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2 18:09 (금)
[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카파도키아편, 함영덕 작가
[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 카파도키아편, 함영덕 작가
  • 편집부
  • 승인 2017.09.04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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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인 괴뢰메(GOREME)의 패키지 투어

저녁 7시 50분 카파도키아 행 버스를 타고 괴뢰메로 출발했다. 이스탄불에서 심야 버스를 타고 카파도키아의 괴뢰메에 도착하면 다음날 아침 7시 30분에 도착하게 된다. 11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창밖엔 꽉 찬 달빛이 호수를 따라 쫒아왔다. 수천 겹의 잔물결로 일렁이는 호수는 달빛으로 온통 은빛이 된다. 수천 개의 파문이 내 가슴으로 밀려들었다. 천상의 달 하나가 지상의 수억 수만의 모습으로 동시에 비치고 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에서 보았던 초승달이 어느새 보름달로 변해있다. 여행 내내 늘 시간에 쫓기다보니 어느 한곳에서 하루 쯤 푹 쉬고 싶다. 불빛 가득한 호숫가의 야경이무수한 상념을 몰고 왔다.

 

아침 7시 경 잠에서 깨어보니 버스는 작은 시골마을을 달리고 있다. 아침 햇살이 눈부셨다. 버스 안내양이 친절하게 손에다 올리브 향을 뿌려주었다. 터키식 예법이라 한다. 지붕 위를 날아오르는 새떼들 사이로 기묘한 형태의 계곡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오전 7시 30분 버스는 어느새 목적지인 카파도키아의 괴뢰메에 도착했다. 버스역 광장엔 숙박이나 차편, 관광정보를 알려주는 안내 센터가 있어 한국인들이 즐겨 찾는 SOS펜션을 찾았다.

 

평원 아래로 전개되는 기이한 동굴과 무성한 수목들이 연출하는 분위기는 다른 행성을 방문한 느낌이다. 버섯과 삿갓처럼 뾰족한 바위 속에 동굴을 뚫고 사는 모습은 한마디로 외계인의 마을 같았다. 펜션에 일일투어를 신청하면 저렴한 가격에 참여할 수 있는 패키지투어가 있어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이 코스에 합류한다. 언덕을 올라 작은 마을을 지나 첫 번째 방문지에 정차했다. 언덕에서 가장 큰 바위 이름을 우치살케서라 부르는데 암벽 내부장식으로는 비잔틴 양식과 오스만 양식으로 동굴 속이 꾸며져 있다. 동굴구멍이 뻥뻥 뚫린 커다란 암벽 밑에 작은 바위와 주택들이 즐비하게 계곡 아래로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보면 큰 바위를 우치사르라고 부르며 왼쪽 산언덕 전체를 우치사르성과 피아지온계곡으로 부르고 있다.

  

 

 

  

세계 9번째 불가사이 데린쿠유 지하도시

첫 번째 정차지에서 지하 동굴 코스로 출발했다. 오전 10시 35분 데린쿠유에서 정차하여 입장권을 샀다. 앙카라 동부에서 옛 아나톨리아의 시골마을과 카파도키아의 암굴교회를 접하게 된다. 본래 카파도키아는 그리스 도시왕국으로 로마 시대 때는 주州의 이름이었다. 현재 카파도키아의 영역은 과거 카파도키아의 지역 중 작은 일부분에 해당 되는 곳을 일컫고 있다.

 

데린쿠유의 지하동굴은 카이마크리동굴과 더불어 카파도키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명소의 하나로 하루에도 수천 명의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안내인을 따라 동굴에 들어가니 지하에 흐르는 물 처리 구멍과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 같은 터널로 횃불이나 촛불 없이는 걸을 수조차 없는 곳이다.

 

데린쿠유 주변은 평평한 지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데린쿠유와 카이마크리 방향으로 하천이 있는데 폭이 50-60m, 길이가 8km로 지금은 완전히 메워져 있다. 이곳 지층은 수억 년 전에 일어났던 에르제스산의 화산폭발로 인해 형성된 것으로 이때의 화산재와 용암이 수백 미터의 높이로 쌓이고 굳어져 응회암과 용암층을 형성하였다. 그 후 수억 년의 풍화와 침식작용으로 기이하고 신비로운 형상의 카파도키아 풍광을 빚어내게 되었다.

