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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umn]‘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의 혁신,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
[Column]‘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의 혁신, 자연에서 배우는 청색기술
  • 이인식
  • 승인 2018.02.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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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전 지구적 차원에서 환경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1972년 초 로마클럽이 펴낸 <성장의 한계(The Limits to Growth)>라는 보고서다. 무려 9억 부 넘게 팔렸다는 이 보고서는 세계 인구의 팽창, 공업화, 자원고갈이 계속된다면 경제성장은 한 세기 안에 한계에 도달하고 전 세계는 파멸의 길로 치닫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같은 해 6월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 유엔인간환경회의(스톡홀름회의)는 ‘인간환경선언’을 채택해 지구의 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사회의 협력 가능성을 열었다. 현대 환경주의역사에서 기념비적인 사건으로 기록되는 스톡홀름 회의는 환경에 대한 관심과 개발, 성장, 고용과 같은 경제적 개념 사이의 긍정적 연결고리를 찾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개념이 처음으로 태동한 것이다.

 

1987년 노르웨이 총리가 의장을 맡은 세계환경개발위원회(WCED)는 <우리 공동의 미래(Our Common Future)>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노르웨이 총리의 이름을 따서 <브룬트란트 보고서>라고도 불리는 이 보고서 발간을 계기로, 훗날 환경 관련 논의의 핵심이 된 ‘지속가능발전(sustainable development)’이라는 개념이 국제적으로 부각됐다. <브룬트란트 보고서>는 지속가능 발전을 “후손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능력을 손상하지 않으면서 현 세대의 필요를 채우는 발전”이라 정의했다. 다시 말해 지속가능 발전은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발전을 의미한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

지속가능성의 핵심은 사람과 자연의 관계 설정이다. 자연이 중심이고 스승이며, 인간은 자연에 지식과 생존을 의존한다는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지속가능 발전은 자연을 모방하는 경제활동으로 실현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1997년 미국의 생물학 저술가 재닌 베니어스가 펴낸 <생체모방(Biomimicry)>은 지속가능 발전의 추진 전략을 모색한 탁월한 업적으로 평가된다. 베니어스는 이 책의 부제처럼, 생물모방을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 혁신(innovation inspired by nature)’이라 정의한다. 이 책의 출간을 계기로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려는 생물영감(bioinspiration)과, 생물을 본뜨는 생물모방은 21세기의 새로운 연구분야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다. 베니어스는 이 책에서 자연으로부터 배운 것을 토대로 성취할 수 있는 혁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나열했다.

 

“나뭇잎을 모방한 태양전지, 거미줄처럼 꼰 강철섬유, 조개를 모방한 깨지지 않는 세락믹, 침팬지로부터 배운 암 치료법, 다년생 들풀에서 영감을 얻은 다년색 곡물, 세포처럼 신호를 보내는 컴퓨터, 미국 삼나무 숲에서 교훈을 얻는 경제 등 어떤 경우에도 자연은 모델이 된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은 자연 전체가 모델이 되므로 연구의 범위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 넓다. 생물영감과 생물모방을 아우르는 용어가 해외에서도 아직 나타나지 않아 2012년 펴낸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자연중심 기술’이라는 낱말을 만들어 사용했다.

 

2005년 미국의 물리학자 요세프 바-코헨이 편집한 <생물모방학(Biomimetics)>을 살펴보면 자연중심 기술의 범위를 짐작해볼 수 있다. 이를테면 생물학, 생태학, 생명공학, 나노기술, 재료공학, 로봇공학, 인공지능, 인공생명, 생체전자공학(바이오닉스), 신경공학, 집단지능, 건축학, 에너지 등 현대 과학기술의 핵심 분야가 대대분 관련된다.

 

2008년 10월 스페인에서 열린 세계자연보전연맹(IUCN) 회의에서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Nature’s 100 Best)>이라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세계자연보존연맹과 유엔환경계획(UNEP)의 후원을 받아 마련된 이 보고서는 생물로부터 영감을 받거나 생물을 모방한 2100개 기술 중 가장 주목할 만한 100가지 혁신기술을 선정해 수록한 것이다. 이 보고서를 만든 사람은 재닌 베니어스와 군터 파울리인데 파울리는 벨기에 출신의 저술가, 기업가, 환경운동가다.

