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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하나라는 것을 몰라서 고통이 옵니다”
“세상이 하나라는 것을 몰라서 고통이 옵니다”
  • 정희
  • 승인 2018.12.1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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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 은적사 석초 스님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꽃잎은 떨어져 거름이 되고 거름은 땅속에서 뿌리와 줄기를 타고 올라와 꽃잎이 됩니다. 우리의 인식은 피어있는 꽃은 예쁘고 깨끗하고 거름은 추하고 더럽다고 합니다. 꽃과 거름은 스스로 깨끗하고, 더럽고 예쁘고 추하다고 한 적이 없는데 말입니다.” (석초 스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中)

 

하나가 되지 못해서 고통이 온다

고통은 어디에서 올까. 우리는 자신의 고통이 실체적 결핍에서 온다고 생각하지만 그 연원을 살펴보면 실상 근본은 허상이다. 집착하는 것들의 끝에 가 닿으면 무(無)가 보이고 형체도 실체도 없는 우리의 욕망만을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그래서 불교는 탄생하는 것부터 이미 고통의 시작이며 모든 것이 인과를 따르지만 그럼에도 공(空)과 같다고 말한다. 마치 작은 먼지들이 일어나 일순 형상을 갖춰 나와 같은 모습을 빚은 듯이 무언가 형성돼 있지만 실상 그 속은 비어 있는 것이다.
 
은적사 주지 석초 스님은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 모두 “하나가 되지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말한다. 기독교에서 하나님과 이슬람의 알라는 이름을 다르게 붙인 것일 뿐 근본적으로는 하나로 통해 있다. 신들이 그런 것처럼 자연과 인간도 그렇다. “영수 엄마든 철수 엄마든 순이 엄마든 결국에는 다 엄마”라는 것이다. 석초 스님은 근본적으로 모두가 하나라는 사실을 안다면 고(苦)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한다. 즉 나를 버리고 우리가 되면 나와 너라는 고통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이다.
 
“세상이 하나라는 것을 몰라서 고(苦)가 오는 겁니다. 우리가 믿는 신들도 이름이 다를 뿐 사실은 다 같은 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만공스님도 세계일화(世界一花)라는 말을 했습니다. 세계는 한 송이 꽃이라는 말입니다. 모두가 하나인 줄 알면 괴로울 것도 없지요.”
 
세상일에 관심이 없어 출가를 했다는 은적사 주지 석초 스님은 생활 속에서 불도를 쌓는 일에 집중하다보니 세상 하나하나를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가만히 생각하다보니까 만물이 저 나름대로 이치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음미하게 됐다. 관심은 곧 애정이 되고 애정은 다시 공감이 되어 세상 여러 일들이 나름으로 이해가 되고 애틋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을 글로 쓰다 보니 일기 같은 편지 같은 시 같은 책이 됐다. 스님의 글이라 해서 종교적 교리를 전개하지는 않는다. 그저 생각해 본 기록과 살아본 기억이 저절로 담겨졌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까’는 누군가를 친근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닮았다.
 
“남이 알아주기를 바라는 것도 고(苦)를 만들기도 합니다. 혹시 못 알아 줄 수도 있으니까요! 믿고 얘기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가 되어서, 기대했던 것들이 무어지는 순간 도리어 고(苦)가 되기도 하니까요. 살다보면 좋은 일도 있지만 좋지 않은 일도 있으니까요. 그렇다고 섭섭한 일을 피한다고 무조건 피해지나요? 한치 앞을 모르는 게 인생이니까요!” (석초 스님,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中)
 
차분히 다독이고 조근히 말을 거는 듯한 석초 스님의 글을 읽다보면 저절로 마음이 평온해진다. 수많은 불자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이끌어야 하는 주지의 생활 덕에 글 속에는 다양한 인연과 이야깃거리도 풍부하게 담겼다. 그런데 이들의 이야기에 너와 나가 없다. 책 속의 일화에 등장하는 불자들이 모두 우리의 모습 같아 보인다. 그렇게 자기의 세계 안에서 석초 스님은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 평온을 이루고 책을 읽는 우리가 가만히 생각하도록 이끈다.
 

두 번 출가해 스님 되다

출가의 계기는 현불사에서 생긴 일 때문이다. 1989년 군 생활을 하던 석초 스님은 어머니와 함께 현불사를 찾았다. 그런데 현불사 법우 스님은 석초 스님을 보자마자 다짜고짜 “자네는 중이니 출가를 하라”고 권유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불자였기 때문에 스님이 되는 것에 거부감은 없었다. 무엇보다 법우 스님의 혜안에 마음이 움직였다고 한다. 심성이 좋고 바깥에서 살기에는 여리니 출가를 하라는 말에 어머니도 그도 수긍이 갔다. 결국 군대를 제대하고 곧바로 절에 들어가게 됐다. 하지만 생각과 다른 절 생활에 열흘 만에 사회로 돌아왔다. 다시 출가를 결심한 것은 그가 27살이던 1995년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보니 관심 가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특별히 방황을 한 것도 세상에 환멸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자신이라는 사람이 복잡한 세상사에 마음을 두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게 다시 출가를 하게 됐고 24년 동안 현불사, 통도사, 법주사, 불주사를 거쳐 은적사 주지 자리에 앉게 됐다.
 
애초 천성이 맑은데 절 생활 20년이 넘으니 하는 말도 행동도 순진무구한 소년이 됐다. 특히 그가 쓰는 글은 불자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았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를 출판하게 된 계기도 사람들의 호응 덕이었다. 출판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도 없이 수련이라고 생각하고 온라인에 올린 글들이 여러 불자들에게 읽혔다. 그중 시를 쓰는 한 불자가 어느 날 올리는 글들을 모아 책을 내라고 수백만원을 덜컥 보내줬다고 한다. 그 소식이 전해지자 여러 곳에서 더 많은 돈이 모였다. 계속해서 돈이 모이니 거절할 수도 없었다. 차라리 책을 내고 수익금을 좋은 일에 쓰자고 마음먹었다. 좋은 마음이 담기니 출판 과정도 부침 없이 저절로 지나갔다. 현재는 지인들 위주로 먼저 책을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책을 나눠 주면서 석초 스님은 앞장 여백에 자신이 좋아하는 문구를 적어 주고 있다. ‘일어설 줄 안다면 넘어지는 것도 두렵지 않다’라는 문장이다. 처음 출가를 권유 받았을 때 은사는 그에게 바깥에 살기에는 여리다고 걱정했다. 하지만 그의 짧고 분명한 문장에서는 오히려 세상 풍파에 휩쓸리지 않는 힘이 느껴진다. 단단하고 끈질기라 해서 석초(石草)라 불명을 지었다면 그는 이미 자신을 이루었다고 봐도 좋을 듯하다. 그래서 입말로 쓴 그의 에세이는 단순한 에세이로가 아니라 숱한 불자들에게 가르침으로 읽히진 않을까. 마지막으로 두려움에 대해 물어보자 석초 스님은 그저 내려놓으라 답했다.
 
“우리는 보이는 것은 무서워하지 않습니다. 밤길을 걸을 때도 보이는 곳까지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볼 수 없는 뒤가 무서운 겁니다. 사람들은 몰라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하지만 아는 것도 진정 아는 것은 아니니 모르는 것마저 내려놓으면 어떨까요. 부처님 가르침대로 모든 게 무상하고 무아임을 깨우치면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후회는 짧게 결과는 인과응보에 그렇게 두려움의 번뇌를 벗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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