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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설비 30여년, 지하철·도로·건물 등 국내 주요 대규모 공사에 화려한 이력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계나 삶 모두”
기계설비 30여년, 지하철·도로·건물 등 국내 주요 대규모 공사에 화려한 이력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게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계나 삶 모두”
  • 정희
  • 승인 2018.07.20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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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설화엔지니어링 남상진 사장

한 사회의 진정한 진전은 내재한 불합리성을 깊이 인식하고 제대로 고쳐나가는 것에 있지 않을까. 그러나 대다수가 모순을 깨닫고 비로소 새로운 근거가 마련되기까지는, 이 모순을 감내하면서 선구적으로 일한 사람들이 쌓은 시간의 축적이 있게 마련이다.

지난 4월 기계설비법이 제정된 후 712일에 있었던 제3회 기계설비의 날은 그런 면에서 의미가 깊다. ‘국토교통부장관상을 표창한 ()설화엔지니어링 남상진 사장에게는 특히 그렇다. 미세먼지 같은 환경악재와 에너지 효율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높아지면서, 이를 제어하는 기계설비 산업분야의 중요성을 국가적 차원에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는 남상진 사장이 30여 년 현장에 종사하면서 항상 통감해 온 문제이기 도하다.

30년 전부터 염두에 있던 기계설비의 독립

기계설비법이 제정되고 기념식도 장관 등 참석자 규모면에서 이전보다 커서 업계 분들이 많이 고무돼 있습니다. 그동안 건축이나 토목의 지배를 받아온 어려운 시절들을 오랫동안 견뎌온 세월이 있기 때문이지요.”

()설화엔지니어링 남상진 사장도 그 중 한사람이다. 그는 1985년 기계설비 분야에 입문해 30년이 훨씬 넘었다. 한 직업이 읽어낼 수 있는 시대적 변화를 오롯이 보아온 시간들이다. 기계설비는 늘 건축의 영역이라고 당연히 간주되던 시절이었다. 대학에는 아예 관련학과가 없고 건축이나 기계전공자들이 관여했다. 80년대 후반부터 경원대와 대전산업대학에서 처음 4년제 기계설비 관련학과가 생겼고, 이후 8개의 전문대에 개설돼 명칭은 조금씩 다르지만 약 10개 대학에서 전문인들을 양성해냈다. 그러나 국가 기간산업 정책 입안자들과 건설현장의 인식은 많이 진전되지 않았다. 그래도 현장에 있던 선배들은 자부심으로 기술향상과 후배 견인에 힘써왔다. 그 오랜 숙원의 결실이 기계설비 제정법 취지에 담겨있다.

안전·환경·에너지 등 현대의 관심과 직결된 분야

기후변화로 말미암은 무자비한 폭염과 시시때때 없는 미세먼지가 계절감각을 잊을 정도로 폭력적인 여름을 보내고 있다. 그럼에도 오늘 당신이 근무하는 빌딩에서 냉방의 혜택을 입었고, 지하철로 이동하는 도중에 탁한 공기의 타격을 받지 않았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기계설비기술에 힘입은 덕택이다. 당신이 거주하는 아파트나 일하는 건물에 에너지 효율이 월등해 경비가 절약된다면 그것 역시 기계설비기술의 덕이다.

요즘 미세먼지가 생활의 질을 좌우하는 주요 요인인데, 지하철은 환경적으로 공기질이 가장 문제되는 곳이고 100% 강제로 환기해야 합니다. 지하공기를 필터링 하는 기계는 미세먼지부터 큰 입자까지 다양해 환기 해주어야 하는 양이 일반 공기질보다 세 배 이상 양이 많습니다. 필터링 기계설비가 관건이지요.”
남상진 사장이 종사해온 분야는 주로 지하철도, 도로터널의 공기질 환경과 방재시스템의 설계와 감리다. 그동안 철도·지하철 설계 80, 대규모 건물 70, 도로터널 환기·방재 설계 42건의 설계 등의 굵직한 일들이 그의 설계기술을 거쳤다.

“1985년의 잠실 롯데월드 국내 설계는 제 첫 임무였어요. 입문하자마자 참여한 대형 프로젝트였고, 18만평의 복합건물이었기 때문에 배울 점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하루하루의 일이 무척 재미있었어요. 신참 엔지니어에게는 좀처럼 접하기 어려운 행운이었습니다.”

수많은 국내 지하철에 본격적으로 기계 냉·난방 공조환기를 시작한 서울지하철 5~8호선 설계, 국내 대심도철도(GTX)의 효시 삼성동탄간 광역급행철도 1구역 설계와 3구역 사업관리시스템 정립, 경전철 우이선·신림선·인천도시철도 2호선 등의 설계 등 전환점이 될 만한 기계설비 기술들에 참여해 온 이력은 남상진 사장이 가진 우수성의 일단이다.

수많은 설계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가는 것이 경전철 중 최초로 지하화한 우이-신설동 경전철입니다. 10여 년 전부터 설계를 해서 2년 전에 완공했다. 지하 경전철은 국내에서 처음이었어요. 의정부 경전철은 일본 오키나와와 같은 형태인데 우여곡절 끝에 개통돼 기억에 깊이 각인돼 있습니다.”