 

2010년 6월 파울리는 자연의 100대 혁신기술을 경제적 측면에서 조명해 <블루이코노미(The Blue Economy)>을 펴냈다. 그는 “하늘도 청색이고, 바다도 청색이고, 우주에서 내려다본 행성 지구도 청색이어서” 블루 이코노미(청색경제)라는 명칭을 만들었다고 훗날 술회했다. 이 책의 부제는 ‘10년 안에 100가지의 혁신기술로 1억 개 일자리가 만들어진다(10 year, 100 innovation, 100 million jobs)’다. 파울리는 이 책에서 100가지 자연중심 기술로 2020년까지 10년 동안 1억 개의 청색 일자리가 창출되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100가지 사례를 통해 생태계의 창조성과 적응력을 활용하는 청색경제가 고용 창출 측면에서 매우 인상적인 규모의 잠재력을 갖고 있음이 확인된 셈이다. 필자는 청색경제의 맥락에서 자연중심의 혁신기술을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라 부를 것을 <자연은 위대한 스승이다>에서 제안한 바 있다.

 

21세기 들어 청색기술이 각광을 받게 된 까닭은 청색 행성인 지구의 환경위기를 해결하는 참신한 접근방법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베니어스가 <생체모방>에서 명쾌하게 일갈한 대목에 그 이유가 함축돼 있다.

 

“생물들은 화석연료를 고갈시키지 않고 지구를 오염시키지도 않으며 미래를 저당 잡히지 않고도 지금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을 전부 해왔다. 이보다 더 좋은 모델이 어디에 있겠는가?”

   


 



일자리 창출과 환경보존을 동시에 해결할 청색기술

청색기술은 무엇보다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녹색기술은 환경오염이 발생한 뒤의 사후 처리적 대응 측면이 강한 반면, 청색기술은 환경오염 물질의 발생을 사전에 원천적으로 억제하려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청색기술이 발전하면 기존 과학기술의 틀에 갇힌 녹색성장의 한계를 뛰어넘는 청색성장으로 일자리 창출과 환경보존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을 수 있다. 즉 지속가능 발전을 담보하는 명실상부한 블루오션이 아닐 수 없다. 선진국을 따라가던 추격자(fast follower)에서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선도자(first mover)로 변신을 꾀하는 우리나라의 성장전력에도 안성맞춤인 융합기술이다.

 

2016년 8월 경상북도는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예비타당성(예타) 기본계획 수립 연구 용역을 체결했다. 2017년 1월 20일 경산시는 경상북도와 함께 청색기술 5대 전략산업의 청사진을 발표했다. 경산시가 우리나라 제1호 청색기술도시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전라남도는 2016년 4월 산학연 전문가를 중심으로 ‘청색기술산업화 추진단’을 발족하고 광주과학기술원(GIST), 목포대, 순천대, 중앙대, 단국대 등 5개 대학 산학협력단과 청색기술 공동연구 협약을 체결했다. 전라남도는 청색기술 상용화를 지원하는 재단을 설립해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산업화를 추진할 예정이다.

 

환경부는 지난 1월 24일 청색기술을 환경 신산업 육성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내용의 2018년 업무 계획을 발표했다. 지난해 도토리거위벌레의 턱 구조와 동작을 활용한 확공형 드릴을 개발해 특허를 출원한 환경부 산하 국립생태원은 올해 ‘저전력 디스플레이 소재개발을 위한 파란색 깃털 구조색 연구’를 추진한다. 또한 청색기술 육성을 위해 관련 지자체와 관계기관과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청색기술 개발 로드맵 수립 및 신규 연구개발 기획을 추진할 계획이다. 정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청색기술 개발에 나선 것이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청색기술은 단순히 과학기술의 하나가 아니라 미래를 바꾸는 혁신적인 패러다임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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