을 통해 완성된다. 2003년 발표해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은 ‘필로우맨’(Pillow Man)은 마틴 맥도나의 발원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는 연극 작품이다. 그는 작품의 주인공이 쓴 7편의 잔혹 동화들을 유아적 지능에 머무른 주인공의 형 마이클에 의해서 실제로 실현하게 하면서 무대 위에 강렬한 정서를 심어놓았다. 충격적인 장면들과 그로테스크한 정서는 앙토냉 아르토의 ‘잔혹연극’의 전통을 상속받는 듯이 보인다. 무엇보다 블랙코미디의 유머와 이야기의 몰입도는 이야기꾼으로서의 마틴 맥도나의 재능에 빠져들게 하는 유인이 된다. 1996년 발표된 ‘뷰티퀸’(The Beauty Queen of Leenane)은 집안의 자장을 벗어나고 싶어 하는 딸과 놓아주지 않으려는 어머니의 애증의 관계를 적나라하게 묘사했다. 이들 작품에서 마틴 맥도나는 인물들의 감정을 심원까지 파고들어 범속성과 폭력성을 발견하고 표면으로 이끌어낸다. 극단적 묘사는 충격적 정서와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관객들이 이야기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계기가 된다. 이러한 특성은 직접 대본과 감독을 맡은 그의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킬러들의 도시’(2008, In Bruges)는 마틴 맥도나의 스토리텔링 능력이 장르를 불문하고 발휘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영화다. 고풍스러운 벨기에 브뤼셀에서 펼쳐지는 킬러들의 블랙코미디적 상황은 관습을 뒤집으며 세태를 비웃고 풍자하면서 그 위에 이야기의 본질적 재미를 세운다. ‘세븐 싸이코패스’(2012, Seven Psychopaths)는 보다 이야기성에 집중했다. 서사를 중첩하고 실험하며 그 자체를 유희하는 작품이다.


올해 국내 개봉한 ‘쓰리 빌보드’는 마틴 맥도나가 5년 만에 만든 영화다. 영화는 일곱 달 전 살해된 딸의 범인을 잡기 위해 사투하는 어머니를 그린다. 주인공 밀드레드를 연기한 프란시스 맥도맨드는 영화의 중심에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외곽 도로 길가에 설치된 세 개의 대형 광고판에 문책성 질문을 새겨 넣는 방식으로 밀드레드는 사회에 책임을 묻는다. “죽어가는 동안 강간당했다”, “그런데 아직도 못 잡았다고?”, “뭐 하고 있는 거야, 윌러비 서장?”. 이 세 문장에 마치 무감각한 사회에 돌을 던진 것처럼 미주리주 작은 마을은 화들짝 깨어난다. 다만 밀드레드는 한 번 이혼한 경력이 있고 혼자 남은 아들을 둔 어머니일 뿐이다. 그에게 특별한 것이라곤 다소 불같아 보이는 성격뿐이다. 권력도 백도 없는 그렇다고 특별한 호신술이나 무력을 갖고 있지도 않은 그녀의 사투는 그야말로 치열하게 전개된다. 언뜻 범인을 잡기보다 고통을 방관하는 사회에 돌을 던지는 것만 같다. 



영화 초반부에 ‘밀드레드’는 무관심이 죄가 될 수 있음을 스스로 이야기한다. “갱단의 동료가 범죄를 저지르면 그 사실을 몰랐다고 해도” 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한 사회에서 일어나는 범죄에 대해 모든 구성원이 책임을 져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죄책감이라도 느껴야 한다. 췌장암에 걸린 존경받는 경찰서장 윌러비를 도발하는 문구를 쓴 것은 그 때문이다. 밀드레드에게 윌러비는 아무리 최선을 다했다고 해도 사회의 죄를 방관한 공범자다. 광고판이라는 성격은 그런 목적을 달성하기에 가장 좋은 도구일 수 있다. 즉 세 개의 광고판은 공공의 책임이 있는 윌러비 서장뿐만 아니라 마을 사람 모두에게 던지는 질문인 것이다. 그래서 밀드레드는 광고판에 대해 민원을 넣은 대상을 찾아가 응징하기까지 한다. 마찬가지로 윌러비의 측근으로 자신을 방해하는 폭력적인 형사 딕슨은 그녀에게 최대의 적이다. 경찰로서 자신의 지위와 사정에만 관심이 있는 딕슨은 타인의 고통에는 무관심하다. 흑인을 고문한 이유도 윌러비의 자살에 대한 분풀이로 광고회사의 사장을 폭행한 것도 그 때문이다. 

