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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에서 품격과 예의는 사라졌나?
한국 정치에서 품격과 예의는 사라졌나?
  • 박경민
  • 승인 2020.01.03 13: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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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한해의 정치를 ‘사상 최악’이었다고 평가해도 별로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특히 총선이 다가오는 하반기 이후부터는 끊임없는 장외투쟁과 농성, 단식, 삭발이 이어지면서 국회는 민의의 전당이 아닌 투쟁의 장소가 되어버렸다. 조국 사태를 둘러싼 국민의 극단적인 양분은 이에 기름을 더했다. 이 과정에서 개탄스러운 것은 이제 한국 정치에서 ‘품격과 예의’가 사라졌다는 점이다. 총선을 앞둔 극한 상황에서 특히 자유한국당은 이러한 정치의 품격과 예의를 파괴하는 선봉에 섰다. 각종 망언은 물론이고 대통령까지 비하하는 상황에까지 직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총선은 3개월 이상이 남아 있다. 그 사이에 또 다시 쏟아질 망언과 욕설에 국민은 점점 지쳐갈 뿐이다.
 
한해의 정치가 사상 최악이라 평가받았다해도 사회가 돌아가는것은 아마도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사진=unsplash)
한해의 정치가 사상 최악이라 평가받았다해도 사회가 돌아가는것은 아마도 당연한 이야기일 것이다. (사진=unsplash)
 
비판이 아닌 욕설에 가까운 발언들
아마도 지난 2019년에서 최악의 장면을 꼽으라면 단연 12월 연말에 열린 본 회의일 것이다. 지난 27일 국회의장석을 집단 점거하고 문희상 의장이 단상에도 오르지 못하도록 몸으로 싸우는 과정은 참혹한 현장 그 자체였다. 국회선진화법은 무력화됐고, 과거 고성과 육탄공격의 장면들이 재현됐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적 경제 대국이 된 대한민국의 국회의원들이 보여준 모습에서 실망한 국민이 많았다. 

매우 황당한 사실은 이날 자유한국당 이은재 의원이 문희상 의장을 몸으로 막으면서 팔꿈치로 가격을 하고, “성희롱하지 말라”고 몇 차례 소리를 질렀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 상황에서 문희상 의장이 성희롱을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회의원’인 이은재 의원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품격과 예의는 사라지고, 여성으로서의 몸마저 정치적 도구로 사용하는 모습에서는 깊은 실망감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렇게 여성의원이 자신의 몸을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한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지난 4월 말에도 패스트트랙으로 여야가 충돌하면서 임이자 의원은 문희상 의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발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문 의장을 몸으로 막는 과정에서 생긴 일이었다. 몸싸움 과정에서 본인 스스로가 문 의장 앞으로 끼어 들어가면서 문 의장을 향해 ‘성추행’이라고 했으니, 도대체 이런 행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그뿐 아니라 심재철 원내대표는 12월 24일 국회 로텐더홀에서 기자회견을 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희상 의장)은 권위와 위신을 내팽개치고 좌파 충견 노릇을 충실히 했다.”
심 대표는 문 의장을 ‘견(犬)’라고 지칭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사용하는 욕설에 ‘개’라는 말이 유난히 많이 들어간다는 점에서 심 대표는 시정잡배들의 욕설을 문희상 의장에게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당 권성동 의원은 필리버스터 연단에 오르자마자 문 의장을 “문희상 씨”라고 말하기도 했다. 최소한의 예의도 지키지 않는 모습이었다.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기념한 대담장면(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 취임 2주년을 기념한 대담장면(사진=청와대)

일반적으로 욕설에 많이 들어가는 말들이 있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도 비슷하다. 사람의 배설물, 개, 그리고 창녀가 주요 소재다. 심재철 의원이 ‘개’라는 소재를 선택했다면, 나경원 전 원내대표는 이 중에서 ‘창녀’를 골라와 문재인 대통령을 공격했다. 지난해 5월 11일에 열린 한국당 장외집회에서 그녀는 “(취임 2주년 대담에서) KBS 기자가 요새 문빠, 달창들에게 공격받았다”고 말했다. ‘달창’은 ‘달빛 창녀단’의 준말이다. 이후 그녀는 “인터넷상 표현을 무심코 사용해 논란을 일으킨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무심코’라는 말이다. 제1야당의 원내대표가 대중 연설에서 ‘무심코’ 말을 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 사람은 또 누가 있을까?

