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바다에서 길을 잃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에 대하여
[칼럼]바다에서 길을 잃다, 넷플릭스의 추천 알고리즘에 대하여
  • 이혜인
  • 승인 2018.09.28 11: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몇 달 전 스마트 TV를 구입했다. IPTV보다도 할 수 있는 게 훨씬 많은데 생각보다 비싸지 않아 구입을 결정했는데, 이게 시작이 될 줄은 몰랐다.
 
스마트 TV는 말 그대로 스마트폰처럼 앱을 설치해 구동시킬 수가 있는데, VOD 스트리밍 서비스인 넷플릭스를 이용하고 있던 나에게 디바이스의 확장은 말 그대로 신세계를 열어줬다. 스마트 TV에서도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으로 이용하는 것보다 비용이 더 들지만, 그 이점은 확실하고 방대하다. 더 말할 것도 없이 나는 주말마다 TV 앞에서 영화 두세 편, 드라마 한 시즌을 거뜬히 해치우는 헤비유저가 됐다.
 
넷플릭스의 장점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추천 알고리즘이다. 넷플릭스가 전세계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발돋움하게 된 데에는 이 알고리즘의 역할이 컸다. 넷플릭스는 인생 전체를 들여도 다 보지 못할 만큼 많은 컨텐츠를 보유하고 있어 초심자라면 길을 잃기 십상이나, 이용자가 접한 적 있는 몇 가지의 콘텐츠에 평가를 매기고 나면 정보를 습득한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이용자가 좋아할 만한 컨텐츠를 추천해준다.
 
이 알고리즘은 넷플릭스에 신작이 입고되면 내부의 콘텐츠 팀이 해당 영화, 드라마, 애니메이션을 일일이 감상하고 작품과 관련된 모든 태그를 입력해서 완성되는 것으로, 이를 통해 알고리즘을 무한정으로 개인화시킬 수 있다. 토드 옐린(Todd Yellin) 넷플릭스 제품 혁신 부사장이 넷플릭스 이용자 경험의 핵심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추천 알고리즘은 넷플릭스가 이용자를 확보하고 유지하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이 완벽하게 개인화된 알고리즘 덕에 이용자는 누워서 손가락 까딱임 몇 번만으로 주말을 순삭(순간삭제)시킬 수 있다.어느 주말에는 넷플릭스의 오리지널 시리즈인 <빨간 머리 앤> 두 시즌을 한꺼번에 끝냈고, 한동안은 무려 8시즌이나 적재되어 있는 미국 드라마 <모던 패밀리>를 따라 잡느라 퇴근 후부터 자기 전까지 모든 시간을 쏟아붓기도 했다. 그런데 이 취향의 바다에서 한참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나 같은 소비자는 어떤 의문의 뭍에 닿게 된다. 이래가지고는 내 취향이란 게 사라지는 것이 아닌가?
 
어렸을 적에는 동네에 비디오 대여점이 많았다. 넷플릭스처럼 방대하지는 않더라도 본 적 없는 다양한 컨텐츠로 가득찬 곳이었다. 하지만 어린 내가 거기서 집으로 가져올 수 있는 비디오란 고작해야 한두 개였기 때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해서골라오곤 했다. 그 비디오들이 항상 재밌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래 취향이라면 보지 않았을 비디오에서도 재밌는 부분을 발견해내고, 어떤 편향 없이 고른 비디오들이 내 취향을 형성시켰다. 취향이란 것은 결국 개발해야 하는 것이다.
 
새 정보값을 쏟아부어야 유지될 수 있다. 하지만 완벽하게 개인화된 알고리즘은 소비의 편향을 불러오고, 이렇게 알고리즘이 습득한 취향은 확장이 불가능하다. 이것은 결국 이용자의 취향이라는 벽 안에 이용자를 가둬버리는 결과를 초래한다. 실제 넷플릭스를 이용하면서 가장 아쉬웠던 점은, 어떤 작품들은 내 메인화면에서 영원히 볼 수 없으리란 사실이었다. 내가 그 작품의 존재를 알고 직접 검색하고 발견하여 시청하지 않는다면 그 작품과는 내 인생에서 만날 일이 없을 것이다.
 
이혜인 자유기고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국회대로 800 진미파라곤 913
  • 대표전화 : 02-780-0990
  • 팩스 : 02-783-2525
  • 청소년보호책임자 : 전인수
  • 법인명 : 종합시사뉴스매거진
  • 제호 : 시사매거진CEO
  • 등록번호 : 영등포, 라 00552
  • 등록일 : 2010-11-19
  • 발행일 : 2011-03-02
  • 발행인 : 최수지
  • 편집인 : 최수지
  • 시사매거진CEO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8 시사매거진CEO. All rights reserved. mail to sisanewszine@naver.com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