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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60년도
추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 우리들은 가끔 과거가 그립습니다. For 1960년도
  • 이가영
  • 승인 2019.03.16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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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론 우리들은 추억에 잠기면서 그땐 그렇게 지냈지. 라고 말할 때가 있다. 각박한 현대보다 과거가 좋았다, 또는 그 시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들 때도 있다. 지금은 없지만 옛날엔 있던 그런 고리짝 이야기. 지금은 1960년대의 추억을 꺼내볼 시간. 1960년~1969년 이 시대는 대한민국엔 제1공화국의 시작과 끝 그리고 제2~제3공화국의 초창기 양쪽 모두 커다란 상처를 입은 6.25전쟁(한국전쟁)의 휴전 후 약 8년이 지난 1960년. 기나긴 냉전과 함께 이곳에선 많은 역사와 추억이 쌓여갔다.
 
1960년대는 베이비 붐 세대
1950년대 중-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 좀 더 길게 보면 1970년대까지를 소위 베이비 붐 세대라 부른다. 당시 출산율은 역대 세대를 웃돌았으며 현재에 와선 이런 베이비 붐 세대가 필요하다 하겠지만, 당시 제1공화국 시절엔 이러한 가족계획에 대해선 큰 터치는 없었으나, 1960년도부턴 가족계획이 펼쳐지며 피임 및 아이 낳는 걸 제한하는 등 정책이 펼쳐졌으나 이 시대의 가족계획은 펼쳐졌어도 인구수 변화는 미미한 정도. 차후 이 산아제한정책(가족계획)으로 인해 현재의 저출산 문제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자리 잡았다. 물론 현대사회의 개인주의적 성향과 핵가족 구성의 일상화, 혼자서 살아도 문제가 없는 환경과 대가족이 살기엔 막막한 경제현실이 가로막고 있어 제 아무리 정부 측에서도 다산가족에게 지원을 한다 해도 이는 현실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기 때문.
 
1960년대의 경제
경공업중심의 경제5개년 계획의 1,2차 진행과 수출산업의 육성 위주로 진행되었으며, 가장 빠른 경제성장과 함께 빈곤의 악순환이 이어지던 시기로 표현할 수 있다. 경제5개년 계획 중 제1차,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진행되는 과정으로, 이 시기엔 우리나라 최초로 우선적으로 발전시켜야할 산업을 선별하고 이를 먼저 발전시킨 후 나머지 산업을 발전시키는 불균형 성장론이 채택되었으며 주로 에너지, 자재 개발을 최우선 순위로 채택되었다. 다만 1,2차 계획의 중심인 에너지와 자재개발보단 경공업으로 제작되는 제품 수출이 빛을 발하며 우리나라는 본래의 계획보다 높은 경제성장을 할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고, 지금까지도 많이 이용하는 고속도로중 하나인 경인고속도로가 1960년대의 끝에 완공되었다. 개통식 당일 아폴로11호가 달에 착륙했다는 소식이 전 세계적으로 이목을 끌었기에 아쉽게도 이 개통식에 대한 이야기는 잊혀졌다. 경제적으로 발전과는 다르게 빈곤의 악순환이 지속되었던 만큼 하루하루를 괴롭게 살아야만 했었다.
 
패티김 히트곡 모음 3집
패티김 히트곡 모음 3집
 
1960년대의 문화: 음악
음악 문화로는 트로트가 완성되고 스탠다드 팝과 가곡 위주 장르를 부르던 가수들이 활약하던 시기이자 한국가요계의 시작점으로 불린다. 대표적 가수로는 패티김(김혜자)과 최희준, 현미, 윤복희, 신중현 등 미8군 공연을 하던 이들이 주를 이루었다. 이후 조영남, 김정수, 송대관, 현철 등 트로트 가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특히 송대관과 현철은 태진아, 설운도와 함께 트로트 4대 천왕으로 꼽힌다.
 
1960년대의 문화: 만화와 애니메이션
만화 산업은 크게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진 못했다.
1960년대는 현재의 대한민국 만화산업의 정체를 만들어낸 가장 큰 이유이자, 만악의 근원으로 꼽는 만화 검열제도가 진행되었다. 이 검열제도는 1997년도에 마무리는 되었으나 청소년 유해물매체로서 형태는 남아있어 완전한 마무리라 보기엔 어렵다.
 
박기정 작가의 흰구름 검은구름
박기정 작가의 흰구름 검은구름
 
특히 이 시기의 만화들은 자유로운 창작은 금지, 분량에 대한 제한이 있었던 시기도 있었으며, 주로 '건전한'어린이 명랑만화와, 스포츠 만화 등이 주였다. 물론 이 시기에도 나오는 명작들은 많았지만 질은 심각할 정도로 떨어졌다는 만화계의 입장이다. 이 문제는 합동출판사의 독점체제 또한 한몫했으며 시장적으로는 성장했지만 전체적인 만화의 질이 떨어지는데도 일조했다.
 
