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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52시간 미루는 대책은 ‘노동시간 단축’이란 근본 취지를 벗어나
주 52시간 미루는 대책은 ‘노동시간 단축’이란 근본 취지를 벗어나
  • 이가영
  • 승인 2020.01.02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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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계가 내년부터 50인 이상~300인 미만 기업에 적용되는 ‘주 52시간 근로제’를 최소 1년 이상 미뤄야 한다고 국회와 정부 측에 강력 건의했다. 연말까지 국회 입법이 이뤄지지 않을 것에 대한 대비책이라고 하나, 사실상 ‘시행유예’로 받아들여지며 노동계 반발이 거세다. 국회의 직무유기 탓이 크고, 300인 이상 사업장에 비해 중소기업의 제도 시행 여력이 적은 현실을 인정하더라도, 언제까지 이렇게 ‘땜질’ 대책으로 가야 할지 우려가 크다.
 
2019년 12월 11일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주52시간제의 원할한 시행을 위한 정부보완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페이스북)
2019년 12월 11일 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이 주52시간제의 원할한 시행을 위한 정부보완 방안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재갑 고용노동부장관 페이스북)
 
규모별 구분적용 법제화해야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달 25일 서울 여의도 중기중앙회에서 김학용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비롯한 환노위 위원들과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 등을 초청해 중소기업 현장 목소리를 전달했다. 이번 간담회는 지난달 환경 분야에 이어 노동 분야 논의를 위해 마련된 두 번째 만남이다. 중소기업계는 3개월 뒤 적용될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 유예를 건의했다. 대기업에도 9개월의 계도기간을 준 데다 대내외 경기 악화와 일본 수출규제 등 어려운 여건을 고려해 최소한 1년의 유예기간이 필요하다는 것이 중소기업계 의견이다. 서울경인공예협동조합 관계자는 “중소기업들은 부족한 인력으로 기업 운영에 필요한 생산량을 맞추기 위해 부득이 휴일근로를 포함한 초과근로를 하고 있다”며 “인력난이 해소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시간이 단축되면 납기 미준수 등 현장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3개월(노사합의)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도 1년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기문 중기중앙회장은 “대내외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이 기술 개발과 혁신에 집중해야 하는 지금 주 52시간제 도입 등 노동규제로 현장은 매우 지친 상태”라며 “경제 상황과 중소기업 준비 상황 등을 고려해 도입 시기를 유예하고 경쟁국 수준으로 다양한 대응 방안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최저임금 구분적용도 요구했다. 한국수퍼마켓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업종과 규모별 이익 규모와 부가가치의 차이가 크고 법에서도 업종별 구분적용을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규모별 구분적용을 법제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로기준법 개정 방식 바람직
이번 대책은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완 입법이 지지부진한 탓에 나온 것이다. 여야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가 이뤄졌는데도 수개월째 탄력근로제 확대 문제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여당은 경사노위 합의대로 탄력근로제 단위기간을 6개월로 확대하자는 것이고, 야당은 산업 현장의 요구를 반영해 단위기간을 1년으로 늘리고, 탄력근로제 개선만으로는 부족하니 선택근로제 등 다른 형태의 유연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처럼 여야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다 보니 법 개정이 늦어지고 있는 것이다. 여야가 보완 입법을 미루면 미룰수록 기업들의 혼란과 불확실성은 더 커진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주 52시간제를 적용받는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65.8%가 아직 준비가 안 돼 있다고 답했다. 

주 52시간 이상을 할 수 있는 사유를 현재 시행규칙에 나와 있는 ‘재난 및 이에 준하는 사고 발생’에서 일시적인 업무량 급증 등 경영상 사유까지 넓히겠다는 건데, 언제든지 경영 쪽이 악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노동계 지적은 일리 있다. 논쟁적인 사안은 특별연장근로 사유 확대다. 정부는 시행규칙 개정만으론 노동자의 건강권 보호 등에 한계가 있으므로 근로기준법 개정 방식이 바람직하다고 국회에 넘겼는데, 이런 방향이 ‘노동시간 단축’이란 근본 취지에 비춰 남용될 우려가 없는지 신중하게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국회는 이런 지적들을 무겁게 새기며 입법 논의를 서두려야만 한다.  장시간 노동에만 의존하는 방식으로 기업이 경쟁력을 갖는 시대는 이제 지났다. 국회 입법과 정부 보완책이 ‘노동시간 단축’이란 큰 틀을 흔드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노동시간 단축’이란 근본 취지를 벗어나면 안된다. 노동자와 정부는 수직관계가 아닌 수평선상에서 진정성 있는 노동정책만이 살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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