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강국이 곧 세계적인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아주대학교 김두환 연구교수
“우주 강국이 곧 세계적인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아주대학교 김두환 연구교수
  • 정희
  • 승인 2018.09.28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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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천문 및 우주연구 개발의 오랜 역사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아주대 김두환 연구교수이다. 그는 국립천문대 대장을 역임했으며 국립천문대를 확대개편해서 천문우주과학연구소(현 한국천문연구원)의 설립에 기여하고 초대원장을 역임했다.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원장은 차관급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정지통신위성인 무궁화 1호, 정지기상위성인 천리안 1호의 발사와 국가기상위성센터 설립에도 기여했다. 더불어 과학기술부 산하 우주개발전문위원회 (현 국가우주위원회의 전신)를 설립하는데 기여를 하고 스스로 위원회의 위성체소위원회 위원장을 맡았고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 우주전문위원회 초대 위원장까지 역임했다. 무엇보다 그는 국내 최초로 우주측지관측센터의 VLBI(초장기선간섭계) 개발 및 제작도 주도했다. 그가 살아온 역사가 바로 한국 천문 우주 연구개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최근 2018 공간정보발전 유공 ‘옥조근정훈장’을 수훈했다. 그의 오랜 헌신에 비하면 다소 늦은 감도 없지 않다. 김두환 연구교수를 만난 것은 그의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묻어있는 연구실에서였다.
 
 
부산 앞바다에서 바라본 하늘에 매료
김두환 박사의 서재에는 오래된 과학신문이 켜켜히 쌓여있었다. 다름 아닌 그가 중학교 시절부터 모으기 시작했다는 ‘천문우주과학’ 관련 기사들이였다. 1960년대의 신문스크랩들이니 무려 60년이 다된 ‘고문서’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어쩌면 그의 운명은 이미 어린 시절부터 ‘우주’에 꽂혀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중학교 때 부산 앞바다의 밤하늘을 바라보면서 우주의 신비에 매료되었습니다. 천문학을 공부하고 싶었지만 부모님께서는 무조건 반대하셨습니다. 당시는 6·25 전쟁 직후여서 모두가 어려운 시기였는데 뭔지도 모를 ‘천문학’을 한다니 기가차셨을 것입니다. 물론 그때는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기 때문에 저 역시 내가 왜 천문학을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한 명분이 부족했습니다. 그러나 1959년 10월 한 신문에 ‘달 로켓과 미사일은 전략과 어떻게 관계되나’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이 내용을 스크랩 해놓고 읽고 또 읽으면서 내가 천문학을 공부해도 되겠다는 명분을 찾고 확신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경남고등학교를 거쳐 서울대 천문학과, 일본동경대 대학원 천문학과에서 천체 물리학으로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와도 우리나라의 천문학 연구 시설이며 관련 인프라는 턱없이 부족했다. 1985년의 인도 방문은 그에게 새로운 열정을 불어넣었다. 당시만 해도 인도는 공항이 더러워서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런 나라가 핵도 개발하고 미사일도 쏠 수 있었으며 위성을 발사할 수 있는 발사체에 대한 기술도 훌륭했다. ‘우리나라도 선진국이 되려면 우주로 가야 한다’는 강한 확신이 들었던 김두환 교수는 그때부터 관련 행정부서들의 공무원들을 만나고 때로는 청화대까지 직접 달려가 설명하면서 관련 기관과 예산의 확보에 전력을 다했다.
 
1986년 김 교수는 천문우주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에 선임되면서 본격적으로 국내 우주산업을 이끌어 나가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전파천문 분야에 대한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지는 것은 물론이고 우주과학연구개발사업이 본격화되었다. 1987년 11월 우주공학연구실이 신설되면서 이곳에서 연구했던 인력들이 1989년 10월 한국기계연구원 부설 항공우주연구소로 독립한 뒤 현재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설립을 주도했다.
 
“당시만 해도 천문우주과학연구소의 직원이 열댓명 밖에 되지 않았고 예산도 12억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그 정도로는 우리나라의 우주 산업을 발전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재원이었습니다. 결국 관련 공무원들을 설득하고 청화대가서 직접 설명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북한과의 냉전이 계속되던 시기였기 때문에 무엇보다 우주망원경을 비롯한 전체적인 우주 산업이 발전이 되어야 북한의 동태도 잘 살필 수 있다고 설득을 했습니다. 그렇게 서서히 발전 하기 시작해 지금은 두 기관의 인원이 600명에 예산만 6천억으로 늘었습니다.”
 
 
VLBI 개발에 앞장서 쾌거 이뤄
그가 해왔던 수많은 일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국내에 측지 VLBI 시설을 개발한 것과 현 세종시에 우주측지관측센터를 만든 일이다. 측지 VLBI이란 한마디로 우주를 관측해서 세계측지계에 의거한 우리나라의 좌표계의 ‘기준점’을 정하는 것을 말한다. 2000년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에는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이러한 기준점이 존재하지 않았다. 거기다가 별을 관측하는 안테나 역시 일본에서 빌려다 쓸 정도였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점을 잡는 일 조차 쉽지 않았다. 관련학계에서는 그걸 이해하지를 못해서 사업도 승인이 되지 않고 예산도 배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 각국의 우주측지연구센터에서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24시간 300~400개의 별을 관측하고 그것을 데이터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세계기구가 바로 IVS라는 기구입니다. 여기에서 각국에서 관찰한 데이터를 서로 교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000년대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의 측지VLBI 시설이 없어서 우리는 여기에 가입을 하지도 못한 상태였습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나라도 선진국으로 도약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를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추진해왔습니다.”
 
결국 김 교수가 했던 일은 우리나라의 우주측지관측의 시발점을 만들어 낸 것이나 다름없다. 더불어 그는 세종시에 우주측지관측센터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VLBI을 설치하는 것은 물론 GPS시설을 추가하고 달과 위성에 레이저를 쏘아서 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SLR 시설도 추가했다. 이렇게 3가지의 시설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곳은 미국과 독일, 그리고 우리나라 정도이다. 이로서 우리나라의 우주측지연구를 위한 초석이 닦였다고 할 수 있다. 김 교수가 이토록 우주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던 것은 우주 강국이 곧 세계의 강국이 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그는 우주관련 사업의 중요성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우주과학기술은 첨단기술의 복합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당장 눈에 보이는 특정한 효과를 내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관련산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주왕복선의 발사는 신소재, 반도체, 컴퓨터 등 온갖 첨단기술이 다 동원되는 종합예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과거 해양강국이 세계를 제패했듯이 앞으로는 우주강국이 세계를 지배하는 강국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이러한 우주 강국의 대열에 끼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장하지 못한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밤 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를 꿈꿨던 소년은 이제 한국 천문우주 연구의 거장이자 우주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찾는 대(大)학자가 되었다. 평생 한길을 걸어오며 오늘의 대한민국을 만들어온 그의 수고와 노력에 고개가 숙여지지 않을 수가 없다. 앞으로도 오랜 기간 건강하게 우리나라의 우주 연구에 더욱 매진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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