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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이탈리아편-함영덕 작가
[Serial] ‘나를 찾아 떠나는 유라시아 대평원 이탈리아편-함영덕 작가
  • 함영덕
  • 승인 2018.08.02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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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3대 미항 나폴리와 폼페이유적지

로마역에 도착하자 키 작은 한국인 아저씨가 웃으며 다가와 호객하기에 그의 민박집에 숙소를 정했다. 김 아저씨 집에서 연변댁 아주머니가 끓어준 라면과 김치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로마와 나폴리에는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민박집들이 있어 배낭여행객들에게는 퍽 실용적이고 저렴하며 지낼 만하다. 로마시내를 투어하기 전에 먼저 나폴리와 폼페이유적지를 답사하기로 했다. 차창 가에 스쳐가는 풍경들을 보며 2시간 반쯤 달리다보면 베수비우스 화산이 나타난다. 고속도로의 중앙분리대 사이에 유도화가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오른쪽엔 짙푸른 나폴리 해안선이 펼쳐지고 작은 섬 카프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길이 6km 2km에 총면적 10평방킬로미터의 카프리는 2000년 동안 상상과 꿈의 섬으로 불리어왔다. 고대 로마황제 티베리우스는 따뜻한 기후와 맑고 짙푸른 바다의 아름다운 경관을 선호했다. 엘리자베스여왕의 신혼 여행지로 유명한 카프리는 로마황제들의 별장과 할리우드 스타들의 휴양지나 별장지로 선호되고 있다. 짙푸른 바다 저 멀리 1,270m의 베스비우스화산 아래 희미한 해안 언덕이 시야에 들었다. 깎아지른 절벽을 배경으로 그림처럼 들어선 주택들이 나무숲에 싸여 있는 곳이 쏘렌토다. 오른쪽 창가엔 카프리 섬이 떠 있고 뒤쪽으론 둥근 반원형의 나폴리항구가 눈부신 바다를 껴안고 있다. 좁은 언덕길을 올라 아치형 성문을 통과하면 짙푸른 파도가 넘실댄다. 60헥타르의 면적에 펼쳐진 고대 도시의 발굴은 당시의 건축물과 생활도구들이 화산재 속에서 속속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기원후 79824일 이전에는 3만 명의 상인들이 생활하던 활기찬 도시였다. 로마의 옛 달력으로‘9월의 삭일이 되기 아흐레 전에 믿을 수 없을 만큼 커다란 구름모양의 성난 화산이 독가스와 화산재와 뜨거운 화산 자갈과 같은 화산쇄설물火山碎屑物로 덮쳤다는 이야기가 젊은 플리니우스가 타키투스에게 보낸 두 통의 편지에서 그 당시의 모습을 전해주고 있다. 도로는 인도와 마차길로 분리되어 있다. 언덕 위에는 아폴로신전의 잔해와 제단이 놓여있다. 제단 너머로 베수비우스화산이 웅장한 자태로 서 있다. 인상적인 아폴로신전은 비아 마리나로부터 남쪽 입구가 있는 48개의 원주로 구성된 열주랑의 중심에 서 있다. 제단에서 내려와 언덕 좌측을 돌면 장방형의 광장인 포럼이 나타난다. 바실리카(공회장)에서 재판이 진행되거나 중요한 사업회담이 열렸으며 경제와 법률문제가 처리되었다. 끔찍한 화산증기로부터 자신의 얼굴을 손으로 보호하려고 웅크리고 앉아 있는 노새 마부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다. 구약성서 창세기에 기록되어 있는 패악悖惡과 타락을 연상시키는 퇴폐도시 소돔과 고모라를 생각나게 한다. 사해死海 가까이에 있었다는 도시로 워낙 타락한 탓에 신의 노여움을 받아 유황과 불에 의해 모두 멸망하였다. 그러나 롯과 그의 가족만이 천사의 도움을 받아 탈출했지만 절대로 뒤돌아보지 말고 도시를 떠나라는 천사의 말을 잊고 뒤를 돌아 본탓에 롯의 아내는소금기둥으로 변했다. 노새 마부와 소금기둥으로 변한 롯의 아내가 묘하게 클로즈업 된다.