다만 이러한 도덕적 판단은 밀드레드 스스로에게는 향하지 않는다. 딸을 잃었다고 해도 폭력적 행동은 범죄에 불과하다. 다혈질 성격의 딕슨이 분풀이성 폭행을 한 것과 밀드레드가 마을 사람을 폭행 한 것은 차이점이 없다. 캐릭터의 분노와 폭력은 일방적인 감정의 방향에 따라 혼란스럽게 교차하고 가해자와 피해자는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밀드레드가 복수심에 경찰서에 불을 지르고 내부에 있던 딕슨이 지울 수 없는 화상을 입게 되면서 아이러니가 극에 달한다. 밀드레드의 분노 역시 다른 사람들의 것과 다름없이 개인의 사적 욕망에 근거한 폭력인 것이다.

작은 마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딕슨은 화상을 입고 변화를 겪는다. 흑인에게 인종차별의 폭력을 가하던 그의 행동은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경찰에서 퇴직 당하고 절망감에 펍에서 술을 먹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병신”이라며 혐오감을 내비친다. 공교롭게도 이때 범인으로 추정되는 용의자가 자신의 범죄 행위를 발설하는 것을 엿듣게 된다. 후에 신임 경찰서장에게서 그 용의자는 다른 곳에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만 딕슨은 멈추지 않는다. 또한 자신 때문에 상처 입은 딕슨을 보게 된 밀드레드 역시 죄책감을 느낀다. 그들은 결국 용의자가 밀드레드의 딸을 죽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징벌을 계획하게 된다. 타인의 고통에 연민을 느끼고 스스로에게 책임을 묻는 딕슨과 밀드레드는 공감의 존재로 거듭난다. 하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처럼 ‘분노는 더 큰 분노를 야기할 뿐이’라는 사실을 그들은 인지한다. 총을 싣고 함께 용의자를 찾아가는 차 안에서 밀드레드는 “우리가 과연 잘 하는 걸까?”라고 딕슨에게 묻는다. 결국 답을 내리지 못하고 “가면서 결정하자”는 말을 할 때 영화는 또 다른 아이러니에 봉착한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고 죄책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단죄할 자격이 있을까. 결국 개인의 재판은 ‘더 큰 분노’와 어떻게 다를까. 두 인물은 분명 사건을 겪지 않은 영화 초반부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된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고 해서 법의 범위를 넘어서 용의자를 처단하려는 두 인물이 선인으로 보이진 않는다. 이들의 진정한 변화는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고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일지 모른다. 어쩌면 성경 속 유대 군중이 간음한 여자를 심판하려 할 때 예수가 했던 말도 같은 질문이다. 예수는 그들에게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돌아보라는 뜻이다.

마틴 맥도나는 데드라인이라는 미국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식이란 건 엿같이 지루한 겁니다. 그런 것들 덕분에 우린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뻔히 아는 마블이나 디시(DC) 영화나 보고 있어야 하는 거예요. 그건 ‘이번엔 어떤 컴퓨터 효과를 써서 어떤 결과물을 만들려나?’를 궁금해 하는 거나 다름없어요.”라고 말했다. 그의 작업 스타일을 잘 보여주는 대화이다. 의식의 흐름 기법이라고 칭할만한 즉흥적 작업 방식은 이번에도 다름없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 그는 8년 전 밀드레드라는 인물을 떠올리고 나서 상상 속 그녀의 목소리를 통해 대본을 썼다고 밝혔다. 현재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대본이었다.

마틴 맥도나의 작품들은 정해진 플롯이 없고 정념적이고 충격적이라는 공통점이 보인다. 특히 전개는 대개 상식을 뛰어넘어 예외적이거나 도발적이다. 그럼에도 묵직한 감동을 선사한다. 특히 사회적 편견과 구속을 과격한 방식으로 풍자하거나 비난할 때는 블랙코미디의 유쾌함을 던져준다. ‘쓰리 빌보드’에서는 흑인에 대한 인종차별에서부터 난쟁이 등 소수자에 대한 사회적 시선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이런 블랙코미디가 겨냥하는 바는 명백하다. 사회의 모습을 과장된 모습으로 비춰내 다시 한 번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면모는 그의 대부분의 작품에서 확인된다. 

