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이탈리아편 - 함영덕 작가
[연재]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이탈리아편 - 함영덕 작가
  • 시사뉴스매거진
  • 승인 2018.11.08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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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편

트라야누스황제의 기념 원주와 로마포럼

엠마누엘레기념관 우측 도로를 건너 가로수를 건너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두 줄로 늘어선 원주 기둥과 우뚝 솟은 트라야누스황제 기념원주가 솟아있다. 트라야누스황제의 공회장에 서 있는 이 원주는 113년 현재의 루마니아지방인 다키아정벌을 기념하기 위해 세웠다. 원주의 높이는 28.77m로 이 공회장을 세우기 위하여 깎아버린 언덕의 높이와 같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들의 건축가운데 가장 특이한 형태로, 아래에서 위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스물 세 바퀴를 돌아 오르는 긴 나선형 원주로 총 길이 200m에 둘러진 2500여명의 인물 부조들이 새겨져 있다. 다키아전쟁의 상황과 로마인들과 다키아인들의 당시의 풍습과 상황들을 생생하게 묘사해 놓았다.

베네치아광장에서 콜로세움을 향해 황제들의 공회장을 걷노라면 아우구스투스황제 이후 고대 로마제국의 폐허가 된 유적들이 길 양편으로 흩어져있는 것을 보게 된다. 지상은 보통 500년 이상의 건축물들이고 지하의 유적들은 기원전 4세기에서 비잔틴 시대인 6세기까지 천년 역사의 잔해를 보여주고 있다.

로마인들이 건설한 도시의 중심에는 반드시 포럼 즉 공회장이 건설되었다. 포럼(Forum)은 로마시대의 도시 광장을 일컫던 것으로 시민들이 모여서 자유롭게 연설·토론하는 장소였는데, 오늘날의 포럼도 자유토론에 가까운 성격을 가지고 있다. 오늘날 학술용어로 자주 쓰는 포럼(Forum)이 여기서 유래됐었다.

귀족들은 아트리움과 정원, 수도시설은 갖춘 도무스(domus)'라는 저택에서 살았다. 인구증가와 주택난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층 공동주택인 인술라(insula)에 살았다. 1층은 주로 상점으로 이용되었고 2층은 형편이 다소 나은 사람들이 거주했다. 고층으로 올라갈수록 가난한 사람들이 살았다. 부유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집안에는 화장실이나 주방도 변변히 갖추지 못했다. 한꺼번에 1600명이 동시에 사용할 수 있는 공동목욕장과 5만 명이 넘는 사람이 입장할 수 있는 원형경기장,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거대한 상수도 시설, 여러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광장과 도서관 등이 만들어졌다. 이런 시설들은 로마인이면 누구나 즐겨 사용했고 황제나 귀족도 예외는 아니었다.

로마의 공화정시대는 시저가 암살된 기원전 44년까지 지속되었다. 초기 제정시대는 285년에 후기 제정시대는 476년 서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끝나고 이후 공화정은 역사에 묻혔다. 2세기 당시 로마제국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명을 꽃 피운 땅이었다. 로마의 위대함은 정복의 속도나 영토의 넓이 때문만은 아니다. 그들은 점령지에 길을 내고 법과 질서에 의해 지배하고 도시를 아름답고 질서 있게 계획하였다.

 

황제들의 개선문과 콜로세움

콜로세움으로 가까이 다가가면 서기 70년 예루살렘정벌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티투스황제의 개선문이 나타난다. 황제가 사망한 후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이 서기 81년에 세웠다. 개선문 내벽에는 예루살렘신전의 보물들을 운반해가는 모습과 유대인 포로들을 노예로 끌고 오는 모습, 개선하는 티투스의 모습이 부조로 표현되어 있다. 또한 서기 203년 원로원과 로마시민들이 파르티아와 아라비아, 아시리아 등지에서 있었던 전투에서 승리한 셉티미우스 세베루스황제와 그의 아들 카라칼라와 제타에게 헌정한 개선문 상단에는 빼곡한 라틴어 기념비문이 적혀있다.

