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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유의 뚝심으로 ‘잘 사는 농민, 살고 싶은 농촌, 함께하는 농협’을 만듭니다”
“특유의 뚝심으로 ‘잘 사는 농민, 살고 싶은 농촌, 함께하는 농협’을 만듭니다”
  • 정하연
  • 승인 2019.10.28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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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前) 농협중앙회이사·서충주 김병국 조합장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8년, 서충주 농협은 농협중앙회로부터 합병 권고를 받았다. 연체비율이 26%에 달했고 부실도 많아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상태였다. 예수금은 187억, 당기순이익은 1,600만 원 정도에 불과했다.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서도 합병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서충주 농협을 발전시키겠다고 나선 이가 있었다. 바로 조합장에 당선된 지 1주일도 되지 않았던 김병국 조합장이 주인공이다. 그렇게 21년 후인 지금. 2018년 예수금은 1,300억 원으로 6배가 늘었고 당기 순이익은 6억 원으로 35배로 불었다. 지금은 서충주 농협은 ‘충북에서 가장 잘 나가는 농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 후로 그는 ‘뚝심의 김병국’이라고 불리기 시작했다. 무투표 당선으로 총 5선을 역임했으며 농협중앙회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이번 6선에는 도전하지 않기로 했다. 보다 큰 그림 속에서 ‘영원한 농협맨’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전 농협중앙회 이사·서충주 전 조합장을 만나 그간 서충주 농협을 발전시켜왔던 그 눈물 나는 스토리를 들어봤다.
 
농촌형 조합의 새로운 비전 제시
“합병권고가 내려오니까 정말로 막막했습니다. 이제 겨우 조합장에 당선된 지 1주일 밖에 되지 않은 상황인데다가, 우리 농민들의 삶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다 보니 도저히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말로만 노력하자, 화합하자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솔선수범을 보여야할 때였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들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는 저의 가장 친한 친구이자 연체자 2명의 재산을 다들 깜짝 놀랐죠. 지역 사회에서 친구를 그렇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만약 제가 친구를 배제하고 다른 농민들의 재산을 경매했다면 사람들은 저의 말을 따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조합원, 농협직원들의 마음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결국 오늘날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전(前) 농협중앙회이사·서충주 김병국 조합장이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사진촬영에 협조하고 있다. (사진촬영=정하연 기자)
전(前) 농협중앙회이사·서충주 김병국 조합장이 근엄한 모습으로 앉아 사진촬영에 협조하고 있다. (사진촬영=정하연 기자)
 
김병국 전 조합장은 처음에는 순수하게 농업인의 삶을 걷고 싶었다고 한다. 농고에 진학하면서 자신의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 사과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내가 농사를 지어보면 잘 된 것 같아’라는 어린 마음에 농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차라리 직접 농사를 짓는 것보다는 농협에 입사해 농민들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이 훨씬 더 농민들에게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에 농협에 입사했다. 그 후 20년 농협의 직원으로, 21년을 농협 조합장으로 일해 왔다.
 
1998년 당시 첫 조합장이 되고 겪어야만 했던 열악했던 상황은 그의 왼쪽 팔에 나 있는 깊은 상처가 말해주고 있다. 경매로 재산을 잃게 된 한 조합원이 칼을 들고 조합장실을 찾았던 것. 그야말로 ‘칼부림’이 난 것이다. 하지만 김병국 전 조합장은 오히려 그를 위해 탄원서를 썼다. 아마도 자신이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도 그렇게 했을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아마도 그때의 우여곡절이 없었다면, 합병이 이뤄지고 ‘서충주농협’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서충주 농협은 ‘신용사업에 강한 농촌형 조합’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는 종합에서 하는 신용사업과 경제 사업이 꾸준히 동시에 성장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합원 고객의 니즈에 맞는 상품을 제공하고 고객의 자산을 내 자산처럼 관리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달래강 청정쌀 (사진=서충주 농협)
달래강 청정쌀 (사진=서충주 농협)
 