 

폼페이 발굴유적지

폼페이의 공동우물을 보면 로마제국 당시 지붕위로 물관이 다닐 수 있도록 고안하여 30m 위까지 물을 끌어 올릴 수 있었다. 좁은 대문에 응접실이 열려있는 개인 가옥들을 구경하며 당시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1500m에 달하는 상점거리엔 손님을 끌기위한 간판, 선거표지나 선전문구, 행인들의 낙서자국들이 남아 있다. 선술집들 외에도 다양한 상점들이 비아 델라본의 단지에 늘어서 있는데 세탁소와 염색가게, 펠트를 만드는 작업장, 대장간 등이 있으며 베루스라는 남자의 대장간에는 토지 측량도구인 그로마가 발견되었다. 맷돌 방앗간과 빵을 굽던 모데스투스의 빵집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관광객들의 눈길을 끄는 가옥 중에 하나가 집 앞에 마차를 대고 웃통을 벗고 소리를 지르며 사창가로 들어가던 곳이다. 벽에 오줌을 누면 창녀가 나와 데리고 들어갔다고 한다. 집안으로 들어가면 두 사람 정도가 누울 수 있는 좁은 공간의 방이 5-6칸 정도가 있다. 폼페이시가 선발한 창녀가 기거하던 공창으로 담 벽에는 뱀 그림과 성행위 장면이 그려진 춘화도가 아직도 남아있다. 특히 베티의 집을 방문했을 때 집 입구 벽면위에 있는 팔뚝만한 자신의 남근의 무게를 달고 있는 프리아푸스의 모습은 당시 이곳 사람들이 성을 얼마나 즐기고 숭배했는지를 보여주는 엽기적인 벽화다.

소렌토 관광의 중심은 타소의 광장이다. 노천 찻집들과 작은 계단의 좁은 길들과 테라스 등은 이 도시의 중요한 풍경이다. 고개를 들면 쪽빛 바다가 가슴을 열고 고개를 돌리면 올리브 나무들이 하늘과 땅과 바다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이 되고 노래가 되어 가슴을 울린다. 버스에서 흘러나오는 돌아오라 소렌토로의 노래 가락을 음미하면서 차창 밖으로 사라지는 해안 마을을 가슴에 담았다.

 

이별의 정한 서린 나폴리

나폴리는 마피아가 9개 지역을 나누어 관리하는데 실업률이 40%에 이르고 좀도둑이 많아 조심해야 한다. 열정적이고 외향적인 나폴리시민들은 낙천적인 성향을 가졌다. 1279년 세워진 웅장한 마스키오 안죠이노 성을 바라보며 해안가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산타 루치아항구가 나타난다. 항구에서 바라보면 정면엔 쪽빛 바다 물결과 눈부신 태양아래 카프리 섬이 떠있다. 좌측으론 절벽위의 소렌토가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온다. 방파제를 따라 천천히 해변 가를 걷다보면 일광욕을 하는 비키니 차림의 여인들이 육감적으로 다가선다.

산타루치항구 앞 방파제 끝에 우뚝 서있는 카스텔 오보노성채로 발길을 돌렸다. 루제로 2세 왕에 의해 세워진 이 성은 노르만디의 오래된 요새이다. 메가리데섬에 위치한 이 성은 일명 메가리데성이라고도 부르며 고대에는 로물루스별장의 일부였는데 이후 성이 건립되어 요새와 감옥으로 사용되었다. 거대한 암반을 지반으로 그 안에서 파낸 돌로 성을 쌓았다. 메가리데성은 나폴리의 발상지일 뿐만 아니라 2000년 고도 나폴리의 가장 중요한 도시의 원점인 곳이다. 1994메가리데선언 94’를 개최하여 도시계획 헌장을 공포하였고 G7 정상회담이 열린 장소다. 메가리데의 성벽을 바라보면서 나폴리 일정을 마쳐야 했다. 가난한 남부 이탈리아인들이 신대륙으로 떠나기 위해,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들이 이별의 눈물을 흘리며 손을 흔들던 산타 루치아항구가 햇빛 속에 누워있다. 해변 가에 작은 보트를 타거나 일광욕을 하는 연인들의 모습에서 그리스 로마시대의 예술작품들이 왜 육감적이며 관능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지를 확연히 느낄 수 있다.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과 짙푸른 쪽빛 바다 앞에 무엇을 감추고 가릴 수 있었을까. 푸른 바다와 하늘을 배경으로 나타나는 아름다운 여인의 곡선미와 젊은 청년의 균형 잡힌 근육질 몸매를 보면 그 자체가 소우주며 아름다움 그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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