쾌남 홍길동(1967) 포스터
쾌남 홍길동(1967) 포스터
 

애니메이션은 광고와 로고송의 역사와 함께 하며 한국 애니메이션의 태동기.
당시 한국 애니메이션은 광고용 애니메이션으로 시작한다. 이때의 한국 애니메이션은 약2~3분정도 되는 쇼트 애니. 60년대 초기엔 동화를 모티브로 한 미국의 극장 애니메이션들이 수입되고 상영을 통해 관객들을 매료한다. 이를 계기로 선진국 애니메이션에 자극을 받아 국내 만화업계 종사자들은 독자적으로 상업 만화영화를 제작하자는 시작점이 된다. 첫 장편 애니메이션으로 1967년에 나온 홍길동(원작: 풍운아 홍길동)은 당시 제작과정에서도 셀 작업용 전용물감 없이 포스터컬러로 작업을 해야만 하고, 촬영 전에 그림을 다시 그려야 하는 그야말로 지금으로선 생각할 수 없는 열약한 환경과 재료로 작업을 해야 하는 과정 속에서 만들어졌다. 애니메이션 자체는 흥행성공을 거뒀지만, 돈 버는 사람 따로 망한 사람이 따로 란 결과를 낳아버려 시작점은 최악이란 평. 홍길동 이후 애니메이션 제작은 조금씩 활기를 띄며 대중문화의 한 영역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당시 기초적 기술 축적의 미흡성과 상업적 흥행에 집착한 나머지 수준미달의 작품만 대량생산되며 한국의 애니메이션은 미국,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참패하고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철완아톰(우주소년 아톰)
철완아톰(우주소년 아톰)
 
같은 시대 일본에는 철완 아톰(국내명: 우주소년 아톰)과 황금박쥐가 인기를 끌고 있었다. 특히 황금박쥐에 대해선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가 하나 있는데 본래 황금박쥐는 한일기본조약을 배경으로 문화교류차원(정확히는 기술을 전수받기 위해서)에서 일본의 애니메이션 제작사와 우리나라의 동양방송과의 한일합작이었다.
 
1960년대의 문화: 영화, 음식
이와 반대로 영화산업은 황금기를 이뤘으며 이 시기에 나온 가족 멜로란 장르와 시대적 사상을 처참하게 드러낸 이데올로기 영화들과 전쟁영화들이 주를 이뤘다. 이 시기에 가장 손꼽히는 영화들은 오발탄, 로맨스 빠빠, 하녀(김기영 감독 1960년). 특히 하녀는 2010년도에도 리메이크되어 상영되었으나 원작에 비해선 졸작이란 평이 있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다.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김기영 감독의 하녀(1960)
 
전쟁영화의 경우 헐리우드의 전쟁영화에 사용되는 소품보다 리얼하다는 평인데 이 시대 전쟁영화 촬영에 사용된 소품이나 전투신의 수준은 1960년대의 시선으로 바라보면 매우 훌륭하며 당시의 헐리우드 영화와도 비견될 정도였다. 실제로 당시 촬영에 사용되었던 소품들은 실제 군용장비와 실제 폭탄과 탄약 등을 총동원했기 때문. 그만큼 리얼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 전투장비로 사용해 촬영된 만큼 배우들 역시 거의 목숨을 걸고 촬영할 수밖에 없었다. 1960년대에 촬영 및 제작된 전쟁영화들은 대다수 6.25전쟁을 소재로 되었으며 그 만큼 한국군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대중적인 소재로는 신파류 대표적으로 꼽으면 미워도 다시 한번이 있다.
 
1960년대에도 패스트푸드는 있었으나 주로 라면이나 분식, 혼식 식사문화가 장려되었다. 햄버거나 치킨을 판매하는 패스트 푸드점은 1960년대 이후인 1970년대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때론 그 때의 그리움을 떠올리는 소중한 추억
현대에 와선 편의성이 많아진 만큼 그 시대에 비해 불편함은 없지만 그 시대만의 향수나 그리움은 남아있다. 그 시기엔 고급품인 티비가 있는 집 또는 만화방이나 구멍가게를 방문해 티비를 보거나 다양한 만화책을 보고 영상을 보던 시절. 쥐가 주식인 쌀을 갉아먹어치우는 탓에 쥐를 잡는 운동이 활성화 되고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만두, 김밥, 라면과 같은 분식이 유행하기 시작하는 시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술래잡기 등 활동적이고 밖에서도 놀 수 있는 놀이들을 하며 즐겁게 보내던 어린 시절. 작은 선물에도 기뻐하고 지금에 와선 흔하게 먹을 수 있는 과일이 매우 귀하던 그 시절.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고, 내일보다 오늘만을 외치던 그 때. 소소하고 작은 행복과 슬프지만 잊을 수 없는 그 시간들은 지금에 와선 추억으로 간간히 떠올립니다.
 
<1970년대의 시간으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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