“그간 저희는 경작지 감소 등 급변하는 환경변화와 쌀 소비패턴의 변화에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친환경 쌀인 ‘달래강 청정쌀’을 신사업으로 추진해 답을 찾고자 했습니다. 품종선택부터 생산, 가공, 판매에 이르는 벨류 체인을 수직계열화해 도시의 소비자가 찾아오는 최고의 브랜드 쌀로 거듭나도록 노력했습니다. 또 관내 120여 농가가 왕우렁이 농법으로 재배한 유기농 쌀은 학교급식, 인천공항 구내식당 등으로 판매처가 확대되고 있다. 그로 인해 농민조합원의 실익 증대뿐만 아니라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신용사업 기반이 취약한 농촌형 조합들은 차별화된 신용-경제사업모델을 개발해 작지만 강한 조합으로 거듭나야만 활로를 모색할 수 있습니다.”
 
더 큰 꿈을 위한 비상
주변에서는 김병국 전 조합장을 ‘일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직장인으로서 일에 충실하는 것으로 충분할 텐데 그렇게 미친 듯이 일을 할 필요가 있었을까? 그는 농협 입사 초기 농촌의 현실과 자신의 사명감을 깨닫는 충격적인 장면을 목도했다. 어느 해 4월, 하우스에서 토마토 농사를 짓고 밖으로 나오는 노부부를 보게 됐다고 한다. 아내는 4월 밖에 되지 않았음에도 얼굴이 붉게 익어있었고 손은 농사일 때문에 시커멨다. 순간적으로 ‘저런 손으로 지은 밥을 먹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한다. 그 순간 기껏 토마토 1만원을 팔아봐야 위탁상들이 대부분 떼어가고 농민들에게는 3~4천만 원 정도 밖에 지급되지 않는 현실이 오버랩됐다. 그 당시를 생각하면 김병국 전 조합장은 아직도 목이 멘다고 한다. 

“그때 처음으로 느꼈습니다. 농촌의 삶이라는 게 이런 거구나, 아무리 열심히 해도 잘 살지 못하는 것이 우리 농촌의 현실이구나, 라는 것은 느꼈습니다. 그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저 사람들을 위해서 일해야겠다. 저들이 지은 농산물을 천원이라도 더 팔아서 보탬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저 월급을 목적으로 일을 하는 직원, 아니면 절박한 사명감으로 일하는 직원. 누가 더 많은 읽을 하고, 누가 더 성과가 뛰어난지는 말을 하지 않아도 누구나 알 수 있다. 그는 조합장을 할 때에도 ‘직원의 마음’으로 일했다. 가난하고 열악한 농촌의 현실을 바꾸기 위해서 자신 좀 더 뛰는 수밖에 다른 방법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41년간 농협맨으로 살았던 그는 농협과 농업의 면면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런 점에서 그의 머리에는 우리 농협과 국가가 나아가야할 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서충주농협 경제유통사업본부 (사진=서충주농협)
서충주농협 경제유통사업본부 (사진=서충주농협)
 
“농협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농협은 바른 이익을 추구해야 하고, 최선의 가격을 통해서 농민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합니다. 또한 정부와의 협력도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습니다. 도·농 성장격차 확대, 귀농귀촌 문제, 농산물가격 안정, 농산업 6차산업화 등과 같은 농정 현안은 농협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면서도 농협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들입니다. 따라서 이제 농협중앙회는 정부의 사람중심 농정개혁의 핵심인 농가소득 기반 구축, 농촌재생, 농식품산업 혁신, 식품안전 등도 정부와 농협이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농협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김병국 전 조합장지만, 이번 조합장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았다. 5선이나 했으니 이제 후배들에게 길을 열어주어야 할 때도 되었다는 생각 때문이다. 지금은 그간의 농협 생활을 정리하는 자서전을 집필하는 중이다. 다만 이제까지 쌓아온 그의 능력과 경영철학이 너무도 아깝다고 말하는 주변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그는 앞으로도 농업·농촌·농협에 헌신할 수 있는 새로운 길을 찾고자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그의 필생의 꿈은 ‘잘사는 농민, 살기 좋은 농촌’에 모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향후 어떤 방식으로든 그가 농협을 통해서 더 큰 비상을 하고, 자신의 꿈을 펼치는 날을 기대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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