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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그늘에서 싹이 튼다-조영환 남화토건(주) 전무이사
[칼럼]그늘에서 싹이 튼다-조영환 남화토건(주) 전무이사
  • 조영환
  • 승인 2018.08.02 10: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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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은 빛의 세계도 아니고 어둠의 세계도 아닌 곳, 깊숙한 숲을 뚫고 어둠을 분해하는 시원하고 아름다운 공간이다. 그늘을 담은 글에는 아스라이 빛이 있다. 숲 그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투쟁과 생성이 움트고 있다.

빛과 어둠이 왔다 갔다 하거나 공존하며 교체되는 공간으로, 그늘은 안 보이는 미물들이 움직이는 공간이다.

그늘은 하늘과 땅, 환상과 현실, 초자연과 자연, 너와 나, 다르면서 어우러지는 것들이 그 사이에 존재한다. 사랑의 대화도 더욱 깊숙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 곳이다. 그늘의 여유로움을 누군들 싫어할까?

동네 어귀 시원한 그늘에 아이들 함성이 장글장글하고, 정자 그늘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들 헛기침 소리 아스라하다. 숲 그늘 오솔길에서 느리게 거닐면 모든 노여움은 정지된다.

저물녘 그늘진 황혼에 자주 늦어 지각했던 지난 날 삶을 뒤돌아보기도 한다. 그늘은 창과 밖의 사이 문지방 같은 공간이다. 빛과 어둠, 양지와 어둠, 환희와 절망 등의 사이에서 그늘은 셀 수 없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어느 날 국악 단이 창단되어 10여명이 단체로 강습을 받을 때 판소리 강사로부터 <쑥대머리>를 배우다가 까닭 모를 눈물이 가슴속에 나도 모르게 주룩 흘렸다. oo-.왜 그랬을까? 내 무의식에 숨어있던 그늘의 거품이 부풀어 우러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판소리의 시김새란 안으로 쌓여서 발효돼야 깊은 맛이 우러나오는 한이 서린 소리이기 때문이었다.

저 사람 소리엔 그늘이 없어라는 말이 판소리꾼에겐 욕이라는 김지하 시인의 말은 맞았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내는 소리꾼에 불과하다는 말이다.

판소리의 그늘이란 그 소리에 투쟁과 패배가 있어야 드리워진다.

손바닥만 한 그늘에서 우리는 결전을 각오하고, 쉼도 얻기도 한다. 구약 성경에 기록된 엘리야의 이야기, 거짓 선지자 850명과 싸운 후 피곤에 지쳐 섭씨 50도의 광야에서 죽기를 각오하고 누웠다가 밑힘을 얻는 곳은 바로 로뎀나무 그늘이었다.

예수는 그늘을 닮은 존재였다. 눈 아린 햇살보다는 따스한 눈길, 뜨겁거나 차지 않은 신선한 얼굴로 그는 은근히 다가온다. 그를 따르던 사람은 아이, 창녀, 거지, 장애자 등등은 막장 어둠 가기 직전, ‘죽음의 그늘진 땅에 살던 존재들이었다.

세상의 온갖 벌레 같은 미물들은 숲 그늘 아래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 지렁이처럼 오글오글 거리며 그늘의 새벽을 꿈꾸고 있다.

그늘진 곳에 늘 살았다는 인간 공옥진의 병신춤은 증상(症狀)을 즐기는 사람이었다. 즉 단순히 즐겨서 춤추는 것이 아니라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 스며있는 늪을 기어가는 기쁨의 춤, 쾌락의 몸의 행동이었다.

병신춤은 슬픔과 눈물을 재료로 만들어진 환상이다. 공옥진 여사(1993-2012)의 춤은 처절하다 못해 어처구니없는 한의 춤이었다. 곱사춤, 허튼춤, 앉은뱅이춤, 오리발춤, 문둥이춤, 외발춤 등 50여 가지의 병신춤을 그녀 외에는 출 수 없었다.

그녀가 만들어낸 수많은 병신춤은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경지였다.

일곱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판소리를 배웠지만 궁핍을 벗하며 살 수 밖에 없는 가난한 소녀, 일본으로 가서 최승희 문하에 있었던 공옥진은 줄곧 천대받다가 귀국하여 문전걸식까지 한다.

결혼에 실패하고 불가에 들어 수도 생활을 하다가 1978년 공간사랑에서 판소리를 곁들인 1인 창무극인 병신춤으로 크게 주목받기 시작했다.

온 국민이 그녀의 춤에 열광했지만 그녀는 인간문화재로 인정받지 못했다.

전통을 이어온 것이 아니라 그녀창작 때문이었다.

공옥진의 전체적인 춤의 의미는 나의 몸처럼 사랑하라는어쩜, 성경구절과 같은 증상이었다.

그러나 현대에 그의 삶은 어떠하였는가. 아마 죽고 싶은 세상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공옥진은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남을 사랑한다는 의미가 춤 속에 숨어있었다. 병신춤은 가장 비극적인 불구와 결핍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환상적이고 처절한 몸부림의 병신춤 아닌가.

비록 병신이지만, 그가 병신이기 때문에 그 모든 증환(症患)을 사랑하는 것이었다. 이 모든 것을 환상의 정으로 승화시킨 삶, 그 이웃과 웃음 속에 아무 관계도 없을 법한, 잠잠히 숨 죽여 있는 그늘 속에서 그녀가 가슴속에 품고 있는 숨은 신을 생각해본다.

숨은 신은 빈민과 미물들에게 소나기를 피할 곳’, 더위를 막는 그늘이 되는 존재다. 그늘에서 빛은 더욱 부드럽고 아름답게 승화될 수 있다. 무성한 나무에 그늘이 들면 생명의 훈풍이 싱그럽다.

따가운 햇살도 연한 나뭇잎을 뚫지 못한다. 그 나뭇잎은 햇살의 공격을 자양분으로 빨아드리고 그늘을 내려놓는다. 상처를 받아들여 쉼터를 내려놓는 그늘은 신앙의 경전이다. 비현실적인 밤은 모든 것을 덮어 놓는다.

눈 아린 햇살의 환상은 사물을 착란 시킨다. 그늘은 사라질 것, 반대로 영원히 존재할 것들이 구분되는 곳 숨은 신의 세상을 품고 있는 곳이다.

 

 

 

 

조영환 (曺永煥)

 

문학춘추, 아시아서석문학 등단

 

아시아 서석문학상 수상

저서 : 광야에서의 인연(수상집),

건널 수 없는 강(수상집)

현 전라남도 노동위원회 위원

남화토건() 전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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