 

빵을 굽던 화덕과 식사 장소, 구멍을 통해 연기를 취소화시키는 장치들, 물단지나 식량저장 창고 등을 돌아보며 미로 같은 동굴을 내려가는 기분은 영화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지하세계의 주인공이 된듯한 기분에 젖게 한다. 

 

 

 

 

카파도키아에는 에르다스와 카라다스, 카크니, 카우베시와 같은 많은 언덕과 작은 산들이 있다. 이런 언덕과 산꼭대기에 보초막을 세우고 거울을 반사시키는 방법으로 초소들끼리 의사소통을 했다. 이와 같은 지하 도시들은 초기 기독교 전파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들 지하도시는 출구와 환기창이 눈과 바람, 바위, 흙으로 덮여 수세기 동안 텅 빈 채로 남아 있었다. 일부는 완전히 일부는 부분적으로 폐쇄되었으며 지하도시는 9세기 이후에는 사용되지 않았다. 이런 이유로 마을과 도시들이 지하세계의 비밀을 모른 체 지하도시 꼭대기 위에 세워지게 되었다.

 

지하도시를 만들려고 최초로 시도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시대에 만들기 시작했는지, 종족들이 어디서 왔으며 왜 이런 지하도시를 건설할 필요를 느꼈는지에 대해 아무도 명확하게 답변할 수는 없다. 이곳 데린쿠유는 네브세히르 주州에 위치한 인구 만 명 미만의 작은 읍이다. 해발 1,355m에 위치하고 있으며 주의 중심인 네브세히르에서 29Km 떨어진 거리에 있다. 최근에 알려지기 시작한 데린쿠유는 옛날 소아시아라고 불렀던 아나톨리아인들의 도시다. 우연히 발견된 지하도시는 1965년 일반인에게 개방되었으며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세계 9번째 불가사이라는 것에 동감을 하고 있다. 창고로 쓰였던 첫 번째 층은 옛 소아시아 지방에 살던 하타이드 이전의 민족에 의해 만들어 졌다. 오늘날 볼 수 있는 지하 도시 8개 층은 나중에 이곳에 온 다른 사람들에 의해 추가로 확장되어 만들어진 곳이다. 최초로 기독교를 믿었던 사람들에게는 그들의 종교를 은밀하게 전파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외부의 압력으로부터 그들의 종교적 의무를 수행하기에 안전한 장소였다. 서기 7-8세기에 시작된 아랍민족 침입에 대한 피난처로서도 사용되었다.

 

두 사람이 겨우 통과할 수 있는 터널과 미로 같은 통로를 돌며 내려가다 보면 어떻게 이런 암굴에 사람들이 살았을까 하는 의문들이 구름처럼 일어난다. 이 비좁은 공간에도 미션스쿨과 세례 장소, 부엌, 저장실, 침대, 거실, 포도 저장창고, 마구간 등이 지하 1층과 2층에 꾸며져 있다. 지하 3층과 4층에는 피난처와 무기저장 창고와 터널이 있으며 도시가 대규모의 공격을 받을 때 이 터널을 통해 도망감으로써 안전을 보장받을 수 있게 만들어졌다. 세 번째 층에서 발견된 터널은 9km 떨어진 카이마크리의 지하도시와 연결된 것으로 추정되며 터널의 환기창들은 경작지 안에 있기 때문에 완전하게 보존되지 못하고 바위와 흙으로 덮여있어 파괴되었다.

 

지하도시의 다른 층들이 피난처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몇 가지의 명백한 증거 중에 하나가 통로에 있는 돌문이다. 도시가 침략을 받으면 빗장걸이 돌로 통로를 폐쇄해 버렸다. 바깥에서 돌문을 여는 홀이 있는데 이 홀들은 외부의 어떠한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마지막 층에는 특별한 우물 샘과 비밀 탈출 창, 교회, 회의실, 고회성사실, 무덤과 환기창 등이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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