그동안 터널용 방재장치 등 8건의 특허를 획득했고, 감리현장에서 이 특허를 실제적으로 활용한 실적도 12건에 이른다. 오로지 직업적 전력과 기술개발의 결실이다.

건축에 예속된 기계설비하도급의 열악성과 법제정

남상진 사장은 직업적으로 유망한 길을 걸으며 대외적으로 화려한 경력을 쌓아왔지만, 업계는 그렇게 순탄하지 않았다. 그래서 늘 남상진 사장에게는 현장의 불합리가 크게 눈에 띄었다. 요체는 기계설비가 엄연히 독자적으로 중요하게 취급되어야 할 분야임에도, 늘 건축과 토목에 종속돼 있어 종사자들의 권리와 기술발전을 지연시키는 요소로 작용해왔기 때문이다.

기계설비는 건설사에서 먼저 수주를 받으면 그동안의 인맥에 의해 결정됩니다. 법 기준에 기반한 공정한 경쟁이 없는 거지요. 건설사들은 수주를 받으면 일단 관례처럼 전체 금액의 20%를 일반관리비로 제합니다. 그리고 기계설비 금액을 책정해 준 다음 거기에서 또 일반관리비 20%를 뗍니다. 그럼 전체 40%가 그냥 나갑니다. 그리고는 하도급 업체들에 경쟁을 시켜 최저가 입찰을 시킵니다. 하도급 업체는 금액 때문에 공사유지가 어려우니까 재하청을 줍니다. 소규모의 배관공사, 장비설치 업체들에게 나누어주는 식이죠. 결국 소규모업체들로 가면서 기술발전은 기대할 수 없고 자연히 부실공사를 낳을 수밖에 없는 구조였습니다. 게다가 건설사들이 부도가 나면 소규모업체가 선 투입했던 공사비는 날리게 되는 겁니다. 관련법이 없으니 주도권을 가진 영역에서 임의로 정해진 것에 따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었지요. 업계 선배들이 자조적으로 하는 말이 일 년에 단종업체 100곳이 설립됐다 100곳이 날아간다는 이유입니다. 구조상의 비합리성 때문에 2000년대 이후로는 우수한 설비인력이 많이 빠져나갔고 학교에서도 굳이 기계 설비를 권하지 않는 풍토까지 된 겁니다.”

평소 뼈저리게 느껴온 업계의 비애였기 때문에 남상진 사장의 설명은 일사천리였는데, 이후로도 훨씬 길고 자세했다. 적지 않은 토로 끝에 그가 제시하는 해결책은 아주 단순했는데, 그것은 지금까지 지켜지지 않은 것이 이상할 정도의 상식이었다.

관련법이 제대로 제정되어, 공사비가 결정되면 국가에서 정한 비율에 따라 공정별로 산출된 내역에 근거해 분리발주를 하는 겁니다. 그러면 우수한 인력들이 들어올 수 있고 부실공사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점이 지속적으로 드러나면서 지하철이나 철도 등 시설공단이 발주하는 공사는 미리 분리발주를 해오고 있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랄 수 있을까.

서울시 영동대로 지하화사업 참여 계약서 작성

()설화엔지니어링은 지금 서울시의 영동대로 복합환승센터 지하화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9호선 봉은사역 사이에 지하 6층으로 건설되는 국내 최초의 복합환승센터이자 거대한 지하도시가 건설되는 것이다. 이 구간에는 지상물들이 많아 상하수도, 개스관 등을 탐사해서 이설계획까지 만들고 있다고 한다.

영동대로 사업은 서울시에서 분리발주를 하고, 건축과 토목, 전기를 시공할 때 하도급과 재하청을 방지하기 위해 계약서류를 넣도록 하고 있습니다. 실제 설계회사에서 공사를 담당하도록 하게 되는 겁니다.”

기계설비법 제도 정착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단초의 공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공단이나 지자체에서 솔선하고 있으니 차차 민간 영역으로도 확대해나가야 하지 않을까. 법 제정이 빨리 이루어져야 하는 이유 중의 하나는 설비의 내구연한 때문이다.

수도나 변기, 공기정화 장치 등 설비 쪽의 수명은 아무리 길어도 20년 안쪽입니다. 일정한 기술수준으로 설비하지만 배관 내 부식이나 생기거나 막혀 구멍이 좁아집니다. 정기적으로 제거해 주어야 하는데 관련법이 없다보니 시공이후 건물주들이 한번도 점검을 안 하는 겁니다.병원균의 오염원이 되는 거지요.”

많은 건물들에 재설비의 주기가 돌아오기 전에 법적 근거가 필요한 이유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균형 필요

남상진 사장은 기계설비부분이 건축이나 토목에 종속되지 않고 완전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이번 기계설비법 제정안이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 업계 내부에서는 기술적 발전을 꾀함과 동시에, 지난 10여 년간 유입이 어려웠던 우수한 후배들을 양성해 내는 것이 중요한 목표라고 한다.

기계설비 첫 수업시간에 교수님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균형을 말씀하셨어요. 조금만 기울어지면 쓰러진다. 직업뿐 아니라 삶에서도 항상 새기는 말입니다. 균형을 잃지 않는 것.”

꽤 긴 시간을 운전해가는 아침 출근 시간, 차 안에서 홀로 명상하고 정리하는 이 시간이 남상진 사장은 참 좋다고 한다. 그의 균형을 잡아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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