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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함영덕
  • 승인 2018.04.09 11: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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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리아 편

 

 

음악과 정원의 도시 오스트리아 비엔나

저녁 6시 55분 비엔나 행 열차에 올랐다. 저녁노을이 붉게 물들었다. 좌석은 거의 텅 비었다. 철로 변에 유난히 나무가 많이 있다. 밤 9시 25분 비엔나역에 내려 숙소를 찾기 위해 안내센터를 찾았으나 일요일이라 문이 닫혀있다. 부다페스트에서 비엔나까지 2시간 반 정도의 거리다. 지도를 샀지만 어디에 숙소를 정해야 할지 난감했다. 여행 온 대학생 커플에게 유스호스텔을 물으니 포르첼라노임을 가르쳐 주었다. 지도를 기차역 바닥에 펼쳐놓고 두 사람에게 묻고 상의했지만 감이 잡히지 않아 방향이 같으면 같이 가기를 요청했다. 두 사람을 따라 도시의 전철인 트램(Tram)을 갈아타며 포르첼라노임에 도착했다. 1인용 객실을 잡았다. 우리나라 여관수준으로 깨끗하고 편안했다. 비엔나에서는 수돗물을 생수로 이용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발마사지부터 시작해 몸을 조금씩 풀었다. 인근에 있는 햄버거 가게에서 간단한 아침식사를 했다. 비엔나의 아침 날씨는 매우 서늘하다. 샌들을 벗고 준비해 온 운동화로 갈아 신었더니 발걸음이 날아갈 듯 가벼웠다. 오전 9시 35분 지그문트 프로이드(1856-1939) 공원에 도착했다. 도시 한가운데 넓은 잔디밭으로 된 나무숲과 벤치에 앉아 젊은이들이 책을 읽고 있다. 햇살이 비치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여름에도 최고 기온이 섭씨 23도 정도다. 공원 앞에는 도심 한가운데를 뚫을 듯이 솟구친 웅장한 성당이 자리 잡고 있다. 성당을 지나 마치공원에 도착했다. 잔디밭과 가로수길 사이로 아름다운 나무와 꽃들이 피어 있다. 도시는 공원과 공원사이에 위치한 낭만과 예술이 가득한 분위기로 넘쳤다. 마리아 테레지아공원에 도착했다. 맞은편 쪽에 미술사미술관과 자연사박물관이 들어서 있다. 빈의 미술사미술관은 유럽의 3대 미술관 중에 하나이다. 대대로 합스부르크가문의 황제들이 수집해 온 세계의 미술품들은 빈을 유럽 미술의 보고로 만들었다. 세계 여러 나라의 유명화가들의 작품뿐만 아니라 이 미술관 내 19실에는 합스부르크가문에서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보물이나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왕관을 비롯하여 순금 화병 등 값을 헤아리기 어려운 수많은 보석들이 진열되어 있다. 반면에 빈 자연사박물관은 공룡을 비롯하여 다양한 동식물의 뼈와 화석들과 각종 토기와 청동제품, 농사도구와 전쟁도구, 동식물과 새들의 박제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나와 부근의 오픈페시지에 서 있는 오프렌 건물(1861-1869)로 갔다. 지붕에 날개달린 청동기사와 2층 아치에 조각된 5인의 조각상이 시선을 끌었다. 건물 양 옆 조각상에서 흘러내리는 물은 건물의 운치를 한껏 돋보이게 했다. 레셀공원에서 잠시 앉아 빨간 꽃무리 속을 날아다니는 나비 한 쌍을 보면서 비엔나의 화사한 가을 햇살을 만끽했다. 벤치에서 일어나 칼스키르헤성당(1716-1737)으로 갔다. 양 옆에 서 있는 커다란 석주石柱기둥에는 성경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빼곡하게 조각되어 있다. 
 