때로는 과격하고 불편한 느낌을 주는 그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은 그만큼 세상을 충실히 모방하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일랜드계 영국인인 마틴 맥도나는 14살 때 부모님이 귀향하면서 런던에서 형과 단 둘이 살아나가야만 했다. 거리를 전전하며 자란 마틴 맥도나는 실업수당으로 연명하며 커갔다. 영화에 빠져 작품을 쓰면서부터는 수도 없이 거절의 고배를 마셔야 했다. 어쩌면 그의 영화 속 수많은 도발적 이야기들은 사실에 기반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대부분의 그의 작품들이 비관적으로 끝나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쓰리 빌보드’의 엔딩은 매우 현실적인 해피엔딩이 아닐까. 인간의 성장을 낙관하기 때문이다. ‘쓰리 빌보드’가 더욱 감동적인 이유다. 


마틴 맥도나의 대표작들

 

 

1. 뷰티 퀸

(The Beauty Queen of Leenane, 1996, 아일랜드 골웨이 Town Hall Theatre에서 초연)

 

아일랜드의 황량하고 외딴 농가 리넨에 사는 모린은 엄마 모린에게 벗어나고 싶은 마음뿐이다. 둘은 서로 거친 말과 행동으로 상처 주며 매일매일 전쟁 같은 일상을 보낸다. 그런 모린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자신을 뷰티퀸이라고 부르던 남자 파토가 영국에서 편지를 보내온 것. 하지만 매그는 그의 편지를 태워버린다.

 

 

 

 

 

2. 필로우맨

(Pillow Man, 2003, 영국 런던 Cottesloe 극장에서 초연)

 

혼자서 글을 쓰는 것이 취미인 카투리안이 아동 살해 혐의로 취조실에 붙잡혀 온다. 지능이 어린 아이에 머무른 그의 형 마이클은 취조실 옆방에 갇힌다. 투폴스키 반장과 에리얼 형사는 카투리안의 소설과 똑같이 일어난 살인사건의 범인을 그들 형제로 확신한다. 취조가 진행되면서 잔혹한 작품들의 내용이 드러나고 형제의 어린 시절과 끔찍한 살인사건들의 전말이 밝혀진다.

 

 

 

3. 킬러들의 도시

(In Bruges, 2008)

 

대주교를 암살하고 영국에서 도망친 킬러 ‘레이(콜린 파렐 분)’와 ‘켄(브레단 글리스 분)’에게 보스는 2주 동안 벨기에의 관광도시 브리주로 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브리주는 아름다운 중 세풍의 관광도시로 낙천적인 넘버 2.킬러 켄은 관광을 즐기지만 혈기 왕성한 레이는 지루하기 짝이 없다. 하지만 레이는 거리에서 만난 매력적인 비밀스런 여인과 사랑에 빠지고, 켄은 브리주의 아름다움에 반하며 오랜만에 평화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때, 킬러들의 보스 ‘헤리(랄프 파인즈 분)’는 켄에게만 명령을 내린다. 그것은 바로 대주교를 암살할 때 ‘킬러들의 규칙’을 실수로 어겼던 레이를 죽이라는 것. 그때부터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 브리주는 킬러들의 마지막 대결의 장소가 된다.

 

 

4. 세븐 사이코패스

(Seven Psychopaths, 2012)

 

시나리오 작가 ‘마티’(콜린 파렐)는 일곱 명의 싸이코패스가 등장하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데 골머리를 앓고 있다. 보다 못해, 그의 친구이자 강아지 납치 후 주인에게 돌려주고 현상금을 받아 챙기는 사기꾼 ‘빌리’(샘 록웰)는 친구를 도울 생각으로 전국에 싸이코패스를 찾는다는 신문공고를 낸다. 그리고 실제로 시나리오를 완성하기 위해 ‘마티’와 ‘빌리’ 그리고 ‘빌리’의 범죄 파트너인 ‘한스’(크리스토퍼 월켄)는 직접 싸이코패스를 찾아 나서기 시작한다. 하지만 시나리오를 위해 뭉친 3인방은 듣도 보도 못한 싸이코패스들의 향연에, 설상가상으로 ‘빌리’가 자신의 개를 납치했다고 믿는 냉혈한 조직보스의 추격까지 받으며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위기 속에 빠지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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