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한 인간의 위대한 도약, ‘퍼스트맨’
[영화]한 인간의 위대한 도약, ‘퍼스트맨’
  • 전인수
  • 승인 2018.11.08 1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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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데이미언 셔젤

출연 라이언 고슬링, 클레어 포이, 제이슨 클락, 카일 챈들러 등

1969721일 아폴로 11호가 달 착륙에 성공했다. 모선과 분리된 달 착륙선에 타고 있던 우주비행사는 첫 발을 내딛고서 한 인간에게는 작은 한 걸음이지만, 인류에게는 위대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그 인류는 곧 달 표면에 성조기를 꽂았다. 우주개발의 주요 타이틀을 냉전 중인 소련에게 빼앗겼던 미국에게는 완벽한 승리의 날이었다. 미국이 달을 개척하는 장면은 전 세계에 생중계 됐고 5억 명 이상이 이를 지켜봤다.

 

당시 아폴로 11호에 타고 있던 사람은 닐 암스트롱이었다. 전투기 비행사로 한국전쟁에도 참전했던 그는 저공비행을 하다 추락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일을 겪기도 했다. 군 제대 후에는 테스트 파일럿으로 활약해 200여 종의 항공기를 조종하며 수차례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 소속 기관이 NASA로 출범하자 달 착륙을 위한 우주선 랑데부 및 도킹 실험을 시도했던 제미니 프로젝트에 참가했으며 아폴로 11호에 이르러 결국 달 착륙을 성공시킨다. 아폴로 11호는 냉전 시기 소련과의 우주개발 승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며 동시에 미국이 세계 패권을 장악했던 영광의 시기를 상징하는 하나의 아이콘이다. 달 탐사 프로젝트의 첫 주인공이었던 닐 암스트롱 역시 마찬가지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영화 퍼스트맨는 닐 암스트롱을 다룬다. 다만 역사의 상징이었던 닐 암스트롱은 영화 퍼스트맨에서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감독은 달에 첫 발을 내딛은 최초의 인간의 탁월한 능력 보다는 실제 딸을 잃은 아픔이 있는 닐 암스트롱 개인의 영역에 집중했다. 그래서 영화 전개 내내 드러나는 정서는 영웅주의적 성취가 아닌 상실의 정서다. 제미니 프로젝트에서부터 아폴로 프로젝트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닐 암스트롱의 행적을 뒤쫓는다. 하지만 영화에서 보여주는 그는 프로젝트를 위해 주도적인 역할을 하거나 기발한 아이디어를 통해 계획을 성공시키는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암스트롱은 무기력하고 불안하며 지쳐있다. 잦은 사고와 동료들의 죽음 그리고 당시의 부족한 기술이 공포스러운 것은 죽음의 위협 때문이 아니라 딸을 잃은 상실감을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다.

퍼스트맨의 서사는 크게 두 갈래로 진행된다. 달 탐사 프로젝트에 참가해 역할을 수행하며 점차 임무에 가까워지는 공적인 영역에서의 일과 딸의 상실이 암스트롱의 일상에 균열을 일으키며 침투하는 사적 영역에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후자는 암스트롱이 달 탐사에 집착하는 내적 동기로 작용하며 두 일은 점차 밀접하게 연관돼 마침내 달 착륙에 성공한 암스트롱의 행동을 통해 동일한 이야기로 묶이게 된다. 이러한 패턴은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이전 작품들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구조다. ‘위플래쉬’(2014), ‘라라랜드’(2016)에서 주인공들은 항상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주체다. 다만 사랑에 대한 감독의 생각은 부정적이다. 이들 영화에 인물들은 모두 사적 영역에서 실패한 일을 공적 영역에 대한 성취로 보상받으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실제로 이들의 욕망은 성취된다. 하지만 성취를 통해 사랑을 보상받을 수 없다는 것을 인물들은 잘 알고 있다. 결국 상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이며 살아가는 내내 상상적으로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인물들은 결국 폭주(위플래쉬)하거나 만족(라라랜드)한다.

퍼스트맨의 암스트롱 역시 유사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들과 달리 이미 가능성은 차단된 상태다. 그러므로 암스트롱은 감독의 전작들에 등장한 인물들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들이 이미 상실하고 난 후에 대한 이야기이다. 2살 때 뇌종양을 앓다 죽은 딸아이의 상실감을 극복하기 위해 주인공은 달 탐사 프로젝트에 집착한다. 우주선이 중심축을 잃고 회전하는 롤커플링 상황을 대비한 제미니 프로젝트 훈련에서 그는 한계 상황을 맞았을 때 딸과의 기억을 떠올린다. 폭발 사고로 죽음을 맞게 된 동료의 장례식장에서도 그의 눈에는 딸아이의 환영이 비친다. 프로젝트의 위기 상황은 모두 딸의 부재와 상응한다. 기술의 미숙함과 당시 나사의 개발 환경의 불확실함은 그대로 자기 자신의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달에 가닿게 되어야만 혹은 프로젝트가 성공해야만 그의 삶이 지속될 것만 같다.

아폴로 11호가 출발하기 직전 암스트롱은 패닉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테스트를 위한 달 착륙선이 추락하고 부상을 입은 암스트롱은 출발을 앞두고 가족들에게 혼란스러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달 착륙에 실패하면 물리적으로 죽음을 맞을 수 있지만 죽음 후에는 고통이 없다. 오히려 영원히 딸을 잃은 상실감에 사로잡혀 정신적인 죽음의 상태를 이어 가는 것이 가장 두려운 일일 것이다. 그래서 암스트롱은 목숨을 걸고 달로 향한다. 그는 제미니 프로젝트에 지원했을 때 달 탐사가 왜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는 면접관의 질문에 어떤 위치에 있느냐에 따라 보는 관점은 달라진다고 답했다. 이어서 그는 X-15기를 타고 경험한 대기권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대기권은 올라가보면 얇은 막에 불과하지만 밑에서 보면 전부로 보인다는 것이다. 자신의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본다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은유에 다름 아니다.

달에 첫 발을 내딛은 위대한 인류와 딸을 잃은 아버지의 생존기는 퍼스트맨에서 무엇 하나 앞서지 않고 교직된다. 영화 속에서 암스트롱의 명언 중 인류와 한 인간은 동의어가 된다. 마치 상처 입은 한 개인이 살아가기 위해 힘겨운 첫 발을 내딛는 것이 인류 전체의 도약과 같다고 말하는 듯하다. 개인의 극복을 인류가 증명하고 인류의 도약을 개인이 증명하는 것이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의 전작들처럼 퍼스트맨에서도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라라랜드에서 함께 작업한 바 있는 저스틴 허위츠가 음악을 맡아서만은 아니다.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영화의 다양한 요소들을 통해 하나의 리듬을 만들어낸다. 영화 전체가 하나의 음악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위플래쉬가 정체성을 찾는 예술가의 내면의 리듬이었다면 라라랜드는 사랑과 이상, ‘퍼스트맨은 상실을 극복하는 서정적 리듬을 만들어낸다. 특히 딸 캐런의 테마와 달 착륙의 테마가 변주되면서 두 장면의 감정선을 적절하게 이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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