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한 번 별을 꿈꾸다, 베트남 국민가수 미땀(My Tam) 빌보드 TOP10 조력한 조성진 작곡가
다시 한 번 별을 꿈꾸다, 베트남 국민가수 미땀(My Tam) 빌보드 TOP10 조력한 조성진 작곡가
  • 정희
  • 승인 2018.11.08 14: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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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20일 저울 중구 장충체육관은 재한베트남인과 현지에서 방문한 베트남인들의 뜨거운 열기로 가득 찼다. 베트남 국민 가수로 불리는 미땀(My Tam)의 첫 내한 콘서트 미땀 콘서트 인 서울(My Tam CONCERT in SEOUL)’이 열렸기 때문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한국인 관객들도 다수를 차지했다. 미땀이 한국 팬들에게도 알려지게 된 것은 그를 발굴하고 키워낸 조성진 작곡가의 몫이 컸다.

 

베트남 국민가수 미땀
이날 내한공연에는 베트남 현지 팬들도 다수 찾아왔다

미땀의 베트남 현지 인기는 열광적이다. 현지에서는 베트남 디바로 불릴 정도로 모르는 사람이 없다. 국내를 포함해 동남아권에서도 인지도가 높다. 우리나라에서는 미땀을 베트남의 이효리라고 부른다. 미땀의 내한 공연이 결정되자 베트남 현지에서 상당수의 열성팬들이 한국을 찾아왔다. 미땀은 한국 비자 발급으로 입국이 지연되는 베트남 팬들을 위해 애초 915일로 예정된 공연 일정을 늦추기까지 했다. 그의 내한공연은 점점 발전하고 있는 베트남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상징이다.
 
미땀의 가창력은 베트남뿐만 아니라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지난해 12월 발매된 미땀의 9‘My Tam9’은 올해 초 베트남 가수 최초로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TOP10에 진입해 세계적 인기를 증명했다. 그런 그의 현지 활동을 지원하고 다수의 음악을 작곡한 조력자가 바로 조성진 작곡가다. 조성진 작곡가는 국내에서도 인기 가요 제조기로 유명하다. 김완선을 시작으로 젝스키스, 핑클, 코요테, 소찬휘, 이정현, 구피, 야다 등 90년대 조성진 작곡가와 함게 작업한 가수들은 모두 정상을 누렸다. 다수의 정상 가수들과 함께 작업한 경험 덕분에 조성진 작곡가는 베트남 가수 미땀의 가치를 알아볼 수 있었다. 2006년 처음 만났을 때 미땀은 이미 현지에서 인기 가수였다. 그가 미땀과 함께 꾸준하게 작업할 수 있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 때문이다.

 

“2006년 한국 영화사에서 베트남에 진출하려고 미땀을 초청했습니다. 당시 앨범 제작에 제가 프로듀서로 참여하게 됐죠. 우연히 한국 문화에 어려움을 겪는 미땀을 돕게 됐고 그 계기로 인간적 신뢰를 쌓게 됐습니다. 그게 시작이었습니다. 함께 할 수 있게 된 것이 저에게는 영광이었죠.”
 
수준급 가창력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작곡과 프로듀싱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미땀과 함께 작업하게 된 것은 그에게는 행운과도 같았다. 처음 미땀의 현지 음반 작업을 맡았을 때는 적응이 쉽지 않았다. 한국과 다른 베트남 특유의 음악 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이 까다로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한국식으로 작업한 결과물을 처음 베트남에 선보였을 때는 황당해 하는 현지 사람들도 많았다. 미땀과의 작업은 그래서 많은 도움이 됐다. 베트남의 음악적 정서와 현지 전통, 작곡의 방향성에 대해서 미땀과 많은 논의를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베트남의 멜로디를 갖고 오되 음악적 편곡을 한국식으로 바꾸는 방식으로 작업의 방향이 결정됐다. 그와 미땀의 작업 방식이 조금씩 베트남 대중들의 음악 기호에 맞아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둘의 시너지가 극대화됐다. 이후 둘은 2017년까지 5장의 앨범을 함께 작업하게 됐다. 12년 동안 작업을 이어갔고 미땀은 9집을 통해 빌보드 월드 앨범 차트 TOP10에 오르게 됐다. 조성진 작곡가는 독자적 영역을 갖고 있는 베트남 음악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절대 현재에 이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처음 베트남 음악을 들었을 때는 다소 올드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점점 연구하다보니 느린 게 아니라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베트남은 음악의 영역이 생각보다 훨씬 넓은 편입니다. 정서의 스케일이 다른 것이죠. 과거 유럽 식민지를 겪으면서 문화가 융복합 되면서 음악의 기반도 그만큼 넓이를 더한 겁니다. 그걸 이해하고 나서는 자신감을 가지게 됐죠.”
 
미땀의 풍부한 가창력에 조성진의 감각이 결합되면서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기 시작했다. 점차 세계로 확장돼 가는 V팝의 영향력에 미땀이 선두주자가 된 것이다. 한국적 음악이 세계 각지에서 인기를 끌며 팬덤을 형성한 한류의 흐름도 영향을 끼쳤다. 한 베트남 언론은 미땀이 V-Pop의 여왕으로 거듭 날 수 있었던 것은 조성진의 영향력이라고 말하며 “K-POP 한류의 인적 시스템과 문화적 특성을 기반으로 잘 만들어진 케이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가수가 가진 재능과 노력이다.
 
미땀은 음악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깊고 넓은 가수입니다. 작곡부터 마스터링까지 항상 제 옆에 미땀이 있었습니다. 다른 문화에 도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문화적 유전자가 다름에도 제가 베트남 음악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미땀의 노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땀을 통해 다시 유명세를 얻게 됐지만 한때 조성진 작곡가는 우리나라에서 잊힌 존재가 되기도 했다. 2007년부터는 한국에서의 활동은 완전히 접고 베트남에서의 음악에 집중했다. 한국 음악이 시도해 본 적 없는 베트남 음악에 도전하는 것은 그래서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12년의 시간이 묵묵히 지나갔고 그는 32년의 경력을 가진 작곡가가 됐다. 그에게 음악을 하는 이유에 대해 묻자 그의 독특한 이력을 수긍하게 됐다.
 
지금도 음악 할 때 재밌고 행복해요. 표현은 못하겠지만 진짜 재밌어요.”
 
이제 다시 한국에서 활동을 시작할 것이라는 그의 새로운 목표는 방탄소년단 수준의 아이돌을 만드는 것이다. 국내 가요 무대에서 활동하던 그의 음악의 영역이 세계무대인 빌보드로 옮겨간 것이다. 이미 미땀과 함께 빌보드 차트에 오른 경험이 있는 그에게 허황된 일은 아닐 것이다. 앞으로의 그의 활동이 기대되는 것은 그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성공이 곧 새로운 세계적 가수의 등장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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