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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 속 우물 자아의 근원을 향하다
동양화 속 우물 자아의 근원을 향하다
  • 유미라
  • 승인 2018.03.21 15: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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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면 자신을 잃는다. 나다움이 사라진다. 먹고 살기 위해서. 참 뻔한 이유가 들러붙어 자아를 꺾는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얼추 맞추면서 내 안의 나를 힘껏 누른다. 용수철처럼 뛰어오르는 반동을 억제해야 칭찬을 듣는다. 나를 속이는 삶 때문에 보지 못했던 마음속의 우물을 꺼내보자.

자아가 곧 우물

예술 세계에서 우물은 인간의 단면을 드러내는 소재로 쓰인다. 윤동주는 일제강점기 시절 지식인의 위치에 선 자신의 모습을 한 편의 시로 표현했다. 우물 속 사나이의 존재는 미웠지만 가엾고 그리워지는 존재였다. 부조리한 현실과 시적 자아는 갈등을 빚고 있다. 윤동주는 우물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서 비극적 현실과 자아성찰 의지를 담았다. 일본의 유명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자전적 이야기를 담아 발표한 데뷔 소설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도 우물이 등장한다. “자네가 빠져나온 우물은 시간의 일그러짐에 따라서 파진 거야. 우리에게는 삶도 없고 죽음도 없어. 그냥 바람이지”라고 표현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우물에서 인간의 고독과 소외를 읽었다.


여기 동양화로 우물을 새롭게 해석한 신진 작가가 있다. 지난 2월 28일부터 3월 6일까지 갤러리 이즈 제2전시장에서 첫 개인 전시회 를 개최한 최혜원 작가다. 최 작가는 누구나 우물이 있다고 말한다. 마음속에 자신만의 방이 곧 우물이며 그 깊이는 스스로 정한다. 우물은 현실을 잠시 피하는 은신처가 되지만 역으로 현실의 통로가 된다. 우물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던진 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우물 밖에서 무심히 또는 유심히 우물을 들여다보죠. 때론 우물 속에 있거나 안타깝게 영원히 침잠해 버리기도 하죠. 제 작품 속 우물은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마음속 우물은 바다가 되거나 바람이 되고 햇살 좋은 한적한 오후가 될 수 있죠. 당신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당신의 우물은 어떻게 생겼나요.”

흑백의 거친 동양화에서 찾은 인간의 근원

최 작가는 우물은 지극히 개인적이며 사적인 공간으로 설정했다. 모든 사람은 똑같은 삶을 살지 않는다. 저마다의 인생을 견디고 있다. 그는 우물이라는 소재를 전혀 다른 형상으로 담았다. 다채로운 선과 목판의 흑백 농도에 의해 다른 형체로 느껴진다. 우물의 틀은 목탄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화법(畫法)으로 바람이 되었다가 달이 되었다가 눈보라가 된다. 거친 파도로 다가오지만 그 가운데 좌절 속에서 발견한 빛이 보인다. 관객은 스케치의 소용돌이를 잇는 여백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작은 일부를 보았다가 한 발자국 물러나 하나의 화폭을 보면 비로소 최 작가의 질문에 답을 할 수 있다. “where am I?” 자아가 원하는 것과 현실의 다름을 극복하려는 의지가 샘솟을 때 자신이 있는 이곳은 진정한 안식처가 된다.

 

“어렸을 때는 내 모습을 자유롭게 보여줘도 괜찮았지만 성인이 되면 내가 되는 게 참 힘들어지죠. 커갈수록 내 안에 나를 더 가둬야 해요. 표출하면 철이 없다고 비난하니까요. 사회와 타협하면 내 안의 나라는 존재는 소외감 속에 힘을 잃어가요. 자신을 보듬지 못한 현대인이 참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제 작품은 자신을 들여다볼 시간이 없고 갇힌 틀을 깨고 나올 용기가 없는 이들, 결핍된 자아로 사색이 필요한 이들에게 메시지를 던지고 있어요.”

  

최 작가는 수없이 바다를 그려도 같은 바다를 그리지 않는다. 바다는 분할되어 독자적인 존재감을 드러내지만 남은 자리와 조화를 이루며 하나의 공간 개념 ‘바다’가 되며 다시금 개성이 뚜렷한 바다로 쪼개진다. 이런 저런 이유로 망각했던 자아는 화폭 안에서 불일치하는 형상과 여백의 조화가 깨어난다. 바다의 소용돌이는 이번 전시회의 주제를 잘 담은 우물로도 비친다. 삶의 노선에 따라 최 작가의 작품은 관람객에게 다른 세계의 문을 열어준다.

 

한편 최 작가는 “제7회 갤러리이즈 신진작가 창작지원 프로그램의 작가로 선정돼 첫 단독 전시회를 준비하며 내가 어디에 있는지 많은 생각을 했다. 관람객 여러분께서 저와 같은 감정을 느끼신 것 같아 감동적이었다. 리듬감과 여백의 배치가 다채로워 다른 느낌이 느껴지고 치유로 위안을 받으신 분이 많으셨다”라며 “다른 이들이 인정하는 모습으로 살기 위해 부단히 애쓰지 않고 자신만의 편안한 공간을 창조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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