자유한국당 정미경 의원은 ‘배설물’을 끌어왔다. 그녀는 지난 7월 15일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 원인은 문재인 정부에 있다고 말하면서 이를 문 대통령의 ‘배설물’로 지칭했다. 
“제가 마지막으로 정리하면 이렇다. 문재인 대통령이 싼 배설물은 문 대통령이 치우시는 게 맞지 않나. 아베가 싼 배설물은 아베가 치워야 하는 게 맞지 않나. 이게 제 정답이다.”
이 정도면 더 이상 정치에 품격이나 예의를 따질 일이 아니다. 
 
결국, 선거가 모든 것을 좌우
대통령을 비하하고 혐오하는 발언들도 서슴치 않게 나왔다. 황교안 대표는 한 연설 중에 ‘문세먼지’라는 단어를 썼다. 문재인 정부가 미세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해서 ‘문세먼지’로 비꼰 것이다. 그러나 미세먼지 문제는 대통령이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중국은 물론이고, 남한 전체에서 발생하는 각종 대기오염 물질을 무슨 수로 대통령이 순식간에 해결한다는 말인가? 잘못된 정책을 지적할 수는 있어도 대통령의 이름으로 비꼬는 행태 역시 품격과 예의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정치권에 활동하는 사람들에겐 선거는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요소일 것이다(사진=픽사베이)
정치권에 활동하는 사람들에겐 선거는 가장 매력적이면서도 위험한 요소일 것이다(사진=픽사베이)

심지어 문재인 대통령은 ‘간첩’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극우보수 인물인 전광훈 목사는 한 설교에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어록을 살펴보면 그분은 전향한 흔적이 전혀 없습니다. 국민의 동의도 없이 언론의 동의도 없이 혼자서 새벽에 38선, 휴전선을 넘어서 김정은과 밀담을 하고 오는 그런 대통령이 어딨습니까. 이것은 곧 간첩입니다, 간첩. 당연히 대한민국을 간첩에게 맡길 수 없습니다.” 
엄연한 대한민국의 선거에 의해서 탄생한 대통령을 ‘전향하지 않았다’, ‘간첩이다’라고 표현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 역시 광화문 집회에 참여했고, 그 자리에서는 ‘멸문(滅文)하자’는 막말이 쏟아져 나왔다. 과거 박정희-박근혜 대통령 시절에도 ‘멸박(滅朴)하자’는 정도의 말은 나오지 않았다. 이는 지금 현재의 정치가 그만큼 극단적이고 혐오적이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물론 민주당이라고 해서 이러한 품격과 예의에 걸맞는 정치집단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과거 민주당 홍익표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두고, ‘귀태(鬼胎)’라는 막말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망언과 막말에 있어서 자유한국당은 그 자극성, 지속성, 반복성이 더 뚜렷하고, 단순한 정치 비판이 아니라 혐오의 수준까지 나아가며, 이를 통해 국민을 분열시키는 역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은 이렇게 이야기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의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진다.”

여기에서의 지도자는 꼭 대통령 한 명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의의 대변인이자 국가의 수호자인 국회의원들 역시 우리 사회의 지도자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국민의 정치적 수준은 높아졌지만, 지도자들의 수준이 따라오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혹은 국회의원들이 이미 높아져 버린 국민의 수준을 무시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지금과 같은 상황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국민들은 선거를 통해 부정한 세력을 심판하면서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 왔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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