스테이트 스위트반 호프정거장으로 가는 트램을 탔다. 기차 정거장은 국내용과 국외여행 기차역이 따로 있는데 크로아티아로 가는 역은 스위트반 호프역이다. 크로아티아 행 열차표를 예매한 후 넓은 정원과 큰 분수대가 있는 슬로스벨리아 건물 앞에 도착했다. 넓은 잔디정원과 시원한 연못 분수대를 배경으로 있는 아름다운 궁전을 바라보며 1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꽃향기를 맡으며 잔디에 누워 푸른 하늘을 보니 여기가 천상의 끝자락처럼 느껴져 너무나 편안했다.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성 슈테판성당
한국의 명동거리처럼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오페거리를 지나 성 슈테판성당으로 향했다. 이 성당은 빈의 상징물이자 가장 사랑받는 명소이다. 성당 벽면의 화려함과 아기자기하고 날카로운 첨탑과 다양한 디자인양식은 그 시대 사람들의 변화무쌍하고 새로움을 추구했던 예술정신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13세기 후반부터 3백년에 걸쳐 건설된 오스트리아 최대의 고딕양식 성당이다. 둥근 돔형식의 천정 중앙은 장식이 없고 성당을 받치는 거대한 둥근 대리석기둥이 연속적인 수직주름으로 변화를 주고 있다. 규모면에서 보면 슈테플이라 불리는 첨탑 꼭대기까지 137m로 세계에서 3번째로 높다. 343개의 계단으로 73m 부근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주변에 펼쳐진 사원의 아름다운 지붕과 빈의 옛 시가지의 멋진 전경을 바라볼 수 있다. 성당을 나와서 도심 가운데를 흐르는 도나우강의 푸른 물결을 바라보았다. 도나우강은 유럽 제 2의 강으로 라인강이 서쪽으로 흐르는데 비해 도나우강은 그 반대쪽인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에서 발칸반도를 거쳐 흑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이다. 비엔나는 도시 전체가 하나의 공원이며 야외박물관이다. 발걸음이 닿는 곳마다 정원과 벤치가 기다리고 있고 숲과 꽃과 조각과 예술품들이로 도시 전체를 장식해 놓고 있다.
 
합스부르크라는 이름은 현재의 스위스의 작은 지방이 된 아르가우에 있는 합스부르크성에서 유래되었다. 합스부르크가문은 원래 300여 개의 영주국으로 이루어진 신성로마제국의 한 영주가문에 불과했지만 정략결혼을 통해 점차 세력을 확장하여 1273년 첫 왕을 탄생시켰다. 그가 바로 독일 왕 루돌프 1세였다. 그는 1282년 두 아들 알브레히트와 루돌프에게 오스트리아와 슈타이어마르크를 물려주었다. 이때부터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왕가에 깊이 관여하게 된다. 중세 이후 근대에 이르는 역사에서 합스부르크가문은 하나의 가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왕가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13세기에서 20세기 초반까지 700여 년 동안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독일과 스페인, 포르투갈, 동유럽을 무대로 유럽에서 막강한 위용을 자랑함은 물론 멕시코와 필리핀까지 지배했던 유럽 최대의 명문가였다. 15세기 막시밀리언 1세는 합스부르크가의 중흥의 시조로 에스파니아 왕실과 통혼으로 왕위에도 개입하게 되었다. 그의 손자로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에스파니아 왕을 겸했던 카를 5세에 이르러 왕가의 지배 영역은 최대 규모에 이르렀다. 그러나 1700년 에스파나의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에스파니아 왕위계승 전쟁이 발발하였고 1740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대가 끊기자 오스트리아 왕의계승 전쟁이 벌어졌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의 마지막 계승자인 마리아 테레지아가 로트링켄(로렌)의 공작인 프란츠 스테판과 결혼함으로써 빈의 합스부르크 가문은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로 바뀌게 되며 합스부르크의 정통 왕가는 단절된다. 합스부르크 왕가는 프랑스 왕을 제외한 거의 모든 유럽의 왕실과 연결되어 있었다. 
 
합스부르크 가문은 어느 나라에 딸을 시집 보내 그 나라의 공주가 되게 하고 공주가 아들을 낳으면 그 나라와 우호관계를 유지하다가 대가 끊기면 그 나라를 통치하는 방법이다. 근친결혼이 계속되다보니 자손 대대로 주걱턱이 유전되고 각종 유전병이 발생하게 되는 치명적인 재앙을 얻게 되었다. 카를로스 2세의 경우를 살펴보면 태어날 때부터 병약하고 불구여서 젖을 5-6세 때 뗄 정도였으나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 유럽 왕가 사람들의 초상화에 주걱턱이 많은 것은 대부분 합스부르크 왕가사람들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전병은 점점 심해져 필리페 4세의 아들인 카를로스 2세 때는 대가 끊기게 된다. 결국 스페인에서 왕위계승 전쟁이 일어나고 부르봉 왕가가 스페인을 통치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1804년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의 프란츠 2세는 스스로 오스트리아의 황제로 칭하였다. 1867년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탄생하였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 한 후 1918년 합스부르크 로트링겐 왕가는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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