콘스탄티누스는 그동안 여러 개의 분파로 나뉘어져 있던 기독교계에 교리를 통일해 주기를 요청했다. 서기 325년 니케아공의회를 소집하여 성부, 성자, 성신이 일치한다는 삼위일체설을 확립하고 현재의 기독교로 탄생하게 된다. 그 이전에는 각 지역의 종파에 따라 다양한 교리 해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여정의 쉼터 트레비분수

로마를 떠나야 할 시간이 가까이 다가오고 있다. 더 이상 머무를 시간이 없었다. 지도를 보며 낯선 이에게 길을 묻고 도시의 구석을 헤매는 일도 오늘로써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대전차경기장 우측을 돌면 산타 마리아 인 코스메딘 성당의 입구에 진실의 입이 있다. 뻥 뚫린 두 눈과 헝클어진 머리와 수염으로 얼굴을 덮은 강의 신 플라비우스의 얼굴이 나타난다. 전설에 의하면 진실의 입에 손을 넣고 거짓말을 하면 풀라비우스가 손을 삼켜 버렸다고 한다. 성당 입구에 늘어선 방문객들은 저마다 한 번씩 플라비우스의 입에다 손을 집어넣어보고 즐거워했다.

베네치아광장에서 트레비분수까지는 차 한 잔 마실 거리다. 좁은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면 도심 한가운데 아름다운 분수가 시원스레 쏟아지는 광장을 만나게 된다. 분수 주변에는 사람들이 몰려있어 앉을 자리조차 찾기 어렵다.

르네상스양식의 트레비분수는 폴리궁의 한쪽벽면을 장식하는 조각들로 이루어져있다. 조각들 중앙에는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바다의 신 트리톤이 이끄는 조개 모양의 마차를 타고 질주하는 역동적인 조각상이 매우 인상적이다. 말 앞에는 맑은 샘물이 솟아 작은 분수대를 만들고 대리석 분수대 위에는 여행객들이 쉼터에 앉아 휴식을 취하고 있다. 도심 한복판에 맑은 샘물이 솟아오르는 것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는 기분이다.

처녀의 수로가 로마에 다다르는 지점은 세 길이 마주치는 곳이라‘3’을 뜻하는 트레(tre)을 뜻하는 비움(vium)이 합성되어 트레비움(trevium)으로 불려지다가 트레비로 바뀌었다. 트레비분수는 로마를 대표하는 후기 바로크의 걸작품으로 로마를 상징하는 기념비 중에 하나다.

이스탄불에서 비잔틴과 이슬람 문화의 진수를 맛보았고 그리스에서는 고대 헬레니즘의 본류를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스에서 시작된 발칸반도 여행과 베네치아에서 시작된 이탈리아 답사는 로마에서 이번 실크로드 대장정의 모든 여정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로마의 곳곳을 다 살펴보지 못했지만 로마의 장엄한 향취를 내 마음 속에 고이 간직하고 마지막 일정을 마무리하게 되었다.

여행은 자신의 영혼을 살찌우고 더 자유스럽게 만드는 열린 창이다. 지역의 기후풍토와 자연경관 그리고 관습과 그들의 생활문화를 이해할 때 우리는 비로소 옳고 그름의 이분법적 대립의 사고에서 벗어나 세상의 다름을 인정하게 된다. 그 다름이야 말로 분열과 갈등을 치유하고 세상을 풍요롭고 아름답게 한다. 다양성이 풍부한 사회는 활력이 넘치고 창조적 에너지가 솟구치는 사회다. 세계는 이미 지식정보화시대를 지나 창의시대에 접어들었다. 창의시대는 단순히 정보를 소유하는 것을 넘어 정보와 지식을 전과 다른 새로운 것으로 재조합·창조하는 감성이 풍부한 우뇌형 사고가 지배하는 사회다. 감성력을 키우는데는 여행만한 것이 없다. 여행을 통하여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하고 즐길 때 우리의 창조적 감성력의 스페트럼은 훨씬 더 넓어질 것이고 우리의 삶도 훨씬 윤택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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