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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견고한 시선들
2017 견고한 시선들
  • 송지선
  • 승인 2017.12.11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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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행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올해의 영화들

2017년 견고한 시선들

흥행으로 가치를 매길 수 없는 올해의 영화들

 

2017년 한해 수많은 영화들이 우리나라 극장 스크린에 오르내렸다. 주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장기집권하며 흥행을 누렸다. 하지만 흥행만으로 가치를 매길 수는 없다. 헐리웃의 정형화 된 문법은 흥미를 자극하기에는 충분하지만 우리의 마음을 뚫고 들어오지는 못한다. 감동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온다. 이 땅에 발을 붙이고 단단하게 자리 잡은 정서만이 우리의 마음을 동(動)하게 한다. 올해 세상을 바라보는 견고한 시선을 통해 관객들을 감동하게 한 영화들을 되짚어본다.

 

 

 

 

 

 

‘퍼스널 쇼퍼’

올리비아 아사야스 감독 크리스틴 스튜어트, 라르스 아이딩어 등 출연

 

우디 앨런의 ‘카페 소사이어티’ 이후 크리스틴 스튜어트가 선택한 영화. 올리비아 아사야스 감독과는 2014년 ‘클라우즈 오브 실스 마리아’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다. ‘퍼스널 쇼퍼’는 호러·스릴러 장르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이야기도 장르의 문법을 따른다. 하지만 감독은 공포의 실체의 자리에 관객들이 쉽사리 예상할 수 없는 것을 놓아둔다. VIP 고객의 쇼핑을 돕는 퍼스널 쇼퍼로 일하는 주인공 모린은 쌍둥이 오빠가 병으로 죽자 프랑스 파리에서 그의 영혼을 기다린다. 영적 감각을 타고난 남매는 한 가지 약속을 했다. 둘 중 한 사람이 죽으면 남은 사람에게 메시지를 보내자는 것. 어느 날 오빠의 영혼을 찾기 위해 노력하던 모린에게 의문의 존재에게 문자 메시지가 들어오기 시작한다. 불안과 함께 메시지의 요구를 따르던 모린은 그것이 오빠의 영혼인지 혹은 살아있는 누군가인지 혹은 자기 자신의 욕망일 뿐인지 혼란을 겪게 된다. 상대의 정체는 끝내 풀리지 않는다. 질문의 자리에는 공허한 주인공 자신의 모습만 남을 뿐이다. 영화 평론가 이동진은 이 영화에 죽음에 대한 욕망이 나타난다고 말한다. 분명한 것은 공포 장르에 익숙한 주제를 표현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이용한다. 장르의 틀을 벗어난 의미심장한 주제는 흥미롭다. 간과할 수 있는 우리 자신들 심층에 대한 발견은 감독이 인간에 대한 깊이 있는 시선을 갖고 있기에 가능했다.

 

 

 


 

 

 

 

2. ‘맨체스터 바이 더 씨’

케네스 로너건 감독 케이시 애플렉, 미셸 윌리엄스, 카일 챈들러 등 출연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치유의 희망이 없다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누군가는 노력을 떠올리고 누군가는 죽음을 떠올린다. 어쩌면 살아가는 것에는 살아가는 것 외에는 답이 없을 지도 모른다. ‘맨체스터 바이 더 씨’는 끔직한 사건을 겪고 모든 것을 잃게 된 한 남자에 대한 이야기다. 외지에서 아파트 관리인으로 혼자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 리는 형의 죽음으로 조카를 떠맡게 된다. 생전에 후견인으로 지정해 놓은 것이다. 리는 장례를 돕기 위해 고향으로 향한다. 이곳에서 리는 조카와 전 부인을 만나고 아픈 과거의 기억이 되살아난다. 결국 그는 함께 살고 싶어 하는 조카를 두고 다시 도망가고 만다. 케네스 로너건 감독은 주인공의 서늘하고 음울한 풍경을 그려내지만 그 시선에는 연민이 담겨 있다. 영화는 섣불리 긍정을 말하지 않고 함부로 위로하지 않는 것이 가장 사려 깊은 태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오히려 삶은 아주 작은 친절로도 지속된다. 혹은 아주 작은 추억으로도 살아진다. 천천히 하지만 집요하게 인물에 따라붙는 감독의 연출 스타일은 캐릭터의 총체와 세상사의 일부를 언뜻 밝힌다. 인생에 대한 성숙한 시선이다.

 

 

 

 

 

 

3. ‘문라이트’

배리 젠킨스 감독 마허샬라 알리, 나오미 해리스, 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래반트 로즈, 자넬 모네 등 출연

 

만약 내가 흑인이고 동성애자이면서 마약중독의 홀어머니 아래서 자랐다면 어땠을까. 소수자 중의 소수자를 다루는 ‘문라이트’는 의외로 많은 관객들이 공감한 영화다. 사랑을 다루기 때문이다. 모두가 잃어버린 첫사랑이다. 영화는 주인공의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 성인의 시절을 각각의 챕터로 보여준다. 따돌림을 당하며 성장한 주인공에게 학생 시절 단 한 번 나눈 사랑이 가장 큰 의미가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것 같은 주인공의 사정에 공감이 가는 것은 모든 사람이 외롭기 때문일 것이다. ‘문라이트’는 감각적인 영화다. 신산한 삶의 장면들이 어렸던 시절의 감정을 생생하게 떠올리게 한다. 첫경험의 생경한 흥분이나 매번 절박했던 그리움도 다시금 재생된다. 위태위태한 삶의 장면을 따뜻하게 잡아낼 수 있는 것은 원작자와 감독의 따뜻한 태도 덕분일 것이다.

 

 

 

 

 

 

 

4. ‘토니 에드만’

마렌 아데 감독 산드라 휠러, 페테르 시모니슈에크, 잉그리드 비수 등 출연

 

작년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과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수상 후보로 이름을 올렸다. 실패한 수상 이력을 언급하는 이유는 그만큼 호응이 좋았기 때문이다. 영화는 부녀간의 문화와 세대 갈등을 다룬다. 다만 일반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극적 봉합은 없다. 주인공 빈프리트는 함께 지내던 반려견이 죽자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는 딸을 만나기 위해 떠난다. 바쁜 일상에 수시로 장난을 거는 아버지가 귀찮은 딸은 결국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뒤돌아 운다. 딸은 아버지가 유머를 과하게 사랑하는 사람이란 사실을 잠깐 잊어버렸다. 틀니와 가발로 위장한 아버지는 딸의 직장을 어슬렁거리며 관심을 끈다. 그의 새 이름은 토니 에드만. 괴상한 장난이 오히려 딸의 흥미를 끌었는지 부녀는 한동안 역할극을 계속한다. 영화는 낙오하지 않기 위해 무한 경쟁 사회에서 치열하게 살아야 하는 딸의 모습을 자세히 비추면서 유머와 절박함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애증의 가족사를 다루는 영화들이 사용하는 일반적인 극적 해결을 제시하지 않는 점이 흥미롭다. ‘토니 에드만’은 가족애가 아니라 개인이 살아내는 시대에서 갈등을 찾아낸다. 특유의 접근법이 관객을 깊은 생각으로 이끈다.

 

 

 

 

 

 

 

5. ‘덩케르크’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핀 화이트헤드, 마크 라이런스, 톰 하디, 킬리언 머피, 해리 스타일스, 등 출연

 

모두가 화려한 블록버스터를 예상했다. 감독이 크리스토퍼 놀란 이었기 때문이다. 막상 개봉한 ‘덩케르크’는 ‘다크 나이트’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영화였다. ‘덩케르크’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 속에서 주인공과 악당이 엎치락뒤치락 판을 뒤엎는 액션 블록버스터가 아니라 재난 영화에 버금가는 생존 이야기이다. 그리고 생존 자체가 승리가 되는 영화이다. 전쟁은 그야말로 재난이고 살아남으려는 시도 자체가 용기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2차 세계대전이 막 벌어진 당시 독일군의 공세에 덩케르크에 고립된 영국군의 철수 작전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육군 병사와 독일군 전투기의 폭격을 저지하기 위해 투입된 공군 그리고 자발적으로 구출 작전에 나선 영국 국민들의 활약이 그려진다. 끊임없이 위기의 상황에 처하는 병사들의 모습은 극도의 긴장감을 만들어 낸다. 공군의 활약상과 시민들의 원조는 역설적으로 도망하는 일이 숭고해 보이도록 한다. ‘덩케르크’의 성과는 관객들을 전쟁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았다는 것이다. 전쟁의 스펙터클이 생존의 절박함이 되는 것을 느낀 관객들은 더 이상 죽음을 오락으로 느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전쟁도 다름이 없다. 생존을 추구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순간 ‘덩케르크’는 전쟁 영화를 벗어난다. 오히려 모든 사람의 모든 사투를 그리는 것처럼 느껴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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